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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Mar 22. 2025

잘 해 보일려고 애쓸 필요 없어

지난 연말에 OTT를 통해 그간 미뤄왔던 믿고보는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Everybody’s fine을 봤습니다.

부인을 사별한 프랭크 역의 로버트 드니로가 연휴에 방문하기로 한 자녀들의 본가방문이 펑크나게 되자, 심장병을 무릅쓰고 미국 전역에 있는 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깜짝방문하면서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에게 갑자기 찾아온 아빠는 큰 부담이 되었고, 아이들은 결국 현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항상 “이 아빠를 자랑스럽게 할수 있지?”라고 했던 프랭크의 압박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거짓을 캐묻는 아빠에게 딸아이가 격정을 토로하다 “엄마는 들어주는 사람인 반면 아빠는 항상 말하는 사람이었다”라고 고백하자, 아빠인 프랭크는 “나는 그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말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아빠가 걱정할까봐 제대로 말하지 않고 숨겼던 아이들에게 아빠는 “너희중 누구도 내게 걱정 끼칠수 있어. 나는 너희의 아빠쟎니?”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뭘 해도 난 너를 자랑스러워 할거야”라며 용서를 구합니다.

아빠에게 거짓을 말한 아이들 행위는 분명히 잘못이지만, 그보다도 아이들에게 기대를 강요한 프랭크의 모습부터가 잘못입니다.

여행을 마친 아빠는“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덜 요구할 것 같아. 그애들이 행복하기만 하면 난 괜찮을 것같아”라고 독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나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왔지만, 성스러운 인격체이고 부모들에게 소유될 수 없을뿐더러 일정 이상의 나이가 되면 그 어떤 강요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도 그러셨습니다.

‘믿어주고 밀어주되, 간섭하지 않았고 그리고 강요도 하지 않는...’

그러고 보니 저의 아버지도 깜짝방문이라는 걸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돈이 드는 선물을 하지는 못했지만, 해마다 명절이 되면 술을 빚어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祭酒(제사에 쓰는 술)를 돌리셨고, 그때마다 수고는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술을 빚으면 제게도 그 祭酒가 주어졌고 저 또한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제주로 쓰십시오”라는 너스레와 함께 술을 선물하였습니다.

제가 전주에서 서울로 전근 온 이후,술을 가지고 전주에서 저희 집인 용인까지 찾아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1.8리터 병 여덟 개(그 때 가져오신 술은 어머니꼐서 빚은 막걸리가 아니라 아버지가 이 산 저 산에서 채취한 소나무 순으로 담근 ‘송순주’였습니다) 정도를 가지고 전주 변두리에서부터 전주역과 수원역을 거쳐 용인 수지까지 오셨다가 술만 전달하고는 바로 가셨습니다.

저는 그 송순주를 제가 속하 여러 그룹의 직원들과 몇 번에 걸쳐 마셨으며, 그 향을 맛본 직원들은 매우 좋은 반응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것을 가지고 시골에서부터 ‘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라는 상상으로 한달음에 달려오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아직도 아련하기만 합니다.


제 아버지는 제게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제가 삶의 궤도를 많이 이탈하고 있었으면 어떠셨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오로지 제 마음 속의 응원군이 기꺼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도 그러렵니다. 나태주님의 시처럼...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고/그리고도 남은 일은/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 <<부모노릇

나의 자랑이고 훈장이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취업부터 현재의 모습만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저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고맙게도 무탈하게 사회에 진출하여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게 자랑꺼리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요즘 에세이를 쓰면서 저의 인생 1막을 회고하고, 감사했던 일들을 그리며 또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의 행복 또한 그려나갑니다.

그 많던 엄친아, 그리고 엄친딸들은 어디갔지?

바로 제가 키우고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번째 쓴 에세이에서 밝혔듯이, 저는 아들과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삼국지를 이야기하고, 프리미어리그, 미국 보스턴 나이내믹스 로봇개를 얘기하면서 부자간의 말문을 틔었습니다.


부자간의 대화의 소재를 찾기란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찾아 준 아들이 고맙지요.

이젠 영화도 같이 보고 OTT도 같이 즐기고 보드 게임도, 고스톱도, 술도 자주 같이 하곤 합니다.

특히 여러 종류의 보드게임을 수시로 소개함으로써 가족간들의 화목을 이끌어 주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그리고 OTT나 유튜브 프리미엄 같은 ‘구독경제’를 저도 이용토록 하여, 드라마 영화감상 그리고 음악들으며 산책하기 등 제게 소확행을 선사합니다.

행복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며,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에게 어떠한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도 결정되는게 세상사는 섭리이고 남에게 행복을 주려했다면 그만큼 자신에게도 행복이 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이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난 뿌듯함은 자식의 큰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행복해지려면 좋은 일들을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행복해지려면 로또 한 방을 노리기보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좋은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확률없는 로또는 매주 씁쓸함을 안기지만 가족이나 지인과의 여행 또는 커피마시기, 산책같은 것은 매일 기쁨을 줍니다.


저는 이번 설명절 동안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사정상 가족들의 귀성이 불가했고, 저만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들이 “아빠와 데이트하러 왔다”며 뒤따라 내려왔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아들의 생각도 그러했고, 그걸 표현하기까지...


아들과 지낸 3박 4일. 귀경길에 아들과의 대화에서 저는 “참 좋은 여행이었다”라고 말해줬습니다.

아들도 뿌듯해하는 것같았습니다.

성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 즐겨야겠습니다.

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불가능한 것이 많이 있겠지요.

품 안의 자식이라는데, 그 품을 떠나기 전에.


저는, 아빠는 처음인지라 미숙한 점이 많습니다마는, 제 아이들은 이미 준비하고 경험한 것처럼 온갖 재롱으로 과분한 효도를 선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효도일랑 이미 받았습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어릴 때 평생 할 효도를 다합니다.

이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성장하고 같이 나이들어가는 오늘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성숙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지금 나무라고 참견하는 것?

혹시 내가 옛날에 하지 못한 것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강요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핑계를 대며 자기 만족을 하려는 부모들의 욕심이 아닐까요.


영화배우 앤서니 퀸과 아들 찰리가 같이 부르는 노래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인생이 스스로 너를 인도해줄거야)를 번안한 우리 곡(최불암/정여진)에는 아빠에 대한 두 가지 부탁이 나오죠.

“내가 쓰러지면~~그냥 내버려 두세요 ~~ 나도 어른이 돼야죠”

그리고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아빠, 내 곁에 있어줘요”라고 말이죠.


그냥 공기처럼 옆에 있어주세요. 여력이 있다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힘들어할 때 힘이 되어 주시구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의 불화로 고민을 토로하던 친구에게 제가 해준 말이 생각납니다.

“왜 막 충고하고 싶고, 참견하고 싶지?”, “불필요한 참견이 아이의 성장을 막을 수도 있어”라며 나태주님의< <부모노릇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 이야기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니 저도 기쁩니다.




전글에서 밝힌대로 제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해 줄 말은 이겁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거야”.

“어떤 일을 하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마.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걸”.

“네가 염려할 일이 생겨도, 너의 불안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필요할 때마다 힘이 되어 주고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의 모든 것을 응원해”

다시 시를 읊조려 봅니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고/그리고도 남은 일은/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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