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써내려 간 솔로 앨범 '루비' 리뷰
2025년 3월, 카지노 게임는 첫 정규 앨범 『RUBY』를 세상에 내놓았다. YG에서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독립 레이블인 Odd Atelier를 직접 설립한 뒤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참여해 완성한 이 앨범은, 단지 솔로 데뷔 1집이나 블랙핑크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나온 또 다른 프로젝트가 아니다. 『RUBY』는 카지노 게임라는 사람, 김카지노 게임라는 한 개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 그 안에서 수많은 질문을 받으며 정립해온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고자 하는 방향을 담아낸 자기 서사의 결정체다. 마치 원석처럼 다듬어졌고, 그 끝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이 앨범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드디어’라는 감정이었다. 그동안 케이팝 안에서 퍼포머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온 제니는 이미 글로벌한 주목을 받는 스타였지만, 그 안에서 그녀 스스로의 이야기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서 있었다. 『RUBY』는 그 거리를 한순간에 좁힌다. 대중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제니와, 제니 자신이 알고 있는 제니 사이의 간극을 하나씩 메꾸는 작업. 그게 바로 이 앨범이었다. 익숙한 스타의 얼굴 뒤에서, 처음 만나는 한 사람의 삶과 내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은 ‘누군가가 쓴 곡을 소화한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든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곡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곡을 설계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를 담아낸다. 이건 지금껏 케이팝에서 보기 드문 자기주도적인 방식이며, 동시에 아티스트 제니의 정체성과 미학이 오롯이 반영된 증거다. 곡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엮여 있고, 다양한 감정의 결이 쌓이며 결국 하나의 인생 서사처럼 완성된다. 그렇게 탄생한 『RUBY』는, 단순한 앨범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이다.
가장 먼저 귀에 꽂힌 곡은 역시 『like JENNIE』였다. 이 곡은 제목에서부터 시작해 코러스 끝까지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을 마치 조각하듯 반복하고 해체한다. “카지노 게임 – 죄니 – 쟤니”라는 언어유희는 표면적으로는 유쾌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수한 오해와 단정 속에서 살아온 사람의 자기 인식이 촘촘히 깔려 있다. 카지노 게임는 지금껏 숱한 시선과 평가에 노출되어 있었다. 늘 ‘정답’처럼 존재해야 했고, 실수 없이 살아야만 했다. 그런 존재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던진다는 것은 단순한 유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일종의 ‘되찾기’이다. 내 이름에 대한 통제권, 나 자신에 대한 해석의 권리.
“내 전 애인들은 날 못 잊겠지만, 난 그렇지 않아.” 이 한 줄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여성 아티스트가 직접 말하기는 어려웠던 종류의 문장이다. 연애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그것도 연애의 감정적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다는 식의 서사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like JENNIE』에서 그것을 기꺼이 말한다. 남의 입을 빌려 노래하지 않고, 스스로의 언어로 말한다. “AI도 따라하지 못할 나만의 방식”이라는 라인은 이 곡의 핵심이다.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은 이제 브랜드나 이미지를 넘어서, 설명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라는 선언이다.
음악적으로도 『like JENNIE』는 흥미롭다. 프리 코러스와 코러스를 자연스럽게 잇는 구성이 곡을 짧고 강렬하게 만들고, 반복적인 훅은 곡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단지 세련된 사운드라는 이유로 소비되기엔 너무도 선명한 정체성과 의지가 담긴 곡. 듣는 이로 하여금 “카지노 게임 같은 건 없다”고, “카지노 게임는 카지노 게임일 뿐이다”라는 감각을 남기게 한다. 『RUBY』의 문을 여는 이 곡은, 카지노 게임가 누구인지에 대한 출발점이자, 동시에 앞으로도 누구의 틀에도 맞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ZEN』은 제목부터 내면의 침묵과 집중을 연상시킨다. 이 곡은 카지노 게임가 외부의 시선, 오해, 편견 속에서도 자기 중심을 어떻게 유지해 왔는지를 말하는 트랙이다. “나를 shake 혹은shape(정식 가사는 shake로 표기되는 듯하나, 여러 해석본에서는 shape로 정의되는 것으로 보아 의도한 발음 흐리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해도, 나는 악의로 대하지 않겠다”는 가사에는 분노도, 냉소도 없다. 대신 삶의 태도가 있다. 그것은 살아남는 법이자, 자신을 잃지 않는 방식이다. 흔들림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카지노 게임는 오히려 가만히 선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중심을 찾는 방식. 곧 ‘ZEN’의 철학 그 자체다.
뮤직비디오는 이 곡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불교의 사상적 상징들이 현대적인 시각 효과와 결합해, 전통과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무대 위 카지노 게임는 화려하지만 절제되어 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전한다. 이 곡이 보여주는 ‘강인함’은 흔히 소비되던 걸크러시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다져진 내면에서 나오는 강함이다.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카지노 게임는 이 곡을 통해 우리가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여성상을 제시한다.
이 곡이 인상 깊은 이유는, 이 정적인 에너지가 카지노 게임가 직접 선택한 표현 방식이라는 점이다. 『RUBY』의 곡들 중 가장 ‘적게 말하는’ 이 곡이,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말한다. ‘나는 당신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나 자신을 믿는다.’ 이 간단한 메시지가 이토록 깊고 우아하게 들리는 건, 그간 수많은 침묵과 투명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ZEN』은 감정과 시선이 겹치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결국 나를 잃지 않기 위한 한 사람의 철학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트랙 하나 이상의 무게로 앨범 전체의 중심축이 된다.
『RUBY』를 관통하는 여러 메시지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흐름 중 하나는,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해’라는 방향성이다. 단지 자신이 여성 아티스트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성 자체를 주제로 삼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동시대의 다른 여성들과 닿아 있는지를 명확하게 말하는 앨범. 『ExtraL』과 『mantra』는 그런 카지노 게임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책임의식을 집약해놓은 곡들이다.
『ExtraL』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보통 'extra'라는 단어는 ‘과한’, ‘유난스러운’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갖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이 단어가 붙을 때, 그것은 종종 ‘튀는 여자’, ‘감정적이고 통제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낙인을 동반하곤 한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는 이 단어를 자신이 직접 껴안는다. 『ExtraL』에서 카지노 게임는 그 ‘엑스트라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무기 삼고, 자신만의 미학으로 변환시킨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이 라인은 단순한 자기 긍정을 넘어, 세상이 붙인 프레임을 다시 재구성하는 선언이다.
이 곡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는 자신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연대의 메시지로 확장된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또 다른 트랙이 바로 『mantra』다. 『mantra』는 제목 그대로 주문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반복적인 다짐, 혹은 위안. 『mantra』는 보다 내밀하고 섬세한 감정의 레이어를 따라간다. 『ExtraL』이 바깥을 향해 외치는 자존감의 선언이라면, 『mantra』는 안쪽을 향해 되뇌는 자기 확언이다. 카지노 게임는 이 곡에서 ‘나는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위 곡과는 다른 느낌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와 더불어 이런 자신감을 갖추기 위한 '마음가짐'을 노래하는 것은 덤이다.
『mantra』는 단지 여성 개인의 자기 고백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곡이 진정으로 특별해지는 지점은, 그것이 여성 아티스트 간의 연대의 장면으로 구현될 때다.이건 단순한 구성이나 미적 효과가 아니라, 카지노 게임가 지금 이 시대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예술적으로 구현해낸 방식이다.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지닌 여성들이 무대 위에 있는 장면. 그것이야말로 페미닌한 감각을 넘어선 정치적 예술의 진화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제니는 본인이 속한 위치가 단지 ‘아이돌’이 아닌, 글로벌한 영향력을 가진 창작자임을 입증한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누구와 함께 확장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여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예술로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은 무대 위의 구성이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다.
이 두 곡은 전체 앨범 속에서도 명확한 균형을 만든다. 『like JENNIE』와 『ZEN』이 자아와 내면에 대한 선언이라면, 『ExtraL』과 『mantra』는 공동체 속 카지노 게임, 동시대 여성들과 나란히 서 있는 카지노 게임의 얼굴이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또 여성 아티스트로서 카지노 게임는 단지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통해 더 많은 여성이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RUBY』는 그렇게 단단한 자기 서사이면서, 동시에 확장 가능한 연대의 언어가 된다.
『RUBY』는 철저히 카지노 게임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앨범이다. 그것은 곧, 사랑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번 앨범에서는 연애, 관계, 우정이라는 감정의 층위를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정직하게, 때론 가차 없이 풀어냈다. 『Love Hangover』와 『Twin』은 그 진심이 가장 깊게 새겨진 트랙이다. 사랑은 때로 지우고 싶고, 때로 붙잡고 싶은 감정이다. 그리고 이 두 곡은 그 양쪽을 정확하게, 각각 다른 방향으로 풀어낸다.
『Love Hangover』는 질척이지만 매혹적이다. 제목 그대로, 마치 전날 밤 진탕 마셨던 술의 흔적처럼 감정이 남아 있고, 머리는 아프고, 심장은 불편하다.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관계. 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끊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복잡한 모순. 이같은 정서는,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쳐온 감정일지도 모른다. 중독적인 비트와 반복되는 멜로디는 이 감정을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사랑이 주는 상처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카지노 게임는 과장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아주 평범하게 말한다. 이미 지나쳐 온 감정으로 어딘가 초연하게, 새침한 느낌으로 부르는 노래와 뮤비도 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Twin』은 제목부터 이미 복잡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쌍둥이. 나와 똑같다고 여겼던 존재. 그만큼 가까웠고, 그만큼 나와 비슷했고, 그래서 더욱 아팠던 관계. 이 곡은 흔한 이별 노래가 아니다. 연인의 관계도, 우정의 범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파편들을 담고 있다. 카지노 게임는 이 곡에서 “내가 나의 쌍둥이라고 믿었던 그녀”와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정체성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 같은 아픔이다. 나와 너무 닮아서, 나인 줄 알았는데 결국 나와 달랐던, 그래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된 그 관계. 그녀는 이 곡의 가사에서 그 과정을 담담하게, 그러나 아주 무겁게 읊조린다.
『Twin』이 강렬한 이유는 그것이 마지막 곡이라는 점에 있다. 자아를 드러내고, 연대와 사랑을 얘기한 끝에, 앨범의 결말로 우정의 이별을 배치한 건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결국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비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존재를 떠나보내는 순간, 자기 자신을 더욱 뚜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Twin』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마무리되기보다는, 그 감정을 조용히 안고 침묵하는 방식으로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앨범 전체를 조용히 덮는 담요 같고, 한 사람의 여정을 천천히 마무리하는 문장 같다.
감정적으로 이 곡은 가장 무너진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가장 솔직한 순간이다. 앞선 곡들이 당당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Twin』은 말없이 내려앉는 감정의 끝자락이다. 상대와 함께했던 장면 하나하나가 떠오르고,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배신감도 겹쳐진다. 카지노 게임는 이 곡에서 그것을 정의내리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두고 바라본다. 그래서 이 곡은 더 슬프고, 더 아름답다.
『RUBY』는 『Twin』으로 끝난다. 그것은 강렬한 자신감의 외침에서 시작해, 결국 가장 조용한 이별로 내려앉는 곡선이다. 이 마지막 장면 덕분에 앨범 전체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진실하게 느껴진다. 『Twin』은 결국, 우리가 잃어버린 누군가에 대한 노래이자, 우리가 지켜낸 나 자신에 대한 마지막 고백이다.
『RUBY』는 단지 하나의 앨범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제니라는 아티스트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보여줄 수 없었던 감정들, 숨겨진 생각들과 마주한 끝에 만들어낸 삶의 조각이다. 케이팝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주어진 콘셉트를 따라 정해진 곡을 소화하는 방식—를 벗어나, 자신이 직접 만든 이야기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용기와 방향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정성 덕분에 『RUBY』는 단지 ‘잘 만든 앨범’이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것은 살아온 궤적이자, 살아갈 미래에 대한 선언이다.
특히 이 앨범이 완성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그것이 단 하나의 감정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RUBY』를 ‘자신감 넘치는 앨범’이라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섬세한 앨범’이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 이 앨범은 밝음과 어두움, 강함과 부드러움, 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한 곡 한 곡이 다른 정서를 품고 있음에도, 그 모두가 한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앨범이 전하는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다. 우리는 결코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될 수 없고, 하나의 서사로 환원될 수 없다. 카지노 게임는 『RUBY』를 통해 자신이 복합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그러함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RUBY』는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여성 아티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강렬하게 제시한다. 단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위치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나아가고, 어떻게 타인과 연결될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 앨범은 특별하다. 카지노 게임는 단지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서사를 구축하고, 그 안에 수많은 여성의 경험을 병치하며, 한 명의 이야기꾼이자 창작자로 서 있다.
2025년 4월 20일(21일), 카지노 게임는 지난 공연에 이어 두 번째코첼라 무대에 섰다. 단독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이름을 걸고, 혼자서 한 시간 가까운 공연을 채워낸 무대. 그 무대 위에 선 카지노 게임는 더 이상 블랙핑크의 일부나, 수식어 속의 인물이 아니었다. 오롯이 자신의 이름,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넓은 사막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 무대가 더이상 어떤 외적인 장치 없이도 단단히 완성되어 있다는 감각이었다.
이번 공연의 구성은 단순했다. 과장된 체인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감정의 결을 유지했고, 중간중간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전환하는 일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대 전체가 카지노 게임의 이야기 그 자체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집중이 흐트러질 틈이 없었다. 관객은 곡 사이의 멘트나 변화보다, 그 안에서 일관되게 울리는 카지노 게임의 감정과 리듬에 이끌렸다. 곡이 끝나고 조명이 바뀔 때마다 단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이렇게 큰 무대를 가득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이번 밴드 세션이 모두 여성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카지노 게임가 『RUBY』에서 계속 강조해온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연대’라는 메시지를 무대 위에서도 구현한 부분이었고, 단지 상징적인 구성을 넘어 실제로 공연 전체의 에너지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연주는 섬세했고 힘이 있었고, 카지노 게임의 퍼포먼스를 더욱 안정감 있게 뒷받침했다. 무대가 진행될수록 ‘이건 혼자의 무대지만, 동시에 함께 완성한 어떤 서사’라는 감정이 더욱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카지노 게임의 라이브 실력이었다. 단순히 안정적이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더 유연하고 자신감 있게 뻗어나갔다.지난 코첼라 공연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고, 그것이 전체 공연의 완성도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무대의 클라이맥스는, 누군가에게는 가장 짧고 작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한 곡이 끝날 즈음, 카지노 게임는 짧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 그 한 문장이 그 전 곡의 마지막 가사, “I just wanna make my mama prouder”와 연결되며 뭉클함을 줬다. 무대 위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자유로워 보이던 그녀가, 가장 내밀한 바람을 그렇게 조용히 흘려보냈다. 진심이라는 건 이런 순간에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카지노 게임는 마이크를 꼭 쥐고 그 말을 꺼냈고, 객석은 조용히 그 고백을 받아들였다.
특별한 순간은 또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첫 솔로곡이었던 ‘솔로’를 부르며 무대에 올랐던 2018년을 직접 소환했다. 6년이 지났고,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카지노 게임의 표정은 달랐다. 과거의 자신을 되짚으면서도, 지금의 자신으로 완전히 다시 노래하는 모습. 처음 홀로 무대에 섰던 소녀가, 이제 완전히 자신의 무대를 책임지는 한 사람의 아티스트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 연결의 순간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었고, 지금의 카지노 게임를 완성하는 서사의 일부였다.
이 공연은 마치 『RUBY』라는 앨범을 현실의 공간 위에 펼쳐놓은 것 같았다. 감정과 정체성, 자존감과 기억, 사랑과 고백이 겹겹이 쌓인 이 무대는, 단 한 사람의 고백이자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목소리로 무대를 채웠고, 관객은 말 없이 그것을 따라갔다. 그 무대 위에는 대단한 장치도 없었고, 눈에 띄는 기교도 없었다. 대신 ‘나’라는 존재로 모든 것을 설명해내는 사람이 있었다.
루비처럼 단단하고, 루비처럼 붉은 무대였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카지노 게임는 더할 나위 없이 카지노 게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