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월 Apr 25. 2025

카지노 게임은 피할 수 없지만 좌절은 선택이다.

당신은 어떤 카지노 게임을 품고 있는가?

혼란스러운 시대다.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은 또다시 공석에, 정치인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는 대립하여 각자의 세계관 속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들의 말은 소음처럼 의미 전달이 아닌, 그저 크게 울려 퍼지기만을 위한 것이 된다.


그 커다란 소음에, 거대한 흐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휩쓸려 저마다 또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카지노 게임 위에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국가에 대한 카지노 게임감까지 얹힌다.


카지노 게임, 그야말로 카지노 게임의 시대다. 개인의 미래, 진로, 경제적 상황만을 걱정하던 평화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 과장 조금 얹어서 일상의 모든 것을 걱정하고 카지노 게임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카지노 게임을 온갖 뉴스와 미디어들이 계속해서 자극하고, 부풀린다.




카지노 게임감은 사람의 방향성을 결정짓는다. '돈'에 카지노 게임을 품은 사람은 경제적 지식과 제테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인간관계'에 카지노 게임을 품은 사람은 자신이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관리와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건강'에 카지노 게임을 품은 이는 올바른 식습관과 운동에 큰 노력을 한다. 이렇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카지노 게임'은, 어찌 되었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되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바꿀 수 있는작은 카지노 게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오히려 '좌절'을 겪기 더 쉬운 것은 이런 종류다. 연인, 혹은 친구에 대해 망가져 가는 인간관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 손을 쓸 수 없는 건강 상태. 실제로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노력도 해보기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낮은 기대와 자괴감, 자기 혐오 등이 섞여 이겨낼 수 있을 카지노 게임감에도 무너지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자신감, 혹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독기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좌절하고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해 버리고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것을 바라만 보며 주저앉은 사람과 달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자신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발버둥 치는 사람은 바라보는 현실부터 달라지며, 바라보는 세상 자체도 좌절한 이의 세상과 다르게 보인다.


정말로 좌절한 사람의 생각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직접 시도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해봤자 안된다, 그런 방법으론 할 수 없다,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란 말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신이라도 되지 않는 한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지금의 카지노 게임을, 현재 상황을, 이 모든 것에 엮인 자기 자신을 투정할 순 있지만 정작 실질적으로 이를 바꿀 수 있는 노력은 하기 싫다는 것이다.


당신의 고통은 정말 당신의 존재 자체를 산산이 부술 정도의 고통인가? 당신은 그러면 현재의 삶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을 때까지 합리화하기만을 바라는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하는 삶이, 영영 현재에 머무르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거라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고통이 부족한 탓에 일반적인 불편함을 극단적인 고통으로 여기는 것이다.

결국 고통에 대한 해결책은 '고통 그 자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