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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Mar 02. 2024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불효녀다

한 번만 다시 말해줄래?

나는 같은 말을 두 번씩 하는걸 싫어한다. 뭐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만은 정말 싫다. 아마 그건 엄마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귀 한쪽이 잘 안들리신다. 선천적인건지 뭐때문인지, 사고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하여간 엄마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한쪽귀의 청력을 잃은 채 살아왔다. 내가 어릴 때는 그걸 몰랐다. “엄마~ 이거 내일까지 해야돼” “뭐?” 엄마에겐 항상 두 번씩 말해야했다. 그 어떤 짧은 말이라도. 두 번이면 다행이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까지도 가곤 했다. 나는 엄마 귀에 대한 사실을 모른 채 ‘내가 발음이 많이 안 좋나?’라는 생각을 했다. 점점 발음에 자신이 없어져 웅얼거리는 투로 말을 했고 그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다. '엄마는 내 말에 관심이 없나봐' 몇 번씩 되묻거나 아예 듣지 못한 듯 답이 없는 엄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얘기에 관심이 없거나 내 발음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며 꽤나 자신감없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 웬걸, 밖에 나가면 아무도 내 발음을 지적하기는 커녕 되묻는 사람조차없다.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것도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대답을 한다. 뭐야, 다들 소머즌가? 신기하면서도 같은 말을 두 번씩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성인이 되고나서야 엄마가 귀에 대한 얘기를 알게 됐지만 나는 종종 그 사실을 까먹었다. 아니 까먹은척 하고 싶었던걸지도.




"엄마 이거 반찬 맛있다. 어릴때는 별로였는데 크니까 입맛이 바껴"

"뭐라고?"

"...아냐. 됐다."


같은 말을 수십년간 매번 두번씩 반복한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조금만 관심있게 들어주면 한 번에 대답할 때도 많잖아? 왜 자꾸 같은 말을 두번씩 하게 하는거야?


말하기를 그만두고 마저 밥을 먹는 나를 보고 엄마는 속에서 뭔가 욱 올라오셨나보다.


"니는 어떻게 남보다 못하노"

"..."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고 다시 말해주는데 니는 가족이라는게.. 엄마 귀 안들린다고 무시하나"


한 사람의 날선 말에는 그보다 두배 더 큰 목소리로 화답해주는 우리의 레퍼토리를 깨고 침묵을 지키는 나를 보자 엄마는 본인이 더 당황하신듯 2절 3절까지 가야 할 멘트도 거기서 끝이 났다. 우리는 침묵속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엄마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었던 건, 부끄러워서였는거 같다.






나는 두 귀의 청력이 멀쩡함에도 엄마가 하는 말들을 자주 까먹는다. 듣지도 않고 영혼없이 "응~" 대답만 하는 식. 이건 도대체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엄마보다 훨씬 자세가 나쁘다. 여기서 내가 엄마를 싫어하는 이유를 운명적으로 만난 단 한 문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의 일부가 아닌 것은 거슬리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나의 일부가 아닌 것은거슬리지 않는다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 문장을 처음 본 순간 깨달음을 얻었고 꽤 오래 곱씹었다.

아아, 내가 엄마를 미워하는 이유는 이거였구나.

나 역시 타인의 얘기를 잘 못듣거나 흘려들은 적이 많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하고 있었구나. 그렇게도 안닮아야지 안닮아야지 했지만 싫어하는 모습까지 쏙 빼닮아버린 엄마라는 존재는 왠지 나의 못난 부분만 모아놓은 결정체 같아서 볼 때마다 미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결점들을 자꾸 직시하게 해서, 그래서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효녀는 부모님이 달아주는 타이틀이고 좋은 부모는 자식이 달아주는 타이틀이라면 엄마와 나는 '좋은 부모', '효녀' 둘 중 어느것도 얻지 못할 사이다. 그만큼 우리 관계는 애증으로 엉망진창 얼룩져있다. 나는 나를 끊임없이 화나게 하고 상처입히는 엄마를 사랑하기를 멈춘지 오래됐지만 분노마저 애정의 다른 이름이라는걸 얼마전에 깨달았으니까. 스스로도 인정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불효녀다. 내 결점들을 비추는 거울같은 엄마에게 살가운 말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전시켜 없앨 생각보다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내가 더 이상 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의 일부가 아닌 엄마를 미워할 일도 없을 텐데 뭐 때문에 둘 다 품고 살려는지. 나는 엄마가 항상 내 말을 흘려듣는다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비난했지만 엄마 말을 여태껏 흘려들은 건 나였다. 나는 엄마가 잘 안들리시는 귀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침묵은 엄마가 대화의 물꼬를 틈으로써 끝이났다. "입맛이 계속 바뀌지? 이것도 한 번 먹어봐" 두 번씩 얘기하기 싫으니까 그냥 아예 입을 다물어야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던 나와는 달리 엄마는 또 다시 대화를 시도하고 들으려했다. 나는 조금 더 또박또박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엄마는 한껏 귀를 기울인 토끼같은 모습으로. 마치 셔틀콕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배드민턴 선수들처럼 우리는 문장 하나도 낙오되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해 주고 받았다.




예전에 말을 막 시작해 옹알이를 하는 아이에게 "뭐라고? 다시 말해줘"라며 되물은 적이 있다. 원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나인데 아기의 옹알이는 귀여움의 수치만큼 부정확한 수치도 높아서 몇 번이고 물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거다. "미안해. 뭐라구?" "한 번만 더 말해줄래?" 나는 묻고 또 물었으나 갓 잠에서 깬 아이는 놀랍게도 조금의 짜증도 없이 똑같은 말을 하고 하고 또 했다. 결국 내가 그 단어를 알아내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기천사마냥 활짝 웃었다. 감동과 죄책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이 조그마한 아이조차 수십번을 반복해서 말해주는데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반복해서 말해준 적이 있나.' 없었다. 수십번은 커녕 두 번 조차 말하지 않으려 하는 나에게 이 아기천사는 과분한 선물같았다. 아기를 보며 생각했다. '아가야. 오늘도 나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는구나. 고마워. 앞으로 엄마도 할머니한테 너처럼 반복해서 말할게' 그렇게 다짐했건만 일상 속에 무뎌진 내 다짐은 또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는 정말 불효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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