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과 선택 (9)
선의와 악의 경계 : 동기와 결과의 균형
걱정은 내 안에서 시작되며, 대게 이것을기반으로 선택을 한다. 우리는 이것을 예방이라고 부른다. 이는 개인적인 성찰과 진지한 고민을 통해 나오는 내면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善하다. 다만 이것이 내면에 머무르는 한도 내에서만 그렇다.걱정이 외부로 표출되면 '판단과 참견'으로 변질되어 惡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근래에 동기의 선함만을 칭찬하며 결과를 간과하는 '공감'이라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는 극단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아니 낳았다.12.3 계엄 사태의 계몽령 같은 주장은 동기의 선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결과를 무시했을 때 나타나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결과를 중시하자는 말은아니다. 이런태도는 물질만능주의와 생명경시풍조를 초래하며, 전쟁과 같은 비극을 반복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과에만 매달리며 동기를 소홀히 여긴다면, 과정 속에서 개인의 성찰과 성장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동기와 결과의 균형은 판단과 선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절함의 귀환 : 시대의 요구
정의와 공감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하지만사회는 다시금'느좋('느낌 좋은'을 줄인 신조어)'이나' 무해함'같은 형식적인 친절함을 요구하고 있다. 친절함은 선의가 아니더라도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예의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 선택이 외부로 드러나는 균형 잡힌 표현이라면 가장 이상적일 거다.
내면의 선함이 외부로 표출될 때, 친절함은 참견이나 판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내면의 선한 의도를 넓히면서도 이를 외부로 드러내는 행위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친절함이 다시금 중요한 시대는 직설과 냉철함이 초래한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포용과 조화의 내면
궁극적으로는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동기와 결과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넘어, 모든 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포용적 태도가가장 이상적이다.선의의 경계를 넓히며, 친절을 포장하지 않고 진정으로 선함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더 큰 조화에 도달할 수 있다.도교의 물아일체, 불교의 해탈, 기독교의 사랑... 모두 내면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치라고 생각한다.이러한 보편적 메시지는 판단과 선택, 카지노 쿠폰과 참견을 넘어선 포용과 조화를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길을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
약자와소수자들에 대한 반감. 특히 '너의 선택을 나카지노 쿠폰 강요하지 말라'는 등의타인을배척하는감정은 내면의 선한 영역에 머무르게 둬야 한다. 표출하는 순간 악이 된다. 역차별이라고 하는 카드로 정의감을 건드리는것은 쾌감에 불과하다. 약자와 소수자에 속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이미 차별의 시작이다. 태어나보니 그런 것이다. 즉 선택이 아니라는 말이다.강자와 다수자들이 역차별을 논할 대상이 아니다.
강자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역차별을 논하는 순간 스스로를 약자와 소수자라고 선언하는 꼴이 되어버린다라고도 할 수 있다.이런 원리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분위기상 혹은 느낌적으로,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침묵하는 대중'은 알고 카지노 쿠폰. 그래서'나의 선택을 너카지노 쿠폰 강요하지 않겠다'라는 친절한마음이 점점 각광받는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