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내가 러닝을 못 끊지
청계천은 서울의 유명한 데이트 명소다. 광화문이나 종로에서 맛집 데이트를 즐기고 부른 배를 꺼트릴 겸 걷기 좋다. 특히 종로5가 광장시장의 신선한 육회와 고소한 빈대떡은 줄 서서 먹을 만큼 유명하다. 육회 외에도 꽈배기와 떡볶이, 비빔밥 등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덕분에 광장시장 앞 청계천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연인들로 북적인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누비며 달리는 내가 있다.
청계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닝코스다. 워낙 자주 달리다 보니 산책로 상태에 빠삭함은 물론 스마트워치를 보지 않아도 달린 거리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산책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가끔 아버지뻘 어른들이 “헛둘헛둘” 기합을 넣어주시기도 하고, 마주 오는 러너와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한다.
청계천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폭우가 쏟아져 물이 넘친 다음날은 산책로 위에서 미처 물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를 만나기도 한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거북이가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지인에게 말하면 대부분 믿지 않지만, 해가 지면 드물게 의외의 동물을 마주치기도 한다.
어느 날 저녁 평소와 같이 청계천을 따라 달리던 중이었다. 산책로 옆 갈대 사이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보통 참새나 비둘기, 오리가 부스럭거리곤 하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지나치려던 찰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길을 잃은 강아지나 고양이인가 싶었는데 너무 예상 밖의동물이라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야생의 카지노 게임였다.
예전에 부모님이 강원도 대관령에 사실 때 카지노 게임를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은 닭을 10마리 정도 키우셨는데, 저녁을 먹은 후 갑자기 닭장에서 닭들이 꽥꽥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와 랜턴을 들고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달려 나갔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랜턴을 비추니 이미 닭의 대부분이 죽고 살아남은 닭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 그물망에 얼굴을 박고 밖으로 도망치려 애쓰는 무언가가 보였다.
처음엔 멧돼지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살펴보니 카지노 게임였다.동물원에서 보던 귀여운 카지노 게임는 달리 어찌나 사나운지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사냥을 다니시는 이웃 분께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이 손쉽게 너구리의 목덜미를 잡아챔으로써 그날의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너구리는 이웃 아저씨가 데려가셨는데 그 후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청계천의 너구리를 마주하자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혹여 달려들지 않을까 긴장하며 너구리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저녁이라 너구리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마 녀석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두 겁쟁이의 눈치 싸움은 결국 내 뒤로 누군가가 걸어오자 너구리가 도망가며 끝이 났다. 내 뒤로 걸어오던 분은 나와 다르게 강해 보였던 것일까?
같은 곳을 반복해서 달리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하지만 카지노 게임 만남처럼, 달리다 보면 어제와는 다른 사람과 동물, 풍경, 날씨, 공기, 냄새가 새삼 새롭게 다가오곤 한다. 대부분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이런 변화들은 내게 좋은 자극이 된다. 스트레스가 풀릴뿐더러 무의식적으로 듣고 보는 많은 것들이 내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내일은 무엇을 마주치게 되려나, 이러다 악어를 만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