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빠지기 전에 바로잡기
며칠간 커피를 안 마셨다. 그래봤자 이틀이다.오래전부터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맛있어서 마신다기 보다. 누군가를 만나러 카페에 가면 마셔야 할 것 같아 마셨고, 친구들 사이에 유행같이 으레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마셨다. 결혼 전에는 한약 먹을 일이 잦아 저절로 커피를 멀리하게 됐던 때도 있었다. 커피 마니아인 남편을 만나 이게 신맛인지, 탄 맛인지도 구분 못하던 나는 이제는 맛있는 커피와 맛이 별로인 커피를 구별해 낼 정도가 됐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는 어느 순간 하루 한 잔은 꼭 마셔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남편이 없던 한 달,너무 졸려서 잠을 참아야 하는 날에는 일부러 커피를 찾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커피를 사 먹지 않았고, 타 먹지 않았다.신기하게도 카페인에 약한 나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전에 마시면 밤늦게까지 버틸 만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 하루는 녹차 라테가 몹시 당겨서 집에 있는 녹차 가루로 녹차라테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틀간 피곤하지 않았다. 녹차 카페인의 위대함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녹차 가루 두 스푼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오늘은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준비를 하고 서둘러 나갔다. 정해진 시간에 늦을까 봐도 있었지만, 나는 보통 아침에는 입맛이 없어 아침을 거른다. 대부분 첫끼는 10시경 브런치로 먹는다. 한글학교에 가는 날이라 브런치로 먹을 음식은 간식뿐이다. 급히 싸간 루이보스티와 간식으로 나온 미니 카스텔라 한 개를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오후 5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줌을 했다. 그 사이 '아무것도'는 음식에 속하고, 실은 커피를 마셨다. 집에 오는 길에 애들을 데리고 카페에 들러 커피프리조(스*벅스로 치면 프라푸치노 정도)를 하나 사서 집에 왔다. 그리고 줌 하는 내내 쪽쪽 들이켰다.프리조는 커피 파우더로 만든다. 게다가 카페인도 고카페인이라는 걸 진작 경험했음에도 날이 덥고 속이 타는 날에는 생각이 난다. 덕분에 그 커피를 마신 후로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심장이 두근 거리는 느낌에 당혹스러운 중이다.
때로는 나쁜 걸 알면서도 먹고, 나쁜 걸 알면서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 나쁜 습성임에도 불구하고 왜 몸에 좋지도 않은 걸 그리 찾는지 나도 알 수 없다만, 궁금한 걸 어떻게 하냐 싶다. 그래도 나쁜 것은 끊어내야 하는 데 말이다.
한 달 전 한국에 간 남편은 건강 검진을 했고, 대장내시경을 통해 어마무시한 사실을 알아냈다. 대장 내에 있던 용종을 4개나 떼어냈는데, 검진 결과 4개 모두 선종이라는 사실이었다. '용종'만 들어봤지 '선종'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없던 나는 인터넷을 찾아보고는 까무러칠 뻔했다.
'대장암으로 발전하기 바로 직전의 조직, 선종은 대장암으로 진행할 수 있어 반드시 제거해야합니다'
천만다행이며,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그렇잖아도 평소에 늘 장이 약해 탈이 잘 나던 남편의 장이 몹시 궁금하기도 했던 터였다. 남아공에 방문한 의료팀이 알려준 담석 검사를 하러 갔다가 담석은 괜찮은데 더 큰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 또한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았던 터였는데 이번 계기로 비로소 건강한 식단과 생활 습관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는 듯했다. 생에 처음으로비수면 대장 내시경을 경험한 남편은 나를 놀리듯 생생하게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은데 집에 오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겠단다. 그렇게 농담할 수 있는 상태임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커피 마니아인 남편은 이제 커피도 서서히 줄일 것 같다.신혼 초와 내 몸이 불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건강한 식단을 그리도 외쳐대고 찾아 먹던 나와 대충 아무거나 먹던 남편,
지금 나는 그냥 되는 대로 먹고사는데,남편은 건강을 위해 음식도 물도 하나하나꼼꼼하게 살피신다. 처지와 처세가 반대로 되었다. 나도 같은 처지에 서서 올바른 처세를 갖기 위해 다시 식단이며 생활 습관이며 클린 하게 챙겨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한 번 물든 색깔을 빼내기 어렵고, 한 번 틀어진 습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되어 돌이키기 쉽지 않다. 어쩌면 생각도 행동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내일은 졸릴 타이밍에 커피 대신 샤워를 하고카페인 없는 따뜻한 차로 버텨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