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부부만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함께 살던 큰아들이 교환학습차 미국으로 떠났다. 이틀 전에 인천공항에서 배웅하였는데, 벌써 집안의 공간이 주는 느낌이 예전과는 다르다. 진작 독립하여 제자리로 갔어야 할 아들인데, 결혼이 늦어지면서 같이 지내고 있었다. 떨어져 사는 것이 비록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집안이 온전히 부부만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집이 부부만의 공간이었던 적이 처음은 아니다. 연년생 아들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신혼처럼 둘만의 시간이 잠시 있었다. 그때는 매주 아들들을 찾아가서 살펴보기도 하고, 외지 생활에서 불편한 점들을 해결해 주어야 했기에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작은아들은 고등학교 이후로 계속 떨어지게 되었고, 직업 관계로 독립하여 이미 10여 년이 되었다. 큰아들은 진학과 군대 복무로 몇 년씩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최근의 15년을 같이 살았다. 이제 미국에서 돌아오면 곧 독립할 것이다. 지금의 8개월은 앞으로 본격적인 부부만의 시간을 위한 예행연습 기간이라고 여겨야 한다.
둘만의 시간이 되면서 조그맣지만 여러 변화가 생긴다. 어제는 쇼핑센터에 찬거리를 사러 갔었다. 아내의 우선순위는 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부부가 필요한 것을 고르고 남편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당연히 양도 아들이 있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줄었다. 30여 년을 함께한 부부인데 어느덧 생활의 중심이 아들에게 옮겨졌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큰아들의 푸념하던 소리가 생각난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작은온라인 카지노 게임 집에 온다는 연락이 오면, 아내는 남편을 대동하고 장을 보러 간다. 먹거리의 중심은 모두 둘째 아들의 입맛과 해 주고 싶은 음식 위주다. 그러니 큰아들은 평소에 집에 있는 아들도 잘 챙겨달라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나는 이미 포기했기에 그저 빙그레 웃음 지을 뿐이었다.
아들은 떠나면서도 일거리는 많이 남겨두었다. 어제는 입던 옷을 모두 세탁소에 맡겼고, 오늘은 방을 정리해야 한다. 쓰던 이불을 모두 세탁해야 하고, 책상 위를 포함한 모든 물건도 정리해야 한다. 주인은 없더라도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환기도 자주 해 주어야 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있던 자리를 꼼꼼하게 다시 살피게 되고, 내 마음속의 공허함도 돌아보게 된다.
환갑이 넘은 부부만의 생활, 이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으면서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내를 위해서 할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특히 아내는 환갑이 넘어가면서 힘에 부치는 것이 늘고, 스스로 하던 일도 남편에게 의존하려는 것이 많아진다. 당연한 일이고 가사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장도에 오른 아들을 위해 마음으로 걱정하고 격려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이제는 부부의 생활을 다시 돌아볼 시간이다. 어쩌면 참 고마운 아들의 빈자리이고 기회이다. 우선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인데, 내 말보다는 아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중년 이후 부부생활에 대하여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이렇게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