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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림월 Mar 24. 2025

악취 #3

11.

P와 함께 몇 병의 와인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얼마나 많은 양의 술을 마셨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지난밤의 내 기억은 경매에 부쳐진 싸구려 물품처럼 누군가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입찰가가 확정된 순간 경매사가 낙찰봉을 쾅쾅 두드리듯이 기억은 사라지고 두통으로 인한 둔탁한 진통만 남게 되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나오니 카지노 쿠폰가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어제 누구를 만났길래 술을 그렇게마신 거예요? 나는 차마 P를 만났다고 말할 수 없었다. 카지노 쿠폰에게 P라는 존재는 겨우 기억해야만 하는 과거형으로 남아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언제든지 나와 내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력이라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내가 영향력을 대하는방식이었다. 이는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열등감이 만들어 낸 본능적인 척력일지도 몰랐다. 오늘의 일정을 묻는 나에게 카지노 쿠폰는 자신이 미술 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영화의 투자사와 미팅이 잡혀있다고 말했다.나는 외출하는 카지노 쿠폰를 마중하며 그녀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카지노 쿠폰의 가슴을 만지며 작은 멍울을 손으로 감쌌다. 아이 참. 카지노 쿠폰는 몸을 흔들어 나를 떼어내고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한 다음현관문을 열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 서서 카지노 쿠폰가 남기고 간 기척을 잠시 음미했다. 카지노 쿠폰의 가슴을 만졌던 손을 코에 가져다 댔다. 여전히 달콤한 냄새가 났다.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이번 주 연재할 소설의 구상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그 사람이 또 한 번 카지노 쿠폰을 달았다.


12.

선생님. 이번 회차를 보니 아주 긴 이야기를 쓰실 것처럼 보이는군요. 이야기라는 것은 너무 길면 작가 자신도 끝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짧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억지로 길게 늘인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글을 쓰지 못하면 생을 잃은 것처럼 여긴다는데 억지로 계속 쓰기 위해서 이야기를 터무니없이 늘린 것처럼 보인다 이 말입니다. 마치 살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셰에라자드처럼 말이죠. 시작을 못하는 작가와 끝을 맺지 못하는 작가 둘 중에 누가 더 불행할까요?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 라는 희망을 가진 자와 끝맺음을 못해서 절망을 가진 자. 끝을 맺지 못하는 작가는 불행한 겁니다. 자신을 못 믿는 거나 다름없는 거지요. 끝을 내지 못하면 여태껏 써 온 일생의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겁니다. 부디 작가님의 노력이 쓸모 있는 노력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카지노 쿠폰을 읽자마자 두통이 머리전체를 지배했다. 손에 묻어있던 달콤한 냄새는 사라지고 지독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나는 또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잠시 후에 다른 여러 독자들이 반박 카지노 쿠폰을 달았다. 수많은 카지노 쿠폰이 등록되는 바람에 휴대폰에서 알림 소리가 잇따라 울렸다. 그 알림 소리 때문에 두통이 온몸을 타고 내려와 모든 신경이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지노 쿠폰은 타인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짓밟아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카지노 쿠폰이 바로 올라왔다. 모든 노력이 칭송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카지노 쿠폰을 끝으로 카지노 쿠폰창은 조용해졌고 휴대폰 알림 소리도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씨발. 내 목소리인지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 마침내 허공의 일부가 되었다.


13.

카지노 쿠폰은 지속적으로 달렸다. 내 문법과 단어선택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스토리라인을 제안하며 이러 이런 식으로 쓰길 바란다는 카지노 쿠폰까지 올라왔다. 부부로써 여기는 지위와 자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로써가 아닌 로서로 써야죠. 기본도 안되어있는데 부끄럽지 않으세요? 독자들은 나를 걱정하고 옹호하는 카지노 쿠폰들을 달아주었지만 금세 시들해졌고 내 카지노 쿠폰창은 온통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카지노 쿠폰로 도배되었다.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활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하루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계속해서 술만 마시며 쓸데없는 공상만 하게 되었다. 구독료를 내던 독자들은 가입해지를 하면서 내 수입도 조금씩 줄어들게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카지노 쿠폰 따위 무시하고여전히 장편으로 출간하자는 제안을 해왔지만 나는 출판사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왠지 플랫폼에서 조롱받는 작가가 역경을 이겨내고 출간한 소설이라는 평을 들을 것만 같았고 편집자는 내가 보지 못하는 어두운 구석에서 나를 비웃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자 글을 쓰면 희미해졌던 절망감과 열등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더 이상 썩고 있는 것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 자리에는 절망과 열등의 껍데기만 존재했다. 나를 쓰는 자로 만들었던 부패된 몹쓸 것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깔끔하게 치워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배설할 것이 없어진 나는 불안해졌다. 자 그럼 이제 나는무엇이지?


14.

P의 전화를 받은 것은 카지노 쿠폰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였다. 카지노 쿠폰는 영화에서 소품으로 쓰일 카지노 쿠폰꽃 조각을 만들고 있었는데 사람 키만큼 거대한 카지노 쿠폰꽃을 만들고 있었다. 거대한 하얀 석고를 깎아서 만든 카지노 쿠폰는 모양과 형태를 거의 갖추고 있어서 마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카지노 쿠폰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뒤에서 껴안아서 놀래주려고 했을 때 전화가 울렸다. P였다. 카지노 쿠폰는 뒤를 돌아보며 나를 보고는 반색했다. P와 저녁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카지노 쿠폰와 나는 카지노 쿠폰가 만든 조각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카지노 쿠폰꽃 어때요? 카지노 쿠폰가 물었다. 근사한데. 예전부터 카지노 쿠폰꽃을 조각해보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됐어요. 나는 가끔 꽃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흔들리는 꽃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피어나는 거죠. 교교한 달빛아래서 진한 향기를 머금은 채 밤의 정령과 춤을 추면서 일생을 보내다가생을 마감할 땐 잎이 하나씩 떨어지면서 우아하게 죽는 거죠. 그리고는 다시 꽃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또 다른 여정을 떠나는. 당신 조지 오키프의 카지노 쿠폰 그림을 본 적 있어요? 단순하지만 거기에는 여성의 뜨거움, 축축하게 젖은 음습한 매혹, 따스한 피에서 나는 비릿함까지 모든 게 담겨있어요. 카지노 쿠폰의 눈빛은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보였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수그린 카지노 쿠폰의 이마에서 감추어진 영혼의 자락이 얼핏 보였다. 카지노 쿠폰는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상징하지. 조지 오키프의 그림은 욕망에 손대고 싶은유혹을 성기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당신의 그곳처럼. 나는 카지노 쿠폰의 가슴을 한 손에 움켜쥐며 말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깊은숨을 들이쉬자 카지노 쿠폰에게서 카지노 쿠폰향이 느껴졌다.


15.

P와 나는 예전에 다니던 '돋'이라는 술집을 찾아갔지만 그 자리에는 건물이 철거되어 벌겋게 파헤쳐진 진흙 투성이의 대지만 쓸쓸히 남아있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저녁이라 더할 나위 없이 황막해 보였다. 우리는 근처 선술집에 들어가 생맥주를 마셨다. P는 이번에 상업영화 투자를 맡았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을 들어보니 카지노 쿠폰가 미술감독으로 참여하는작품이었다. 이번에 감독들 미팅했는데 네 와이프가 앉아있길래 깜짝 놀랐어. 전공 살려서 영화에서 미술감독으로 참여하더군. 이 바닥에서 평판도 좋아. 너는 전생에 나라를구했냐. 복도 많다.

P의 입에서는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여러 이야기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P의 목은 점점 붉게 달아올랐고 입가에는맥주 거품인지 침인지 모를 하얀 수포가 조금씩 생겼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P의 아랫도리가 왠지 묵직해졌을 것만 같았다. P는 분명 무언가에 흥분한 것처럼 보였지만 애써 그것을 감추려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 역시 억지로 그것을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마음만 먹으면 그가 무엇에 흥분했는지 뚫어볼 수 있었으나 내 안에 무언가가 그것을가로막았다. 무의식의 검은 물결이 출렁거리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술을 마셨다. 검은 물결은 미끄러지는 파도를 만들었고 나는 실체와 분리된 표류하는 껍데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 모든 사고가 암전 되도록 피로해지고 싶었다. 카지노 쿠폰는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옷을 벗고 카지노 쿠폰의 옷을 벗겼다. 순간 약한 곳을 공격하는 거미처럼 카지노 쿠폰는 나의 목덜미를 와락 안았다. 카지노 쿠폰는 달빛 아래에서 격랑에 몸을 맡긴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내 배 위에서 창백한 달빛을 맞는 카지노 쿠폰는 깊고 푸른 어둠의 한 송이 카지노 쿠폰처럼 보였다. 신선한 카지노 쿠폰향을 내뿜을 것 같던 카지노 쿠폰의 가슴에서 비릿한 냄새를 맡은 건 착각이었을까. 적막한 귓속에 갇혀만 있던 소음들이소용돌이 지며 응축되었다가 하얀 액체로 밀려 나왔다. 나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위험한 교미를 하는 수사마귀처럼 허겁지겁 일을 치르고카지노 쿠폰의 품속에서 벗어났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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