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귀가하길 바란다
제주도2박 3일 여행권을 소지한 지인 덕분에 왕복 항공권, 렌터카 이용, 리조트 2박 등 모두 무료라고 했다.
“그런 게 있었어? 자세히 말해봐?”
“뭘 알려고 그래. 금요일 밤늦게 올 거야.”
설날 연휴에 카지노 게임는 미국에서 온 조카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염탐했는데, 이번에는 제주도 여행이라며 툭 몇 마디 던지고 의기양양, 폴짝폴짝 뛰어나갔다. “여행경비 좀 줄까?” 했더니, 철저히 더치페이(dutch pay)한다며 손사래 쳤다. ‘홀로 남겨진 내게 미안해서 그러겠지?’ 나는 슬쩍 착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날씨가 심각했다. 전국적으로 눈이 오고 강풍에다 기온이 급강하한다고 했고, 벌써 제주도에는 눈이 1m 이상 왔단다. ‘허, 하필이면 이런 날 제주도 가다니. 날씨 좋은 날 가지. 꼭 오늘 가야 하나?’ 이런저런 얘길 나 혼자 해댔다. 예약일임을 고집하며 이미 출발한 카지노 게임의 여행 일정이 몹시 걱정되었다.
점심때, 카지노 게임가 끓여놓은 김치찌개에다 밥을 한 그릇 뚝딱했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운다며 큰 냄비 가득히 돼지고기와 두부를 많이 썰어 넣은 김치찌개 속에는 고마운 카지노 게임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운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또 보고 싶어서 저녁때에도 김치찌개를 더 많이 먹었다. 그리곤 설사했다. 어떤 음식이든 많이 먹으면 민감한 대장(大腸)이 받아들이질 않는 내 체질에 속상했다.
카지노 게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맛있는 귤을 주문했으니 잘 먹으라고. 그리고 제주도는 날씨가 좋고 눈도 많이 안 와서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오후 들어 꾸물대던 날씨가 밤 되더니, 전국적으로 대설주의보가 예상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와 일행들이 걱정되었다. 무사히 즐거운 여행을 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목요일 아침, 일어나 커튼을 걷어 젖히니, 베란다 밖은 온통 하얀 눈 세상이 되었다. 밤사이 많은 눈이 내린 것이다. ‘아참, 제주도 날씨는 어떨까?’하고 검색해 보니 많은 눈이 온다고 했다. 걱정이 더해졌다. 웬걸 카지노 게임에게서 ‘이중섭 거리’에서 찍은 인증숏(認證shot)과 메시지가 왔다.
이중섭! 전쟁, 가난, 외로운 죽음. 그의 인생의 줄거리는 늘 들어도 아픔인 것 같다. 그 거리를 만들고 그의 그림의 가치를 기리는 사람들이 참 고맙고 멋있다.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너무 햇살 따스한 제주는 낮은 건물들과 자연이 늘 고요하면서도 아늑했다.
다행스러웠다. 알찬 여행을 하길 기대하고 싶었다.
금요일 아침에 또 커튼을 젖히니, 눈은 안 왔지만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안전 안내 문자에서는 전국적으로 대설, 한파로 내린 눈과 기온 하강으로 미끄럼 사고 위험이 높다며,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차량 운행 시 안전거리를 유지 및 감속해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밤늦게 귀가한댔는데, 무사해야 할 텐데. 나는 노파심에 가슴 조였다.
오후 1:09 카지노 게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제주 태풍으로 항공기 결항, 며칠 더 여행해야 할 듯.’
오후 3:49 ‘지금 완전 결항.
오후 4:17 '공항 의자에서 자고 내일부터 차례대로 비행기 타겠다. 택배 도착했을 테니 칸칸이 냉동고 열어서 적당히 나누어 넣으세요.’
카지노 게임의 메시지를 받고 걱정이 현실 되어 옴에 놀랐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가 보내준 생선 택배에는 감동했다. 취침 전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내일부터 날씨가 좋아져서 카지노 게임가 무사히 올 수 있기를 기원했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했다.
“어제 공항 의자에서 잔다고 했는데, 어땠어?”
“응, 솔이가 방 얻어줘서 따뜻하게 잘 잤어. 오늘 갈 수 있을 거야.”
“다행이네. 역시 딸내미가 최고네.”
오후 2:10 오늘 비상기로 4시 이후 탑승가능함.
오후 5:37 비행기 탑승함.
카지노 게임 메시지가 반갑다.
언젠가 페북에 포스팅한 카지노 게임의 글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나는 카지노 게임의 안전 귀가를 총총히 기다리고 있다.
내 것이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지상의 숟가락 하나'라는 책 제목처럼 지상에 내 남편이 있고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서 정신을 못 차리는 오늘이 있었다. 빈손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부터 많이 손에 들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게 수없이 많다는 것에 놀랍다. 감사와 감격스러운 감정이다. 소중한 내 것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한 과제임을 또한 받아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