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너머에 사람 있어요
대체로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좋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평소처럼 퉁명스럽게 응대했다가, 엉덩이에 용수철이 돋아난 것처럼 벌떡 일어나서 기자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공손히 대할 수 있었던가, 나조차도 스스로가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화구 너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또 말했다. 그를 할퀴고 지나간 세월과 마음고생의 흔적이 뚜렷한 목소리여서 더 마음이 아팠고, 멍청한 내 머리를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고 싶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보도준칙이 점점 촘촘해지면서 기사를 쓰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요즘은, 타사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과 비교했을 때자살 사건을 단신으로 다루는 것을 줄여 나가는 추세이다. 만약 꼭 써야만 한다면 사망자가 발견된 장소를 통해 우회적으로 자살 사건임을 드러내고, 하단에는 경고 문구를 삽입하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사장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서 의료계에서 쓰는 '고의적 자해'로 대체했었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유족 가슴에 멍이 들게 만든다.
내가 먼저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했는데, 정중한 연락을 받고 나서야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는 게 부끄러워 아직도 생각이 나기 때문에 반성하는 차원에서 짧게 적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