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와 ‘비영리’라는 단어는 본래 이윤을 추구하느냐의 여부를 가리킨다. 이 구분이 예술에 적용될 때, 조금 더 섬세한 의미로 확장된다. 쉽게 말해, 작품을 ‘팔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인가’라는 의도로 나뉘는 것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팔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면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분명한 선이 존재한다. 갤러리처럼 작품을 판매하는 공간은 ‘영리 플랫폼’이고, 미술관이나 대안공간처럼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전시는 ‘비영리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이 구분의 핵심은작품의 목적에 있다. 영리 작가의 작업은 작가 개인의 철학이나 일상, 사적 주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심미성과 시장성을 함께 고려한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표현 방식도 회화 중심이며, 상대적으로 대중과의 거리도 가깝다. 반면 비영리 작가의 작업은 사회 비판, 시대적 이슈, 제도적 문제 등 공공적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용되는 매체도 다양하고 실험적이며, 미적 완결성보다는 표현의 강도와 메시지의 힘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두 부류 모두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소화할 수 있는 미학적 언어가 아니면 시장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작가들은 자신에게 더 적합한 플랫폼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영리 작가들은 판매가 가능한 갤러리를, 비영리 작가들은 작업을 전시하고 알릴 수 있는 대안공간이나 미술관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영리 영역에서는 작가가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결국정부나 공공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자율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하나의 과제가 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작품의 내용보다 목적의 실현을 위한 플랫폼 채널이 너무 선명하게 나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미술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 있다. “이 작품을 당신의 거실에 걸 수 있습니까?” 이 말은 예술의 영리성과 비영리성을 단호하게 구분 짓는 하나의 상징적 기준이다. 나 역시도 가끔은 이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오히려 작가와 작품의 다양성을 해칠 수도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가와 갤러리에 전시되는 작가를 명확히 구분 짓는 경향이 강한 반면, 서구 미술계에서는 작가의 목적에 따라 이분화하지 않는다. 시장성과 예술성은 양립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술 시장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실험적이거나 난해한 작품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부족하고, 이를 뒷받침할 예술 교육 역시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다.
더욱이 작품의 목적이 명확히 판매 여부로 나뉘기 어려운 경우도 존재한다. 사회적 이슈나 이념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미적 기준을 충족해 시장성이 있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플랫폼 중심의 구분 방식은 작가를 일방적으로 분류해버리는 결과를 낳고, 이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작가의 활동 방향을 제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카지노 쿠폰 비영리,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의 이분법은우리 사회의 예술 인식과 감상 능력이 아직 성숙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구분이라 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보다 깊이 있게 자리 잡게 되면, 이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자연스럽게 융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심미성과 장식성을 갖춘 예술이 영리 구조 안에서 더 효과적이고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곧 대중이 예술을 가장 쉽게 접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다만 그 너머의 예술도 함께 품을 수 있는 구조와 인식의 확장이 이제는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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