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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r 17. 2025

밝혀지는 대재앙의 역사

인터스텔라_대한민국 편 #23



48.

"45억 년 전 우주를떠돌던 먼지와 가스가 합쳐져 생겨난 작은 별. 오랜 세월이 흐르며크고작은 암석들이 수도 없이 떨어져 뒤섞이며 덩치를 키우고, 용암 덩어리였던 표면이 서서히 굳으면서모양을 갖추게 되고. 또오랜 세월동안지표면이 식고 하늘로 올라간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려 바다가 생겨나고. 거기에 더해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 별. 그것이 지구입니다. 45억 년지구의 긴 역사 말미에, 불과 300만 년발로 걷고 손에 도구를 든생명체가 생겨습니다. 그리고 20만 년전 지구에서 가장 진화한 동물이라는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의 지배자를 자처하였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였고, 공존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결국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이 메시지를 접할 때에는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존재없을지도 모릅니다.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긴 역사 속에서 찰나의 순간 동안 존재하다 사라진 생명체 중 하나에 그칠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구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갈 것입니다."


조함장을 비롯한희망호 승무원들 모두 대형모니터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우주항공청 청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그간 지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3세기 들어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지구가 크게황폐화되었고, 서로 자기만 살려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국가 간 대립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중동의 한 미치광이 지도자의 야욕으로 촉발된 핵전쟁으로 지구에 대재앙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다만, 각 국가에서 미리 피난처를 마련하여제각각땅속으로 바닷속으로 공중으로 피했는데,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희망호 승무원들은 그들이 지구를 떠난 후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주의 어딘가에 지구에서의 인간처럼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믿고 오래전부터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백 년 전 우주로부터 분명한 신호를 받았고, 우리 탐사선을 보내 만나 게 될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탐사선이 블랙홀에 빠져 행방불명되었고, 두 번째 세 번째 탐사선까지 보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지구를 찾아와우리 지하기지를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이 우리에게 보낸 신호가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마도 못 올 가능성이 크겠지만, 당신의 방문에 대비하여 이곳 시설을 진공상태로 봉쇄합니다.그만큼시설의 보존기간이 길어질 것입니다. 늦기 전에당신이 이곳을 방문하여 이메시지를 게 된다면,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대신 지구에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문명을 이루며 짧게 머물렀다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우주항공청 청장의 메시지는 그렇게 끝났다. 희망호 승무원들은 지하기지의 출입문을 여는 시그널이 왜 그것이었는지 그리고 문이 열리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김박사와 이박사가 출입문이 열리길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진공상태였던 지하기지에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도록공기가주입되고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우주항공청 청장은 희망호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백만분의 일이라도 예상하였을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들이 기울인 노력은 헛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우주항공청 지하기지에 남겨둔 자원은 희망호 승무원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들임에는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이틀 조함장은 대양족과의 전쟁에 남은 여력을 모두 쏟아부은 후, 지상족 연합군과 지상족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땅굴족의 지하세계로 피신하였었다. 막상 피신은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대양족을 막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우주항공청 지하기지를 발견하였다니! 그 소식을 들은 조함장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화영과의 재회도 뒤로한 채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소형 비행선과 무기를 비롯한 자원들을 둘러보고 크게 안도하였다. 그 정도면 대양족을 막아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니 막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씨를 말릴 수 있을 만큼 지하기지에 있는 자원은엄청났다.


조함장은 최항해사와 설비 엔지니어에게 비행선점검을 지시하고 무기창고를 둘러보았다. 지금 당장 시급한 건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대양족 군대를 막을 대책을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비행선은 기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기창고에서 비행선에 탑재하여 공격이 가능한 레이저포와 폭탄 등을 찾아내었다. 이제무기를 비행선에 싣고 출격할 준비를 하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기지의 구조를 알아야 했고, 비행선이 지나는통로와 출구 등도 확인하여야 했다.


희망호 승무원 모두가 지하기지 중앙통제실에 모였다. 조함장이 운영 시스템의 ON 스위치를 눌렀다. '우웅' 시스템이 기동 되는 소리와 함께 대형 모니터 화면이 켜지고, 한 남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금테안경을 쓴, 중후하면서도 예리한 눈빛을 가진 60세전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자기를 대한민국 우주항공청 청장이라고 소개하였다. 화면 하단에는 2265. 3. 5일이라고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희망호가 우주항공청 발사대를 떠난 지 백 년이 지난 후였다. 희망호승무원들은 그로부터 지구 대재앙의 역사를 들었다. 그리고 지도자 한 명의 잘못된 판단이 인간 문명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땅굴족 마을 하늘 위로 비행선 두 대가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공중을 한 바퀴 선회한 곧바로 직선을 그으며 지상족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공중에서 보이는 지상족 마을은 이미 폐허로 변해있었다. 돔이며 주변시설이며 모두 무너지고 불에 타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여전히 드문드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양족 병사들이 마을까지 쳐들어와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하였다. 마을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하며 주위에 적들이 없음을 확인한 뒤, 마을 앞 공터에 비행선 두 대가 내려앉았다. 조함장을 비롯한 희망호 승무원들이 비행선에서 내렸다. 공터에 있던 희망호의소형 비행선도 놈들의 손에 부서지고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마을을 둘러싼 울타리도 모두 무너져 내리고, 닭과 토끼를 키우던 축사마저도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불과사흘 전까지도 멀쩡했던 지상족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그렇게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조함장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복수를 결심하였다. 받은 것의 열 배 스무 배를 되돌려 주어야다.이 세상에 존재해서는안될 들,이참에 아예 씨를 말려야겠다고생각하였다. 조함장은 바로 비행선에 탑승하여 강가 선착장으로 향했다.


강가 개활지에 대양족 침략군의 주둔지가 보였다. 그리고 선착장에는 그들의 철선 여섯 척이 정박해 있었다. 무엇보다도먼저화포로 무장하고 있는 적 함선을 제압해야 했다. 비행선 두 대에 장착된 레이저포가 연거푸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함선의 조타실상단이 날아가고 불이 붙었다. 불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큰 폭발음이 들리며 첫 번째 배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레이저포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함선을 향하여레이저포가 발사되었다. 배에 있던 대양족 병사들은 반격은커녕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그렇게 적 함선들은 반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여섯 척 모두 차례로파손되어 강물에 잠겨버렸다.


다음은 강변에 주둔하고 있는 대양족 병사들 차례였다. 비행선 두 대가 그들의 머리 위를 날며 포탄을 떨구었다. '콰앙!콰광!' 폭음이 일며 순식간에 적 주둔지가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가 움푹 패어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고, 그 주변의 막사는 쓰러지고 불에 타고, 병사들은 사지가 찢긴 채 이곳저곳에 나뒹굴었다. 몇몇 대양족 병사들이 비행선을 향해 소총을 쏘아대기도 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총격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행선이 날며 그들의 머리 위로 레이저포가 쏟아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달아나던 놈들이 마치 수박통이 터지듯 퍽퍽 터져 죽었다. 비행선의 공격은 지상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적막이 찾아온 강변 선착장 주변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하였다. 강은 배들의 무덤 그리고 강가 개활지는 강변족 병사들의 무덤. 살아서 움직이는하나도 없었다. 천칠백 년 전, 대재앙이 일어날 때 바닷속으로 숨어 어렵사리 살아남았던 대양족의 후손들. 세월이 흘러 육지로 올라와 주변으로 세력을 넓혀나가면서 다른 종족들을 무참히 짓밟았던 그들. 거칠 것이 없었던 그들이 이름 모를 땅, 이름 모를 강변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법. 자신의 힘만 믿고 오로지 남을 짓밟으며, 타협과 공존의 의미를 모르는 자들의 끝 역시 그러하리라는 걸 대양족 지도자들은 몰랐던 것일까?결국그들의 야욕잔인함이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되돌아간 셈이었다.



대양족을 괴멸시킨 비행선 두 대가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푸른 하늘을 날아 우주항공청 지하기지로 복귀하였다. 이미중앙통제실과 비행선과의 교신을 통하여 승전 소식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조함장 일행을 맞았다.특히대양족과 전쟁을 치렀던 지상족 연합군 병사들은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사실 그들은 대양족의 막강한 화력을 익히 경험하였고, 그들이 뒤쫓아 온다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양족 대군을 물리쳤다는 소식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임에 틀림없었다. 땅굴족 사람들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양족이 쳐들어 온다면 자신들의 목숨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러한걱정을 덜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그러한까닭에 지상족강변족 땅굴족 할 것 없이 모두가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지르며 조함장 일행을 맞았다. 그들에게 조함장은 그들의 우두머리를 넘어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화영은 한발 떨어진 곳에서 조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조함장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로서는 바로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으나,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그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것은 바로 조함장이었다. 안 그래도 화영의 안부가 궁금했던 그는그녀를 보자마자 바로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조함장이 자기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화영은 한달음에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그녀의 빰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함장은 그런 그녀를 꼭 안으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먼발치에서 들의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바로 조함장의 지상족 부인 라일라였다. 그녀역시 조함장 품이 그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양족과의 전쟁 그리고 땅굴족 마을로의 피난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낸 지도 한참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막상 조함장과 땅굴족 부인 화영이 서로 부둥켜안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자기나 화영이나 똑같이 부족의 안위를 위한 정략결혼으로 조함장의 아내가 된 것이었으나, 그것과 관계없이 남편이 다른 여자를 고 있는 걸 보는 것은 마음아픈 일이었다. 그녀의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물은 화영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눈물이었다. 앞으로 땅굴족 지하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함장을 사이에 두고화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였다. 그녀는 눈물에 가려 흐릿해진조함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없이 서있었다.



(2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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