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010
2006년의 봄. 꼴통 주제에 팔자에도 없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북한의 핵무기 실험이 있었고, 오천 원 신권이 발행되었다. UCC라는 이름의 동영상들이 대관절 등장하더니 한국을 낯선 광기로 몰아넣었으며, 그래선지 어째선지 유튜브라는-이건 또 뭔가 싶은 회사가 급성장 중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카지노 게임 대단한 듯하면서도 실상 허공을 맴도는 소음들이 시대의 확성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그렇구나. 콧물을 훔치며 나는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크흥-. 그 무렵엔 자주 콧물이 흐르곤 했다.
누가 뭐라든 이상한 봄이었다. 오랜 냉동수면을 마치고 새로운 행성에 첫 발을 내디딘 인류처럼,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삐걱삐걱 주변을 살폈다. 마치 UCC인 듯 짜잔- 하고 등장해 사람 좋은 표정을 하는 선배들(언제 봤다고?), 듬성듬성 구멍 난 시간표, 그러거나 말거나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인간 하나 없다는 사실까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무채색이던 삶 위에 몇 달 사이 누군가 형광펜이라도 휘갈긴 듯 생경하다 못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tyger! ty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William Blake의 The Tyger를 낭독하며 문득,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싸대기를 올려붙이던 고3 담임을 떠올렸다.
네가 이 새끼야. 수도권 대학을 가면, 응? 다른 애들은, 응? 평양으로 갈까? 응?
응? 마다 한 대. 즉, 세 대를 맞았지만 맞는 일엔 원체 이골이 나 있던 터라, 굴욕감이나 통증보다는 평양이란 말에 웃음이 삐질 새어 나왔다. 그래서 보너스로 두 대를 더. 요컨대 그 시간들은 다 뭐였단 말인가. 내 스승은 촌지나 받아먹던 고3 담임이었고, 그가 내게 쑤셔 넣은 건 신비주의 영문학이 아니라 모욕적인 언어와 체벌이었다. 역시 카지노 게임 게, 교육 아니었나? 갑작스러운 교무실 호출처럼 끌려가듯 마주한 스무 살이란 건 말하자면
엣-췌!
였다.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곧 마주하게 될 낯선 세계와의 첫 접촉 반응. 나는 또 한 번 어디론가 이주하는 참이었고, 세계관의 변화란 늘 물갈이 증상을 동반하는 법이었다.
꽃가루 카지노 게임입니다. 몰랐어요?
그럼요, 몰랐죠. 작년까진 멀쩡했으니까요. 이건 뭐, 분에 넘치게도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김에 붙은 디버프(de-buff) 같은 걸까. 어쨌거나 왜, 인생은 등가교환이라고들 하니까.
* 항히스타민제 : 히스타민 수용체를 억제하여 카지노 게임 증상을 완화함. 졸음을 유발할 수 있음.
뾰족한 치료법도 없다니 매년 봄이면 환자가 된다는 거네. 거 참 기구하다. 아니 그런 말을 붙이기에도 살짝 애매한 운명이야. 약 봉투에 적힌 글을 유심히 읽으며 Q는 말했다. 고등학교 2년을 함께 보내고도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진학한 그는 마치 2년 전쯤부터 대학생이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의 유난스러움을 비웃었다. 카지노 게임고 뭐고 공강이 끝나간다며. 강의실로 향하는 길엔 연분홍색 카지노 게임이 숫제 세계를 뒤덮을 기세로 피어나고 있었다.
- 시속 5cm래.
- 무슨 개소리야?
- 카지노 게임이 날리는 속도.
- 풍속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 그건 그러니까, 그냥 카지노 게임 걸로 해. 문과 주제에.
그 무렵 자주 꺼내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제목에 대해 떠들다가 생각지도 못한 풍속 앞에 말문이 막혀 버렸지만, 그래서 뭐. 5cm든 10cm든 그런 얘기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그걸로 됐다는 느낌. 5cm로 남아 주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강의실 대신 술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카지노 게임이 날리는 속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카지노 게임과 수업은 공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결론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숱한 봄날들이 빼곡하게 줄 서 있었다. 벌러덩 누워 날리는 카지노 게임의 이파리를 세어 볼까 싶을 만큼. 그렇게 무용한 시간을 보내도 내일이, 모레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영원한 봄날이 계속될 것 같았다. 어제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에 뒤통수가 얼얼해져 고장이 났다가, 오늘은 또 우르르 게임방으로 몰려 가거나 술을 마셨다. 순수이성이니 실천이성이니, 세상이 어쩌고 인간이 저쩌고에 대해 지껄이다가 민망함도 모른 채 한 병 더! 를 외쳤다.
누가 누구랑 사귄대. 아니, 글쎄 벌써 헤어졌대. 아무래도 좋을 소식들에 웃거나,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애를 하지 않았지만 연애 감정에 대해 조금은 골몰해 보았고, 그런 평범한 인간들과 평범한 이슈들 안에서 평범한 감정으로 지낼 수 있음이 신기하고 또 다행스러웠다. 어느샌가 콧물이, 재채기가 멎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소 번거롭지만 나 역시 봄과 카지노 게임을 좋아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2006년의 봄은 알려 주었고 마치 항히스타민제처럼, 시간이 어느샌가 나와 스무 살이라는 세계 사이의 카지노 게임 반응을 씻은 듯 잠재웠다. 그러니까 가끔은
무수한 카지노 게임잎처럼 분홍빛의 가능성 같은 것들이 내 삶에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가을이 가장 좋다던 나는 그 봄이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엣-췌!
지치지도 않고 계절이, 기억을 강제로 소환한다. 이번엔 그리움이 된 카지노 게임 때문에 약을 먹어도 자꾸 재채기가 난다. 그렇구나. 또 한 번 그놈의 봄.
정말이지 이상해. 그렇게 카지노 게임처럼 흐드러져 있던 무수한 가능성들이 어느새 져버렸다는 게. 계절이 돌아 와도 그런 아름다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