-고동주 문학상 독후감상 수상작-
'언젠가 바닷가를 거닐다 발길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 보았더니 까만 바탕에 하얀 곰 한 마리가 넉넉하게 앉아 있는 문양 석이었습니다.' '그 돌은 지금도 내가 소유한 보물 중에서 으뜸의 위치에 있습니다'.' 신이 사람에게 준 선물 중에 카지노 가입 쿠폰이 없다면 이 세상은 몽땅 생지옥이었으리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봅니다'.
수필집 '카지노 가입 쿠폰 바라기' 서문 중 일부이다. 작가는 이처럼 평범한 사물에서도 카지노 가입 쿠폰의 깊이를 깨달았다. 이 글에서 나는 고동주 님의 카지노 가입 쿠폰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삶의 체험에서 얻어진 편린과 사색과 추억을 카지노 가입 쿠폰으로 살펴보려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동백의 씨'와 '배은의 열매' 에 담겨 있는 희생과 이해의 카지노 가입 쿠폰이 내 어머니의 삶과 겹쳐졌다.
'동백의 씨'는 그의 대표작이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고아 소년이 자라며 받았을 설움과 외로움을 담아내어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작가는 그의 수필 '배은의 열매'를 통해서 '동백의 씨'에는 기쁨과 아픔이라는 두 개의 씨가 있다고 고백한다. '동백의 씨'로 입상의 영광을 얻었지만 배은이라는 회한을 감수해야만 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는 법이건만 사는 게 바빠 제대로 이면까지 살피지 못하는 게 삶이다. 카지노 가입 쿠폰하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뻐꾸기 알도 품어 기르는 새가 있는가 하면 맹수는 새끼를 절벽에 떨어뜨려 살아남는 강인함을 먼저 가르친다. 뻐꾸기 알처럼 다가온 조카를 거두어야 했을 그 시대 어머니들의 카지노 가입 쿠폰법을 저마다 살기 바쁜 시절에는 누구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의 카지노 가입 쿠폰도 그러했다.
전쟁의 참혹함이 쓸고 간 자리,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우리 어머니는 셋째 작은 어머니였다. 할아버지 자손 중 두 분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모두 전쟁의 비극을 같이 앓아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건강한 우리 집은 그나마 다행이었고 많은 사촌이 우리 집에 머물다 갔다. 어려운 조카들을 보살피려는 아버지와 자식들보다 조카를 먼저 챙기는 아버지를 보는 어머니의 시선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평행선이 유지되는 한은 그런대로 평화였다. 평화를 가장한 침묵일 수도 있었겠다. 어쩌다 평행선이 부딪치는 사고가 있었다. 하필 내 중학교 입학이었다.
중학교 입시를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치렀으니 입학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참석한 입학식에서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합격자 명단에서 상위를 차지했던 내가 입학 명단에는 빠져 있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은 절망감이 몰려오고 어머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시달렸다.
당시 어머니는 집에서 먼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다. 교통 환경도 열악했던 시절,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어머니는 조카들을 먼저 챙기는 아버지의 성정을 알고 있기에 직접 내 입학금을 마련하여 아버지께 맡겼다. 아버지는 급한 조카들의 학비로 그 돈을 먼저 사용했고 결국 입학금 마감 기한을 놓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아직 추가 입학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부랴부랴 내 입학금을 다시 마련해야 했다. 어머니의 붉어진 눈시울과 꽈리처럼 부르튼 입술로 당시 어머니가 느꼈을 고통을 짐작할 뿐이었다.
내 입학이 허가된 것은 입학식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리 각 초등학교에서 입시를 치르고 들어온 우수 학생들이었으니 나는 더 위축되었다. 뒤늦게 중학교에 입학이 된 나는 교실의 이방인 같았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교과서도 제대로 구할 수 없어 한 달 넘게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명랑하던 나는 의기소침해졌고 자신감을 잃었다. 예민한 사춘기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학교생활이었고 '글 잘 쓰는 아이'라는 자부심도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그런 평범한 사춘기 중학생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끔
"제 자식보다 조카가 먼저이니···,여동생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거야"
하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곤 했으나 그 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만 어렴풋이 고종사촌들에게 내 입학금이 쓰였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내 이야기를 들은 동생들은
"어머니 시샘이나 투정인 줄 알았는데 가슴에 대못 박혔을 만하네, 하긴 어머니가 군더더기가 없으셨지, 그래서 더 냉정해 보이셨어, 등짝을 맞고 욕설을 들으면서도 엄마 치마꼬리에 매달리던 친구들이 부러웠어, 우린 무릎 꿇고 앉아 반성문 썼잖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어머니는 평생 사촌들에게 고동주 작가가 작은어머니에게 보내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어머니는 푸근하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단호한 성품이었으니 우리 오 남매조차 따스한 큰어머니의 품을 좋아했다. 사촌들 사이에서는 '사람 좋은 작은 아버지, 정 없는 작은 어머니'였지만 냉정한 사람이란 말을 감수하면서도 딸이 중학교 입학을 못 했을 수도 있는 일을 함구하고 있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픔보다 조카들의 상처를 먼저 헤아리는 분이셨다. 딸의 입학금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 겪었을 어머니의 고초를 짐작하는 사람은 없다. 은행 대출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당시 어머니가 돈을 마련하는 길은 아는 사람에게 빌리는 길뿐이었다. 꼿꼿한 성품에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에 흘러내리던 눈물이 보이는 듯하다. 어머니는 뻐꾸기 알을 품은 어미 새처럼 조카들을 품어야 했다. 당시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삶의 이면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눈이 뜨이기도 한다. 그 깊은 카지노 가입 쿠폰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이따금 가족 모임에서 사촌들이
"작은어머니가 냉정해 보였지만 속이 깊으셨어."
하는 말을 듣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사촌들도 우리 모두 동시대를 살아왔을 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서로 카지노 가입 쿠폰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아버지가 조카 카지노 가입 쿠폰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뒷바라지를 견뎌온 어머니의 카지노 가입 쿠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힘든 세월을 살아낸 상처를 서로 보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깊은 카지노 가입 쿠폰이 아니었다면 나도 사촌도 지금과 같은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고동주 님이 작은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할 수 있었던 카지노 가입 쿠폰이다.
어머니 생전에 가장 좋아하시던 말은 '글 잘 쓰는 둘째 딸'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춘기의 상처로 인해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오 남매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카지노 가입 쿠폰을 기억하며 그 카지노 가입 쿠폰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다. 사촌들과의 관계에서 배운 지혜를 글로 표현하여 어머님께 바치려 한다. '글 잘 쓰는 작은 딸'이라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그 말을 다시 들려드리고 싶다.
고동주 님은 대표작 '동백의 씨'를 발표하고 나서야 작은어머니의 깊은 성정을 깨닫고 배은이라 말하지만 그건 세상 어떤 것보다 깊은 카지노 가입 쿠폰이다. 작은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한 후에야 마음속에 뿌리내린 카지노 가입 쿠폰, 고동주의 글은 카지노 가입 쿠폰이 깊다. 냇가에서 주운 돌멩이 하나에도, 열나흘 달빛처럼 은은한 연인의 눈빛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의 카지노 가입 쿠폰은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과 바다에 대한 동경으로 책 속에 표현되어 널리 퍼지고 있다.
고동주의 카지노 가입 쿠폰 바라기를 읽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 카지노 가입 쿠폰 속에서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 바라기에서 배운 카지노 가입 쿠폰의 깊이를 실천해 보고 싶다. 세상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카지노 가입 쿠폰을 향한 힘찬 날갯짓을 글쓰기로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