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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May 04. 2025

카지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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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의 삶을 결정하는 일은 정치가 하는 것도, 사법부가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카지노 게임이 합니다."

말의 표면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노래하지만, 그 심층에는 정치인의 전략이 깃들어 있다. 이 말은 자신의 책임을 카지노 게임에게 떠넘기는 것인가, 아니면 카지노 게임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는 간절함인가? 선거에서 승리해 유전무죄를 하겠다는 교묘한 암시인가, 아니면 법원의 판결보다 민심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의 표현인가?

사법적 위기의 정점에 선 정치인에게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는 가장 강력한 방탄복이다. "카지노 게임만 믿고 나아가겠다"는 말은 감동적으로 들리지만, 그 말속에는 정치적 생존을 우선하겠다는 권력 의지가 숨어있다.

이재명 후보의 언어에서 '카지노 게임'은 주체가 아니라 도구다. 그는 카지노 게임을 외치지만, 실은 스스로를 구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생존을 정당화하는 수사학적 전략일 뿐이다.

물론 정치인의 언어는 늘 복수의 얼굴을 지닌다. 전략이면서 동시에 진심일 수 있다. 피로한 지지층에게 던지는 마지막 호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가 방탄복처럼 사용될 때, 그 언어의 목적지를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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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대응 또한 우려스럽다. "한 달 뒤에 보자", "삼권분립을 없애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마치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듯 절박하고 위험하다. 대법원 판결이 대선 전에 나오기 어렵다고 보고,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사법부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명백한 국헌문란이다. 그런 발언이 반복될수록 이미 유죄가 사실상 확정된 이재명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1심처럼 집행유예로 봐주려고 하다가도 오만하고 방자한 후보와 카지노 게임처럼 심기경호에 몰두하는 지지층을 보면, 법관들도 사회 안정을 위해 법정구속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재명이 유죄를 받아도 대통령이 되는 데 지장 없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범죄자 출신이 다수당을 이끌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직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은 본인에게 걸린 재판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헌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법을 개정해 본인이 처벌받지 않고 사실상 영구집권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우선 대법원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대법관의 숫자는 법원조직법에서 14인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개정해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리고 충성파로 채우는 방법이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숫자는 헌법에 정해져 있어 바꾸기 어렵지만, 헌법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방법으로 헌재를 무력화할 수 있다.

선거법을 고쳐 집권 세력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나면, 2/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선거법을 개정하고, 심지어는 헌법까지 바꿔 사실상 영구집권의 길을 열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가능성은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공포는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카지노 게임이 결정한다."

너무 자주 들어 무감각해진 구호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주체로서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

그 카지노 게임은 어떤 카지노 게임인가? 정보의 해상도가 떨어진 카지노 게임, 혐오에 중독된 카지노 게임, 유튜브 알고리즘의 포로가 된 카지노 게임. 그 카지노 게임의 선택은 과연 합리적인가?

선택의 정당성은 투표 수에 있지 않다. 판단의 질에 있다.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는 선택은 민심이 아니라 군중심리다. 그것이 다수결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는 복수가 아닌 단수로 쓰인다. 마치 하나의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제 카지노 게임은 무수한 개인들의 집합체다. 각자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들이다. '카지노 게임'이라는 추상화된 개념 속에 너무 많은 것이 지워진다.

카지노 게임는 폭풍우를 앞두고 벌거벗은 채 춤을 추는 자를 의미한다. 일부 극단적 지지자들이 국가적 위기 앞에서 맹목적 충성과 집단적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 카지노 게임가 따로 없다. 대법원의 판결에 입에 거품을 물고 성토하며,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지키려는 대상은 정말 카지노 게임의 이익인가, 아니면 특정 인물의 정치적 생존인가?

카지노 게임이 결정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그 카지노 게임이 깨어 있어야 한다.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당신은 이재명의 말이 옳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전략이라고 읽히는가?

지금이야말로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이름들, 즉 우리 자신 하나하나의 책임을 되새길 때다. 판결은 법원이 내리지만, 정치의 방향은 결국, 깨어 있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재명의 말은 옳다. 카지노 게임이 결정한다. 하지만 어떤 카지노 게임인가? 정보의 해상도가 떨어진 카지노 게임, 혐오에 중독된 카지노 게임이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도, 사법도 아닌 카지노 게임 스스로의 질문 능력이다. 판결은 내려졌지만, 판단은 이제 시작될 뿐이다. 카지노 게임처럼 맹목적으로 춤추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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