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간제 구직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24년 8월 말 나는 학교를 옮겼다. 우리 반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다음 날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비정규직 신분이 나에게 있는 여러 옷 중 하나임을 여길 만큼, 나는 정규직 신분과 다름의 시선과 차별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숨기지 않을 만큼 야물었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들에게 아무개 선생님 대신 왔고, 너희를 가르칠 기간은 언제까지임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계약 기간이 이제 다하는 때, 내년 카지노 게임가 있는지, 재계약이 가능한지 알만한 시점에 교무부장 선생님이 왔다. 내년에 국어 카지노 게임가 두 카지노 게임가 나는데 할 수 있느냐, 담임을 해야 한다는 얘기와 함께 나의 생각을 물어보셨다. 나는 당연히 하겠다고 얘기했다.
이틀 전 수업 시연과 면접을 보았다. 어제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불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항상 이때쯤 교육청 구직란을 들락거리며 국어를 뽑는 학교에 수십 통의 원서를 접수하고 그중 1차 서류가 통과한 3, 4곳의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2차 수업 시연과 면접을 본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합격의 문자 또는 불합격의 문자를 받곤 한다. 그래서 이제 불합격 문자를 받으면 속은 상하지만 내성이 생겨서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나의 의중을 물어보았기에, 늘 쓰지 않던 업무 분장표도 제출한 상태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개요
정규 교사가 휴직이나 연수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해당 업무를 대체하는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다. 일정 기간을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기간제 근로자에 해당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내 자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계약할 때면, 늘 언제든 정교사가 오면 계약이 해지됨을 알고 도장을 찍는다. 그래서 1년 담임을 해도 나는 내 자리에 짐이 별로 없다. 오늘이라도 당장 짐을 싸서 나갈 수 있는 자세로 나는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해 둔 것이다. 그러나 어제만은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두 자리 중 한자리는 교장선생님이 원하는 사람의 자리이고, 나머지 한자리는 기피업무 경험이 있고 경력이 좋은 사람의 자리라고 들었다. 학교에서 원하는 사람을 골라 쓰는 거야 뭐가 문제가 있겠냐만 계속 일 할 수 있는 여지를 나에게 준 게, 그걸 신뢰한 게 문제였다. 그리고 나에게 예의 없음에 마음이 무너졌다. 차라리 여지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속상해하고 말았을 일이다. 친한 선생님께 불합격의 소식을 알렸다. 선생님은 나보다 더 속상해했다. 그리고 말했다.
"샘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자기 매번 이런 일 겪으면서 사과 한 번 받아 본 적 없을 것 아냐."
이 말이 나의 울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뭐죠?"
"이게 교육철학인지 모르겠으나, 사실 요즘 아이들이 지식을 배우겠다고 한다면 학교가 아니라도 다양한 형태의 매체 자료나 외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그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 갈등, 마음을 나누는 일들을 함께 나누고 안내해 주는 교사이고 싶습니다."
오늘 전에 함께 근무한선생님들을 만났다.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이제 기간제 구직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간제가 직업이 될 수 없는 걸 알고 있으며, 다른 일을 찾든, 일을안 하든, 학교일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들은 샘들은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말했다.
"상처는 누구나 다 받아, 나도 교직 생활 20년 넘었는데도 상처받고 울고불고하는 걸. 자기가 교직 생활이 아니고자기가 좋아하는다른 일을 해도 그곳에서 상처받을 일이 또 생길거야.당연히 속상하지. 하지만 너무 오래 이 일에 힘들어하지 마.어쩌면 자기에게 새로운 일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은 환경으로 갈 수 있는 거니깐. 상처도 받지만, 학교라는 곳을 통해서 우리가 만났잖아."
그렇다. 나는 내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정말 무르다 못해 어린사람이다. 이렇게 나는 사람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배우며, 나누며나아간다.
카지노 게임 털고 자리를 일어서며,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