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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10. 2025

1007. 무료 카지노 게임 전부를 볼 것인가?

어쩌면 BC 3천 년에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는 면적 1,846㎢, 인구 69만 4057명(2019년 현재)이며 크레타섬은8336㎢ 인구 650,075(2020년 현재)이다. 크레타섬은 제주도 크기의 4.5배 정도 되는 크기이며인구는 비슷하다. 크레타는 상당히 넓으며 동서로 길게 산맥이 이어져 산세를 보면 섬 같지 않다.

2456m의 프실로리티스산이 최고봉이다. 기후는 온대성과 열대성의 중간기후로 연 강수량은 640mm로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섬 전체는 4개 주로 구분되며 북부는 완만하게 경사져있으며 커다란 도시와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올리브 생산지로 섬의 어느 곳을 가도 올리브농장과 포도농장을 볼 수 있다. 잠깐 살펴본 크레타섬의 식생은 이탈리아 남부와 포르투갈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비가 적어서인지 선인장, 다육식물이 잘 자라고 땅이 기름지기보다는 푸석푸석한 것에 가까웠다.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날리며 비옥하다기보다 건조해서 황량한 느낌을 준다.


크레타의 운명은 파란만장했다. BC 3000년 청동기시대에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미노아 문명을 꽃피우며 일대를 지배하며 그리스로부터 공물을 받았다. 미노아 문명은 BC 16세기에 절정을 이뤘다. BC 1450년경 미케네문명(그리스)에 의해 정복당했다.

BC 67년에는 로마에 의해, 824년 이후에는 일부가 아랍인의 지배를 받다가 1204년 베네치아인에게 점령당한다. 1669년 섬의 일부를 통제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베네치아인이 쫓겨나고, 1898년 오스만투르크가 쫓겨나고 1913년 그리스에 합병된다.

그리스본토에 가보지 않았으며 정치적 역학관계를 알지 못한다. 백과사전에 크레타주민은 크레타인으로 구성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역사적이나 지정학적으로나 또한 신화를 봐도 그리스와 크레타는 동질적이기보다는 이질적인 부분이 많을 수 있다.


작은아이 친구 중 무료 카지노 게임출신이 있는데 섬이 크니 모두 보려고 하지 말라고 했단다. 무료 카지노 게임에서는 7일간 머물 예정으로 스케줄러는 Iraklion을 중심으로 서쪽지방을 구경하기로 계획을 짰다. 동쪽보다 서쪽 풍광이 좋단다.

아마 젊은 사람들이 여행했다면 크레타섬 전체를 종횡무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여행은 돌아다니는 것보다 사람 없는 시골에 자리 잡고 먼 산 바라보거나 바닷바람 맞아가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보는 것이다. 스케줄러인 작은아이가 내 취향과 자기 취향 및 아내취향도 감안하여 여행 계획을 수립했을 것이다.

섬의 중심지인 Iraklion 항구에서 서쪽 끝인 키사모스까지 180킬로미터이며, 동쪽 끝 이타노스까지는 어림잡아 150 킬로미터 되는 고구마처럼 길쭉한 섬이다. 동서를 잇는 주도로를 고속도로라고 부르나 우리나라 고속도로와는 전혀 다르다. 일부구간만 고속도로 같으며 국도보다 못한 구간도 많이 있다.

남북으로는 50킬로 정도 되지만 2000미터 정도의 높은 산들이 동서로 이어져있어 남북도로는 구불구불하며 도로여건은 좋지 않았다. 대부분 왕복 2차선으로 360도 턴을 하는 구간도 많고 왕복 1차선 터널이 있어 신호등에 따라 교행해야 하며 마을을 지날 때도 왕복 1차선인 도로가 있어 극서행을 해야 한다.

경치 좋은 오래된 마을의 도로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도로가 좁을 뿐 아니라 옛날에 건축된 집이라 주차장이 없어 갓길에 주차해야 한다. 주차한 차들을 피해 다니려면 경차가 유리하다. 경험자들이 렌터카는 소형으로 렌트하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이 확실하다. 고고학적으로는 청동기시대에 크레타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였으나 그리스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바람피워 태어난 아들인 미노스를 크레타의 왕으로 둔갑시켰다. 그리스가 아버지이며 크레타가 아들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크레타를 여행하며 강성했던 미노스문명의 실체를 확인했다. 미노스왕이 아테네를 정복한 뒤 9년마다 소년소녀 각 7명을 공물로 바치게 할 만큼의 충분한 국력을 갖고 있었다. 미노스문명이전인 석기시대에는 그리스와 크레타 사이에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는 크레타가 그리스의 아버지이나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리스가 크레타의 아버지다.


크레타를 돌아보며 어쩌면 BC 3천 년에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크레타의 뜨거운 태양을 보며 신화 속 이카로스도 허구가 아닌듯했다. 이번에 구경하지 못한 크레타 동쪽에는 태양에 밀랍이 녹지 않게 조심스럽게 날아다니고 있는 이카로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기회가 다시 온다면 이카로스를 만나러 크레타 동쪽을 가보려 한다. 크레타는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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