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어땠는지 더듬어본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이불을 두른 듯 눈에 덮여 있던 창밖의 소나무들이 습설을 견디지 못하고 휘어지더니 어느 순간 쩡, 소리를 내면서 찢어졌다.
이틀 동안쏟아진 폭설 앞에서 나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내내 서성댔다. 때를 놓쳤다는 후회 때문에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날 눈발이 굵어지기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는 자책이 다른 생각들을 눌러버렸다. 그랬다면 미끄럽기 전에 친정에 도착할 수 있었을 거였다.
엄마는 길이 막혀오갈 수도 없으니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셨다.
"아버진 어떠세요? 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 나는 하나마나한 안부를 물었다.
"그냥 그렇지 뭐. 화장실 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괜찮아." 엄마는 조금은 기가 눌린 듯 힘없이 말씀하셨다.
"엄마는 식사하셨어요? 엄마라도 챙겨드셔야 돼요." 나는 억지로 밥을 밀어 넣듯 무기력한 엄마를 종용했다. 그게 무슨 도움이라도 되는 듯이. 하지만 평생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엄마의 약한 비위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말소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오후에 언니와 통화가 되었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정집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여주는 눈이 그쳤다고 했다. 큰길은 물론이고, 동네로 들어가는 길도 마을 이장이 트랙터로 제설작업을 하고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카지노 게임가 식사를 아예 못하시네. 영양케어만 두 모금 드셨어. 문제는 기침을 하시는데 기운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하셔. 병원에 모시고 간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네." 행동성향인 언니의 목소리엔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억눌려있었다.
"그렇게 싫어하시는데 어떻게 모시고 가겠어? 지난주에 내가 말씀드렸을 때도 절대 안 간다 하셨거든. 암튼 여기 눈 그치면 나도 출발할게." 결연한 의지로 약속했다.
"무리하지 말고 차라리 내일 와." 언니는 내 의지를 가볍게 제어하듯 말했다.
눈발은 점점 거세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되었다. 언니 말대로 내일이나 갈 수 있을 모양이었다.휴대폰의 알림을 스크롤하면서 하나씩 지웠다. 딸아이 생일이라는 알림이 떠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생일상이나 차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에 딸가족을 초대했다. 출장 중인 남편은 저녁 늦게나 도착할거였다. 따라서 아이들 입맛에 맞는 메뉴로 정하면 되니 고민할 일도 없었다.
바쁘게 식사준비를 했다. 카지노 게임 때문에 친정에 갈 일이 잦지만, 딸아이 생일 전후로 함께 하려고 미리 장을 봐둔 것이 다행이었다.
닭다리살에 마늘즙과 소금으로 밑간을 해놓고 제철에 농축해서 만들어놓은 토마토페이스트를 해동했다. 볶은 양파와 손질한 깍테일새우를 데쳐파스타를 만들고 닭다리살을 앞뒤로 노릇하게 익혀 양념장에조렸다. 토마토파스타에 손주와 사위까지 다 좋아하는 양념닭 요리였다.
손주의 행차는 언제나 두근두근 설렜다. 검은 점퍼에 선글라스까지 쓴 손주가 왔다. 세돌이 막 지난 손주는 요즘 블랙의 마력에 푹 빠져 있었다. 블랙자동차 미니어처를 보물처럼 싸들고 나타난 손주와 저녁을 먹고 내일부터 며칠 외할카지노 게임께 다녀올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아이는 외할카지노 게임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첫 손주였다. 그래선지 결혼과 출산 후에도 열심히 외갓집에 다니며 외할카지노 게임께 증손자를 보여드리며 따스한 시간을 선물했다. 딸아이도 외할카지노 게임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시간 내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실내화 없이 지낼 수 없는 나에게 손주가 장난을 걸어왔다. 내 실내화를 벗겨서 집안 어딘가에 감추는 놀이였다. 한바탕 손주의 까르륵 넘어가는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언니의 전화였다.
왜 그랬을까! 하루가 멀다고 전화통화를 하는 언니의 이름을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통화를 승인하고 휴대폰을 귀에 대는 짧은 순간 질식할 듯 가슴이 조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언니의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말과 울음이 뒤섞인 언니의 음성에서 음절들이 끊어져 나왔다.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가... 돌아가셨어.. 어떻게... 카지노 게임..."
나의 스승, 나의 영웅이 떠나가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카지노 게임는 내가 속한 이 세계를 벗어나 영원한 별이 되셨다.
*오랜만에 글을 발행합니다. 지난겨울 몇 년간 간병하던 친정카지노 게임께서 소천하시어 애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에겐 너무도 특별하신 카지노 게임였기에 카지노 게임은 뜨겁습니다. 카지노 게임 생의 격렬한 기운과 사의 고적한 흔적들이 객관화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처럼 마음이 허락하는 날에 카지노 게임와 함께한 일화들을 기록하는 것이 사랑에 빚진 딸로서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힐링가객을 찾아주시고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