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Mar 11. 2025

Password or Signal

인터스텔라_대한민국 편 #22



47.

땅굴족의 지하세계에 머물고 있는 김박사와 이박사의 동굴탐험은 계속되고 있었다. 짝귀 대왕으로부터 들은 땅굴족의 출입이 금기시되는 곳 곳을 모두 둘러보았지만별 소득이 없었다. 땅굴족 선조들이 파 들어가다가 최종적으로 멈춘 곳까지 가보았으나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광맥을 찾아서 파 들어갔으나 소득이 없자철수해 버린평범한 땅굴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데 화영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자수정을 채취하고 있는 동굴에서 전혀 낯선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자수정채취를위해 땅굴을 더 깊이파 들어가는데 갑자기구멍이 뻥 뚫리며 텅 빈 공간이 나왔다고 하였다. 작업자들이그곳에 들어가 보니 공간이 쭉 이어졌고 그 끝에 벽이 나타났는데,땅굴족의 지하세계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김박사와 이박사는 혹시 그곳이 우주항공청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그들은 화영과 함께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거의 지하 300 미터쯤 되는 곳에 땅굴족발견한공간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이었다. 폭 3미터에 높이 3미터의 통로 같은 공간. 김박사 일행이 그 공간을 따라 100 미터 정도 들어가자 벽이 나타났다. 짙은 회갈색의 표면이 매끈한 벽이었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뭐지? 이 느낌은?' 김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들고 있는 작은 도구로 톡톡 두들겨 보았다. '텅! 텅!' 조금은 탁한 금속음과 함께 표면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랬다. 그것은 분명히 금속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금속벽. 이런 곳에 금속벽이 있다면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김박사와 이박사가 서로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박사가입을 열었다.


"이게 우리가 찾던 우주항공청 지하기지가 아닐까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하지만 지구가 망하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이 구축해 놓은 지하대피소의 일부일 수도 있으니 좀 더 확인해봐야 할 것 같네요."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의 땅굴족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시설일지도요."


김박사는침착하였다. 금속벽이 그들이 찾는 우주항공청 지하기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하였다. 그는손전등으로 금속벽 이곳저곳을 비추며 면밀히 살펴보았다.'이건 어떤 금속일까?' 손끝에 만져지는 촉감과 두드릴 때 나는 소리 그리고 색감까지분명히 낯이 익었다.'이걸어디서 봤지?' 김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맞다.' 그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눈앞에놓인 금속벽이 우주탐사선 희망호 선체를 구성하고 있는 금속체와닮았다는 이었다. 화성의 지하에서 채굴한 금속을 섞어서 만든 합금. 그렇게 함으로써 장거리 유인 우주항해가 가능케 되었던 금속체.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 왠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아니었을까? 김박사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이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가 출입구일까요? 아무 표시도 없는데요?"


"그렇죠?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네요."


이박사의 질문에 김박사가 정신을가다듬으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는다시손전등을 비추어 통로 벽면과 금속벽이 만나는 접점쭉 둘러가며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곳이 출입구라면 손잡이나 버튼이나 잠금장치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냥 아무것도 없이 매끈한 벽체일 뿐이었다. 김박사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뭐지? 그냥 벽인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박사가다시입을 열었다.


"금속벽과 통로가이어진 부분을 깨 보는 게 어떨까요? 도대체 금속벽이 얼마나 큰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그럽시다. 그렇게 해봅시다."


이박사가 화영에게 부탁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땅굴족 사람들이 장비를 가지고 왔다. 그들은 수십 년간 땅굴을파오던땅굴 파기 달인들이었다. 금속벽 좌측과 우측으로 명씩 달라붙어 통로벽을 조금씩 파 들어갔다. 작업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금속벽의오른편을 파 들어가던 작업자 한 명이 손짓하며 말하였다.


"여기 뭐가 있습니다."


후방으로 물러나 있다가 그 말을 들은 김박사와 이박사가 황급히 다가가 살펴보니, 금속벽 오른쪽 중앙에가로세로 30센티미터쯤 되는 사각 틀이 보였다. 그리고 사각틀의 밑부분에동그란 버튼이 달려있었다.


"오! 드디어 찾았군요. 출입장치가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런 것 같군요."


김박사가 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사각틀이 앞으로 밀려 나오며윗부분이 아래로 펼쳐졌다.그 안에는 액정화면이 있었다. 검은 화면에 지지지직 가로선들이 어른 거리더니 이내 환해지면서글자가나타났다.


"Enter Password or Signal"


당황스러웠다. '비밀번호라니? 또 시그널은 뭐야?'김박사나 이박사나 뭘 입력해야 할지 막막했다. '혹시 조함장은 알고 있을까?'희망호의 대장이니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여기에 없었다. 김박사는 금속벽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땅굴족 사람들로 하여금 금속벽 좌우측으로 더 파 들어가 보도록 요청하였다. 그렇게 작업지시를 한 후 그들은 그곳을 물러나왔다. 그날,양쪽으로 미터를 더 파 들어갔으나 금속벽만 계속 이어져 있다는 보고를 받고 김박사는 작업을 중단시켰다. 더 파 들어가 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만일 우주항공청의 지하기지가 맞다면 그렇게 쉽게 우회로를 허용할 만큼 허술하게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출입문을 열 비밀번호나 신호를 알아내는 일뿐이었다. '과연 무얼까? 그런데 신호라니? 어떤 신호?'김박사는 밤새 잠 못 이루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이박사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다 꼬박 밤을 새우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자수정 광산을 지나 새로 발견된 빈 공간을 지나 금속벽 앞에 섰다. 회갈색의 금속벽은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었고, 오른쪽 중앙의 사각틀은 닫혀 있었다. 이박사가 사각틀 밑의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전날과 마찬가지로 사각틀이 앞으로 밀려 나오면서 윗부분이 아래로 펼쳐졌다. 검정 화면이 깜빡깜빡하더니 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Enter Password or Signal"


'비밀번호? 시그널?' 막막했다. 두 사람은 문옆에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긴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긴 침묵을 깬 건 이박사였다.


"출입통제를 위하여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시그널은 뭘까요? 도대체 상식적으로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렇죠. 시그널, 시그널이라. 정말 어렵네요."


잠시 뜸을 들인 이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혹시 말이죠. 그 시그널이란 게 외부인을 위한 건 아닐까요?"


"예? 외부인요?"


"내부인만 이용하는 출입문이라면 비밀번호만으로 충분할 텐데,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 없는 외부인이 있다면요? 비밀번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어떤 신호 같은 게 있다면..."


"예? 그들만의 신호요? 이를테면 외부인이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왔을 때, 그들이 사용할가능성이있고 또 서로 알고 있는 신호 같은 거 말이지요?"


"맞아요! 그렇다면..."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두 사람 다 머리에 번쩍 든 생각이 있었다. 그들은 황급히 그 자리를 물러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태블릿 PC와 멀티 커넥터등 필요한 물건들을 가방에 주워 담아서 서둘러 다시 지하 공간으로 향했다.


"Enter Password or Signal"


그들이 다시 화면과 마주 섰다. 이박사가 화면 아래 입력보드 옆에 나 있는 빈 슬롯에 커넥터를 끼우고 가지고 간 태블릿 PC와 연결하였다. 그리고 태블릿 PC의 파일 리스트에서 파일 하나를 선택한 그녀는크게 심호흡을 한 후실행키를 눌렀다.옆에서그 모습을지켜보고 있던 김박사도 긴장한침을 꼴깍 삼켰다. 태블릿 PC의 화면에 파장이 일며 어떤 신호가 이어지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에게는 굉장히 긴 시간으로 느껴졌지만, 금속벽에 달린 패널의 액정화면의 글자가 바뀌었다.


"Wait..."


성공! 성공이었다. 드디어 출입문을 여는 를 찾은것이었다. 김박사와 이박사는 기쁨에 겨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그들이입력한 신호는 외계로부터 받은바로그 신호였다. 그들이 우주탐사선 희망호를 타고 찾아 나섰던 신호. 외계생명체가 보내는 것이라고 믿었던 바로 그 신호였던 것이다. 우주항공청에서는행방불명된 희망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찾던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찾아올 것이라도 기대했던 것일까? 어쨌든 신호는 맞았다.


"Wait..."


"Wait..."


"Wait..."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에는 계속 기다리라는 메시지만 떴다. '아닌가? 시그널이 잘못된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들이 더 할 수 있는 은 없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리고 초조해질수록시간은 더 더디게 흘렀다. 얼마나지났을까? 드디어 화면이 바뀌었다.


"Wait 10 minute"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두 사람 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탁 풀렸다. 잘못된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무엇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십 분만 기다리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정말 더디게 십 분이 흘러갔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Open the Door"


오오! 드디어 출입문이 열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매끈한 금속벽 어디에 출입문이 있을까싶은 순간,금속벽 가운데 부분에 폭 1.5 미터, 높이 2.5 미터정도의 직사각형 모양의 가장자리 부분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더니 안쪽으로 조금씩 밀려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르륵 문이 옆으로 열렸다.금속벽 전체가 한 덩어리가 아니고, 중앙에 출입문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문 안쪽으로 하얗고 긴 복도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는 백색 등이 켜져 있고, 복도 끝에 역시 하얀 출입문이 있는 게 보였다. 둘은주먹을 불끈 쥐고 긴장한 채 출입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가서 하얀 문을 열었다. 그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쉽게 열렸다.


넓은 광장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우주항공청 지하기지였다. 우주항공청기지에 걸맞은 시설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쓸 만한 장비들이 보였다. 땅굴족의 지하세계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모습을 마주한 김박사와 이박사는 감격스러웠다. 그들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그들이희망호를 타고 지구를 떠난 지 이년 반, 블랙홀에 빠져 미래의 지구로 온 지 십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그토록 찾았던 우주항공청 지하기지를이제야찾아낸 것이다.


"하늘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김박사는 안도의 마음과 함께 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이 기쁜 소식을 조함장을 비롯한 다른 희망호 승무원들이 듣는다면얼마나 기뻐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박사와 이박사는 여전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걸음을 옮기며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엄청나네요!"

"정말 그렇네요."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마다 새롭고 신비로웠다. 각종 설비가 들어있는 창고, 무기 창고,자재 창고,화학 들이 담겨 있는통들이가득한 곳등.의사인 김박사와 언어학자인 이박사에게는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말 엄청난 규모의물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특히 김박사의 관심을 끈 건 각종 의약품이 보관된 창고였다. 그는 투명한 특수 포장이 되어 있는 의약품들을손으로 매만지며 흐뭇해하였다.


각종 물건들이 보관된 창고들이늘어선곳에서광장 맞은편에는커다란 격납고 시설이 있었다. 그들은그곳에 무엇이있을까 호기심에 가득 차서 광장을 가로질러 그쪽으로 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소형 비행선이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희망호가중국 선양 부근에 불시착하고 나서그들이탔던비행선보다조금 더 큰이었는데, 모두 다섯 대나 되었다. 그것들움직일 수 있다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지금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모르는대양족과의 전쟁에도 큰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이었다.


소형 비행선이 있는 격납고 안쪽으로또 다른 문이 보였다. 둘은 소형 비행선들을 지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무엇이 있을까기대를 하며 문을 열어보았다.


"헉! 이게 뭐죠?"

"허어, 이럴 수가!"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의 앞에 버티고 선 높이 30 미터는 될듯한 우주선. 갑자기나타나 엄청난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우주선에 두 사람은 압도당했다. 그것은바로 우주탐사선 희망호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들이 탔던 희망호는 아니고 그보다 더 크고 더 멋진 모습의 우주선이었다.선체가 어찌나 큰지 뒷부분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우주탐사선 희망호5


표지판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김박사와이박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희망호5를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앞으로 자신들에게 펼쳐질 운명이 어떻게 바뀔것인지도모른 채.




(23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