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초코.
이제 만 한 살이 된 '말티푸'(말티즈와 푸들의 믹스견)의 이름이다. 작고 복슬복슬해서 멀리서 보면 카지노 게임운 인형처럼 보이지만, 이는 철저히 계산된 위장술일 뿐. 집안 곳곳에는 그녀가 저질러 놓은 흔적이 가득하다. 화분의 흙 헤쳐놓는 건 기본이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발기발기 찢어 하나의 설치미술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마치 오늘 하루, 얼마나 바쁘고 열정적으로 보냈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예전에 키우던 '건강이' 와는 달라도 너무 카지노 게임다. 건강이는 얌전한 모범생 같아서 키우기가 수월했다. 10년 동안 뭐 하나 망가뜨린 적도 없었고,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거기에 비해 초코는 정반대이고. 그러나 어쩌랴! 이미 우리 가족이 되었으니 '다름' 또한 좋은 무언가가 있으려니 해야지.
나는 오랫동안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산책하다 마주치는 개나 고양이만 봐도 일부러 길을 돌아가고, 키우는 집엔 초대받아도 부담스러웠다. 싫었다기보다 무서웠다. 다섯 살 무렵, 집 앞 시장 골목에서 갑자기 덤벼든 개에게 놀라 넘어졌던 기억이 남아서일까? 동물은 늘 낯설고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던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건 순전히 딸 때문이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할 때마다 못 들은 척하며 넘겼다. '무섭고 정이 가지 않아 못 키운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 당시 아팠던 딸이 간절하게 원하자, 결국 말티즈 한 마리를 입양했다. '카지노 게임'란 이름도 지어주고.
어찌나 순하고 점잖은지 그동안 강아지를 싫어했던 시간이 무안하리만큼 쉽게 마음을 열었다. 산책가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았다. 특히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곁을 떠나지 않았다. 따뜻한 마음에 감동할 때가 여러 번이었다.
10년을 이름처럼 카지노 게임하게 지내다, 일주일 아프더니 안타깝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힘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무언의 다짐을 하며, 1년 반 동안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카지노 게임 무덤가에 꽃도 심어주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그리움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던 지난가을, 한국에 갔을 때 남동생이 깜짝선물이라며 강아지 한 마리를 안겨줬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초코! 보자마자 작고 따스한 체온이 느껴져 함께 할 운명처럼 느껴졌다. 카지노 게임와의 슬픈 이별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긴 했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기로 하고 뉴욕으로 데리고 왔다
집에 온 초코는 힘든 비행 후에도피곤한 기색 없이구석구석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적응은 바로 했다.낯선 공간이 놀이터라도 된 듯,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 눈치만 보던 카지노 게임 와는정반대다. 매일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고 이어폰, 책, 양말, 휴지는 단골 장난감이다.
처음에는 집안이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나로서는 정신이 쏙 빠질 만큼 당황스럽고 버겁기도 했다. '이 아이는 건강이랑 정말 많이 카지노 게임네' 라며 잠깐 데려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차츰 초코의 리듬에 적응해 갔다. 하루 종일 부산하다가도,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면, 책상 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눈만 마주쳐도 갖은 애교를 부리는 카지노 게임둥이를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지노 게임 와는 다른 생동감으로 사랑과 에너지를 주고 있으니까.
인간관계도 그랬었다. 매사가 계획적이고 융통성 없는 나는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났을 때 묘한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안 맞는데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울릴 것같지 않은데도, 오랜 시간이어가는 만남이 제법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다름'이 불편하기만 한 건 아니었지.
초코와 지낸 지 6개월이 되어가니 이젠 어지러워진 집안도, 사고 친 흔적도 웃으며 치운다. '너는 이게 사는 모습이구나' 하면서. 어쩌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바로 그 '다름'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카지노 게임도, 소란한 초코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