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목에 암이라 수술하고 병원에 있네요. 아까 두고 가신 모든 것 다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날아온 문자에 어찌 답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한참을 고심했더랬다. 기도의마음을 담아답장을보내고는 그녀가 어찌 살아왔을지 지난날들을 잠시 되돌아보았다.직접 들은 것은 없기에 추론에 불과하지만 걸걸하니 입담이 좋다는 것은 그녀의 작은 어머니를 통해 익히 전해 들은 바 있다.
차로 20여분 거리에 농사채가 조금 있다.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거리상우리가 전적으로논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근처 어르신께물관리를 부탁하게 되면서 인연이 되었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나면 감사한 마음에 이것저것 사들고 어르신댁을 방문하곤 했다. 차가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엔 언제나 냉기만이 가득했다. 아까워서 불한번 제대로 지피지 않은 냉골에서 그렇게 몇십 년을 마주했었다. 벽에는 오래된 가족사진들이 줄줄이 걸려있었고,큰아들이 서울대를 나왔다며 불편한 한쪽눈을 씰룩거리시며 자랑을 하시곤 했다. 제 눈이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큰 아드님 역시 몸이 불편해 보였다. 할머니의 일생이 어떠했을지는...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께서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였다.한쪽 다리가 불편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따스했던 분이카지노 게임 추천. 월남전에 참전하여 떡하니 걸려있던 훈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자연스레 할머니께서 자주 말씀하시던 조카딸 집으로 우리 집 논농사는 이관되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조카딸은 서울에서 공장생활을 하다 시집을 와서 한동네에 살게 되었다고 하였다.그런 똑똑한 조카딸은 시골동네 어르신들을 대신해 전자제품을 편하게 사실 수 있도록 연결해 주신다고 하였다. 자식들이 신경 써 주는 댁이야 알아서들 들여준다지만 다들 살기 바쁜 세상에 변변한 자식 하나 없는 댁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존재였을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마저도 치매에 걸려 사경을 헤매신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자식들 집으로 옮겨져 뵐 수가 없었다. 늘 자식들 자랑을 하며 이것저것 싸 주시던 할머니셨는데 그 많은 재산 자식들에게 주려고 그렇게 누추하게 사셨단 말인가. 그 동네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더랬다. 온 동네가 들썩이고 이미 팔려버린 집에서 버티다 떠나버리셨다. 어느 날 지나다 보니 집터만 덩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온화했던 미소만이 맴돌고 있었다.
온 동네가 파헤쳐져 황톳빛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곧 한다 하면서도 미뤄지던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전날올해 농사지을 볍씨와비료등을 가져다 드리겠다고 미리 약속을 하고 나선 길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내일은 제가 없을 거라며 아저씨께 말씀을 드려 놓겠다고 분명 편안한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었다. 그런데병원이라니. 그것도 암이라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란 것인지.이미 칠십 중반이시니 노인이긴 하지만 시골에선 다르다. 분명 약속을 하고 갔음에도 아저씨는커녕집터도 사라져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데 전화도 받지 않으셨다.
할 수 없이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렸다.마취에서 덜 깬듯한 목소리로 병원이라 하셨다. 아뿔싸! 아, 네네네... 지레짐작으로 가타부타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작년봄에 쓰러져가는 집 앞에서 아저씨를 보고는 깜짝 놀랐었다. 뵐 때마다 소주에 절어거무죽죽 주름졌던 얼굴이 봄햇살을 받아 빤닥빤닥 빛이 나고 있었다. 겨우내 얼굴에 뭔 사단을 내신 것이었다. 분명 아주머니께서 서둘러서 그리된 것일 게다. 그럼 이번에는 아주머니께서 얼굴에 손을 대신 건가.내 짧은 소견으로 그리 짐작하며 동네분들을 찾아 나섰다.
마침 포도밭에서 호미를 들고 계시는아주머니께 비위 좋게 인사를 하며 도대체 이 동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물어보았다. 별다른 표정 없이 그 집은 쫓겨나서 저 시커먼 하우스로 살림을 옮기셨다고 하였다. 그랬다.다른 집들은 모두 떠나고 없는데 마지막까지 사람이 산다고 하기에는 그런 집에서 살고 계셨기에 항시 밖에서 비료와 볍씨등을 드리고 돌아서곤 했었다. 이미 내 집이 아니니 무너져도 수리를 할 수가 없어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암이라니? 그런 것도 모르고 오해를 하고 말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겨우 아저씨와 통화가 되었다. 논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비닐하우스에 시커먼 덮개를 씌워 놓은 곳 한쪽에 물건을 내려놓고 가라셨다. 때마다 전화를 해도 잘 받지도 않으시고 약주만 좋아하시는 분이므로 주로 아주머니를 통해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곤 했다. 오늘도별수 없이 아무도 없는 하우스 앞에 내려놓고 사진을 찍어 보낸 후에야 받은 문자였다. 이제 겨우 땅을 평평하게 다지고 있으니 3년 후에나완성되는 조합원 아파트에 들어가서편안하게살아보기라도 하실 텐데. 내 마음이 온통조급해졌다. 부디 치료 잘하시고 무사히 회복되시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아주머니께서 온전한 내집에서또 다른 삶을 꼭 누려보시기를 간절히 카지노 게임 추천해 보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