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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Sep 26. 2022

무면허 운전을 하면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대학교 2학년을 다닐 때 나는 학교 후문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독서실에 살았다. 새벽에는 우유 배달을 하고 주말에는 노가다를 하며 간신히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던 때였다. 어느 날 독서실 책상에 앉아 고픈 배를 달래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며 10대로 보이는 머리통 하나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대뜸 내게 같이 어디를 가줄 수 있겠냐고 했다. 맹랑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가출했다고 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학력을 따고 일찌감치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공부도 곧잘 해서 모의고사를 치면 연세대 정도는 갈 정도의 성적이 나왔다고 했다. 생활비를 벌려고 근처 주유소에 갔는데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처음 보는 사이지만 감히 부탁을 한다는 사연이었다. 내가 만만하게 보인 것이 틀림없었다.


부모는 아니었지만 주유소에서는 흔쾌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허락무료 카지노 게임. 오전 일찍부터 일하기로 하고 같이 독서실로 돌아왔다. 그런 부탁을 하려면 먹을 거라도 챙겨주는 게 도리가 아닌가. 괘씸하게 생각하며 다시 방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녀석이 또 방으로 쑥 들어왔다. 일을 나가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알람시계가 필요하다며 사달라고 무료 카지노 게임. 돈을 벌어 갚겠다는 말도 없었다. 밥 먹을 돈도 아까워 며칠 째 굶고 있었는데 시계를 사주려니 돈이 아깝고, 안 사주려니 냉정한 어른 같아 난감무료 카지노 게임. 정말 재수 없는 놈이었다.


'다이소'가 없던 시절이었다. 학교 인근에서도 시계를 살 수도 있었지만 비쌌다. 그러다 오래전에 우연히 보았던 할인마트를 떠올렸다. 대략 4~5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유 배달 오토바이에 녀석을 태우고 달렸다. 헬멧이 하나뿐이라 녀석에게 씌웠다. 절반도 채 가지 않아 교통경찰에게 잡혔다. 전라도 사투리가 심한 의무경찰이었다. 헬멧을 쓰지 않아 벌금을 내야 한다며 딱지에 기록을 하려 했다. 볼펜을 꺼내는 그의 손을 잽싸게 잡고 한 번만 봐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전주가 고향인데 타지에서 고학하느라 힘들다고 찐한 부산 사투리로 얘기했다. 그는 고향 사람 만나 반갑다며 이번에는 봐주겠다고 했다.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추한 행색으로 보아 벌금 내기도 어려운 처지라 동정하지 않았나 싶다.


시계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2차선으로 달리고 있는데 3차선을 달리던 봉고가 차선을 바꾸며 들어오다 뒤에서 내 오토바이를 추돌무료 카지노 게임. 충격으로 내 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2~3m쯤 앞으로 날았는데 1초가량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전 생애가 영화 필름처름 스쳐 지나가는 일은 없었다. 어느 부위로 떨어져야 하나 하는 생각을 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얼굴이 생명이니 어떻게든 얼굴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뭐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나는 108배를 하는 불자의 엎드린 자세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손바닥과 팔꿈치와 무릎이 심하게 아팠다. 뒷자리에 있던 녀석은 오토바이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봉고차 주인은 자꾸만 같이 병원으로 가자고 무료 카지노 게임. 오토바이는 세워 두고 봉고에 타라고 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뒤에서 추돌했으니 봉고차의 잘못이 크겠지만 아무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그냥 가게 되면 뺑소니가 될 수 있다며 병원에 가지 않으려거던 경찰이라도 부르자고 무료 카지노 게임.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사고의 책임을 따지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주고서야 봉고차를 보낼 수 있었다. 온몸이 쑤시고 곳곳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봉고차를 타고 가 병원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아, 내겐 면허가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독서실로 돌아와 절뚝거리며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만나기 싫었다. 만나면 또 무슨 부탁을 할까 두려웠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독서실로 돌아오니 내 책상 위에 알람시계가 놓여 있었다. 메모 한 줄 남기지 않고 그렇게 그는 가 버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법이 아니다'라고 했을까. 그 후 나도 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에게 머리 검은 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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