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얄팍한 양심을 가진 사람의 작은 고백
불.
매번 마음이 무너진다. 폭우로 인해 물이 들어찬 반지하, 산사태와 강풍에 무너진 집들, 산불을 피해 내 집이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연기를 뚫고 나와야 하는 사람들, 거기서 가까스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남은 동물들의 표정까지.
그러나 가장 나를 흔들어 놓는 순간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안전한 내 집 안에서 지켜보아야만 할 때.
거금을 기부하며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겨우 콩을 모으고 댓글로 하는 (대기업이 대신 해주는)기부나 하고 있을 때.
한 쪽에선 삶이 무너지고 있는데 실없는 소리나 하면서 웃게 될 때.
재난을 '재난문자'로 대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올 때.
나는 저 고통 속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주카지노 게임 사이트 싶지 않았던 이기적인 마음이 내 안에 존재할때.
안온함이, 안온하기 때문에 내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계속되어 일어나고 있는 전국의 맹렬한 산불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도 웃으면 안되는데. 편안한 일상을 누리면 안될 것 같은데. 마음이 버석하게 불에 탄다.
물.
미디어를 통해 급격히 높아지는 해수면이나 사막화 같은 것을 볼 때 위기감을 느끼고 침울해하긴 했어도, 특별히 내가 환경운동이라는 거창한 걸 해 본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분리수거를 잘 해보려 노력카지노 게임 사이트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갖고 환경단체의 행사에 관심을 갖는 정도로 일말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나는 유독 불안도가 높은 인간이다.
차를 타면 교통사고를 상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집에 불이 날까봐 걱정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 많은 곳에선 압사할 것 같고, 심지어는 식칼을 만지다 실수로 나를 찌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니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도 없을 리가 없지.
귀신 영화, 오컬트, 범죄 스릴러보다 재난영화가 가장 공포스럽다. 홍수, 해일, 화재, 더 나아가 그로 인한 시스템과 인간성의 붕괴까지 다 내겐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인간이 멸종한 세상에서 대홍수를 맞은 동물들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는 이야기인 <플로우는 보는 내내 나의 불안을 마주하게 하는 재난영화이기도 했다.
(하필 내 고양이 기분이를 닮은)주인공 '고양이' 는 개들의 공격을 피하고, 홍수를 피하고, 물에 빠지고, 천적에게 잡히면서 계속해서 위기에 빠진다.
고양이집사가 아니라도 매번 '어떡해...'하며 보게 될 만한 장면들이다.
고양이가 홍수를 겪고 나서, 배의 꼭대기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잠을 청하며 홍수에 대한 악몽을 꾸었을 땐 불안에 잠식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고양이는 갈 곳을 잃은 상황에서 기적처럼 낡은 배에 올라타게 되고 그 안에서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서로 부딫히고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매 고비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생존하게 된다. 내부적인 갈등과 외부 침입자의 등장으로 평화가 깨지기도 하고, 또 최악의 재난 상황이 펼쳐져 헤어졌다가 해수면이 낮아져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고...
실로 다양한 특성과 기질을 가진 동물들을 만나면서 사냥조차 서툰 약하기만 한 어린 고양이에서 물 속에 뛰어들어 사냥을 할 줄 아는 고양이가 된다. 경계심 많고 독립적인 평범한 고양이에서, 협력과 연대를 배우는 고양이로 성장하고야 만다.
이들이 이토록 '다름'에도 불구카지노 게임 사이트 결국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용기를 준다.
한편 고양이는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이상적인 자아상-은 작은 균열에도 쉽게 일그러진다. 불안이 시시때때로 나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영화 속 고양이는물에 대하여 단순한 두려움으로 시작해 '흐르는 것-FLOW'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고양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계는 앞으로도 유토피아가 아니다. 영화에서 암시하듯, 홍수는 반복되고 고양이는 어쩔 수 없이 물 속을 헤엄치며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삶은 '흐르고', 극복한 줄 알았던 거대한 파도(불안)가 수시로 나를 덮쳐오겠지만, 조금은 성장한 내가 있고옆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면또다시 극복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고양이처럼, 물(불안)이 싫어도, 물의 '흐름'과 같이 흘러가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슬아슬하더라도, 떠밀려 가면서도, 내 경로를 계속 수정해가면서 나아가면 된다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내가 비록 내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는 '얕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착한 척을 하면서라도 연대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버석하게 불탄 마음들에 물을 주자.
덧1. 재난당사자도 아니면서 희망적으로 글을 마무리한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누구든 삶의 궤적 속에서 몇 번이고 재난과 역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썼다.
덧2. '얕은 양심'이라는 표현은 엄은향님의 기부학개론 코멘트에서 빌려왔다.
덧3.재난 지역 자원봉사자 모집중이다.
https://www.1365.go.kr/vols/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