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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Mar 16. 2025

브런치가 페트라를 불러내다 1


본격적으로 에세이를 쓰기 전에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서부터 제 주변의 이야기들을 먼저 올립니다.

제가 글을 써야 할 이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새로운 場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둘째, 퇴직을 앞두고 인생을 반추하거나 정리하고 싶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살아오면서 공기처럼 누린 행운과 은혜와 행복같은 것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네째, 어쩌면 이 이유가 저의 글쓰기를 앞당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5년여 전에 <카지노 게임에 회원만 가입하고 아무런 글이 없이 다른 분의 글을 눈팅만 하며 모든 글에 심취하면서 마당을 거닐었는데, 놀랍게도 두 분의 작가님이 제 마당에 들어와 계셨습니다.


제 글의 본격적인 시작은 위의 네 가지를 풀어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하려 합니다.


우선 첫째의 이유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께서는 다이어리에 그 날의 행적이나 느낌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별한 느낌이 있으시면 일기를 쓰시곤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느끼셨던 자식들에 대한 감정, 당신의 건강에 대한 염려 그리고 갖가지 회한 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공직자셨던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 나는 내 새끼들을 이 사회에 제공했다’라고요.

저희 삼남매는 의사와 교사와 공무원으로 컸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표현이고 자랑스러운 표현인지, 저는 아버지를 그릴 때마다 이 얘기를 하곤 한답니다.


제공(堤供).

저에게는 그 이상의 아버지다운 표현이 없을 듯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식들이 사회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척이나 기뻐하셨고, 모르긴 해도 많이 자랑도 하셨던 것같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그렇습니다.

직장이나 다른 조직에서 활동은 신망도 받고 잘 하면서도 가정에서 특히 배우자에 대한 그 것은 많이 부족한 듯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사실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많이 하겠습니까.

그 보다는 맛집이나 아주 좋은 휴양지, 새로 오픈한 핫플레이스 그리고 재미난 영화 등의 얘기들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이 글을 통해, 제 머리에는 있지만 자식들에 전하기에는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럽기까지 하거나 또한 잘못하면 대화를 차단시키고 진지충이 될 법한 꼰대같은 이야기를 저의 카지노 게임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둘째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34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토양으로 나가기 전 나의 꿈, 나의 취미 글쓰기로 배터리를 충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연히 얻어진다면 새로운 삼십년을 위한 모멘텀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멘텀을 얻기 위한 촉매제는 당연히 ‘감사’입니다.


이제 와서 청장년기 제 인생을 반추합니다.

내 인생은 얼마나 기적의 연속이었고,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았던가.

얼마 전부터 감사일기를 써온 바 있습니다.

지금은 제 게으름에 멈췄습니다만, 감사일기는 새로운 감사를 카지노 게임는 그야말로 화수분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병마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고, 또 그것이 재발하여 생존할 확률 10%, 그리고 그 것을 넘으면 장애를 겪을 확률 90%의 카지노 게임로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도시 변방, 그 중에 도심까지 도달하기에는 버스도 거의 없는 너무 먼 시골이었습니다.

“헉. 꺼이~~”하고 등 뒤에서 숨이 넘어가는 카지노 게임를 업고 도심 이리저리를 울부짖으면서 뛰어 다니셨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아른거립니다.


항생제로 그득한 주사액에 절여 뇌막염이라는 병은 다행히 치료는 되었지만, 저는 그 이후 “밥”, “물”이라는 단어로만 욕구를 표현하는 고도의 언어장애를 겪었으며 그 증상은 꽤 오래 갔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많은 것이 좋아졌음에도, 말이 꽤 느렸습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거북이'입니다.

지금도 제 초중고 동창들은 저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저의 느린 말투는, 저를 처음 만난 많은 지인들로 하여금 “충청도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을 야기한답니다.


이런 허약한 카지노 게임가, 그리고 지방국립대 나와서 변변한 실력도 갖추지 않은 제가, 특히 박사학위 두 세 개를 가지고도 취업부터 여러가지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저는 학사학위로 하나로, 공직자로서 여유는 없었지만 숨쉬기에는 충분한 젊은 시절을 살아왔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가성비 좋은 인생이었습니까.

이러한 글이 지방대 출신 그리고 석사 학사 학위 소지자들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저는 단지 제 인생에 감사를 올리기 위함인 점을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은 저의 인생에 대한 감사였고, 다음 글은 가족들에 대한 감사를 써보려합니다.



제가 선택한 필명은 페트라입니다.


저는 돌 석(石) 자는 아니지만 이름에 석(錫) 자를 쓰기 때문에 돌과 관련된 별명이 많았고 저 또한 카지노 게임디로 ‘조약돌’을 쓴 적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돌에는 두 가지가 있다지요.

스캔들의 어원인 걸림돌 ‘스칸달룸’과 디딤돌 ‘페트라’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분들의 디딤을 힘입어 살아온만큼 앞으로는 내 자신이 디딤돌이 되어 보겠다는 의미에서 썼지만, 제가 걸림돌이 될 지 디딤돌이 될 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노력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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