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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Mar 13. 2025

카지노 게임(特異點)

‘레이 커즈와일’ 『카지노 게임이 온다』

#표지 그림: 구스타프클림프,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 1907.


카지노 게임(Singularity)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뜻한다.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이때, 비즈니스 모델부터 인간의 수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개념들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카지노 게임을 이해하게 되면 지나간 과거의 의미와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카지노 게임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보편적 삶이나 개인의 개별적 삶에 대한 인생관이 본질적으로 바뀐다. 나는 이러한 카지노 게임을 이해하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사람을 '카지노 게임주의자'라고 부를 것이다.


- 레이 커즈와일의 『카지노 게임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 2005』 중에서


카지노 게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카지노 게임이 온다』라는 책에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했다. 그에 따르면, 기술 발전은, 인간지능처럼 단순히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적으로 가속된다.


초기에 느리게 발전하던 생명공학(G)과 나노기술(N), 인공지능(I)이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하면서 인류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2045년엔 AI(인공지능)가 인간 전체의 지능을 넘어서는 카지노 게임이 올 것이란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카지노 게임기술 발전은 특정한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적으로 가속된다.


AI의 빠른 발전을 지켜보던 커즈와일은 지난해(2024)『카지노 게임이 더 가까워졌다(The Singularity is nearer)』는 책을 다시 냈고 카지노 게임의 시기를 2029년으로 앞당겼다.불과 4년 후다.


그는 유전공학(Genetics), 나노기술(Nanotechnology), 로봇공학(Robotics)을 포괄하는 이른바 ‘GNR’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인공지능과 합쳐지면서 카지노 게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변화가 인간의 몸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5년 후인 2029년이 되면 인간이 기계와 합쳐져 사이보그가 되기 시작할 것이며, 2030년이면 죽은 사람들이 시뮬레이션으로 먼저 돌아오고 이어 살아있는 몸체로 프린팅 되면서 인간이 가상 불멸(virtual immortality) 상태가 될 것이다.

(중략)

인간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통해 최소 100만 배 더 똑똑해진다. 인체 혈류를 통한 나노전극 사용과 업그레이드를 통해 모든 생각을 느끼게 해 주는 엔터테인먼트가 가능해진다.’


- 레이 커즈와일의『카지노 게임이 더 가까워졌다』중에서

카지노 게임나노기술과 신체 개조: 기계와 융합하는 인간




난 레이 커즈와일의 책 '카지노 게임이 온다(2005)'약 10여 년 전쯤에 읽었다. 그땐 아직 ‘이세돌 vs 알파고’라는 세기의 바둑 대결조차 이루어지기 전이었으니까, AI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저 한 편의 SF 같은 느낌이었고 언젠가 다가올 미래지만 내 생애 동안에는 오지 않을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펴낸 에서는 카지노 게임이 더 앞당겨졌다고 한다.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화려한 그의 이력을 볼 때 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는 급진적인 엔지니어의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인간의 뇌에 칩을 심는 데 성공한 ‘일론 머스크’를 봐도 그렇다. 빅테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공할 만한 AI 개발 속도전을 보면 카지노 게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뉴럴링크"는 뇌에 2개의 컴퓨터 칩을 심었다.

정말 이런 카지노 게임이 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커즈와일의 예상에 따르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초인간(트랜스휴먼)이 등장할까?육체의 노화를 극복하고 죽음도 초월하는 존재!


그렇게 되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간이 아닌지, 인간의 문명과 기계의 문명을 구분 짓는 기준도 애매해질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아닌 ‘인간-기계 문명’이 펼쳐것이다.




그런데, 이 카지노 게임이라는 개념은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아이의 사춘기, 청년의 격동기, 중년의 안정기, 노년의 노화와 죽음 같은 인생의 변화 시점에 '카지노 게임'이 존재한다. 당연히 카지노 게임은 내 가정과 주위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 집 딸애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비록 초등학교지만 최고 학년에 오른 아이는 이제 학교에 대한, 구체적으로는 선생님이나 후배 학생들에 대한 품평을 할 만한 위치에 있나 보다. 시시한 수업시간보다는 '방송반''도서부'같은 '간지'나는 과외활동에 더 관심이 많다.


초등3학년 하반기쯤에 처음 스마트폰을 갖게 된 딸애는 3차원 가상공간에서 노는 ‘로블록스(Roblox)’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 속 교류를 즐겼다. 초등5학년이 되자 '캡컷(CapCut)'이라는 동영상 편집 앱에서 이미지나 영상 제작을 하면서 가끔 자신의 작품을 올리그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VR과 멀티버스의 세상인 로블록스


지난 겨울방학때부터학원에서 만난 어떤 언니의 "웹툰이 진리야!"라는 말에 입문하게된 웹툰 세상에 푹 빠져있다. 설명절에 받은 세뱃돈으로본인이 좋아하는 어느 웹소설 전집을 사고, 굿즈(Goods)로 제 방을 장식하느라 다 써버렸다고 한다. 직접 웹소설을 구상하는지 요즘엔 본인만의 세계관 속 캐릭터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 팝업스토어


내 기억 속에 있던, 회전목마에 혼자는 무섭다고 해서 안아서 같이 타던, 엄마 아빠 손을 자기 양손으로 잡고 힘껏 매달려 날아오르던, 볼살이 포동포동하던 아이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가 꾸준히 성장하길 바라지만 성장은 선형적인 과정이 아니다. 한 순간에 급가속페달을 밟는다.


딸애는 점점 더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원하는 것에 몰입하느라 엄마 아빠보다는 제 방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늘 곁에서 돌봐주어야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제 방기웃거리는 부모의 관심이 불편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딸애의 눈초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딸애에게도 카지노 게임이 온 걸까?




지난 주말,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장모님을 병원 응급실로 모셔다 드렸다. 장모님은 가시는 동안 내내 "아이고, 아직은 아닌데, 좀 더 살아야 하는데."라는 혼잣말을 계속하셨다.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끝내 친척분은 세상을 달리 하셨다.


요즘 따라 부고 소식이 잦다. 아니 예전에는 그냥 흘려들었던 것들이 더 가슴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내 아버지는 80대 중반이시다. 평소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데다가 워낙 병원을 싫어하셔서 웬만큼 아프셔서는 약도 잘 안 드셨다.


아버지셨는데 작년부터 갑자기 연로해지셨다. 등도 굽고 다리 힘도 떨어지셨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든 것처럼 보여 자식으로서 무척 안타깝다.아버지도 카지노 게임이 온 걸까?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늘 듣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지난한 숙제이다.아버지와 내 인생의 길이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게 되었고 그런 마음의 부담감이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내 심정을 잘 아는 아내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지만 천륜(天倫)이란 것이 쉽게 끊어지지도 않지만 또한 손쉽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지금 새로운 카지노 게임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50대에 접어들면서 갱년기를 겪고 있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급변화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에서는 이제 막 팀장으로 보직되어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집에는 ‘사춘기’에 접어들려는 시한폭탄이 돌아다니니 안팎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삶의 변수들로 고충을 겪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삶의 변수들로 고충을 겪고 있을까?


우리 집의 두 카지노 게임에 이른 거대한 폭풍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나는 또 어떤가? 결국 의도하든 하지 않든 두 카지노 게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평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카지노 게임은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을 맞이한 우리 가정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딸애의 성장은 부모에게 불안과 기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여정이다. 자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기쁨과 그에 따른 걱정과 아쉬움은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을 인정하고, 부모와 자녀 간의 건강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이다.


딸애의 카지노 게임은 부모의 성장과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아내와 나 또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인 동시에 독자(讀者)인 나로서도 가슴 떨리지켜볼 것이다.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인 동시에 독자(讀者)인 나로서도 가슴 떨리며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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