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자 신지영의 ‘언어의 줄다리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단어의 모순된 사용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책을 읽은 지 시간이 많이 지나 전체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지만,가령 ‘아파트 안전진단 심사 통과’의 본질은 해당 아파트의 안전이 심사 기준에 미치지 못할 만큼 위험 요소가 많아 아파트로서의 본래 기능, 다시 말해 주거 기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이를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인다. 언제 붕괴될지 모를 상황에서 재건축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생긴 웃픈 현상이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내용에는 ‘짜장면 VS 자장면’이 있다. 지금이야 ‘짜장면’이 표준어지만 한때 국립국어원에서 ‘짜장면’은 표기와 발음 규정상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규정했다.
반발은 적지 않았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불러야 한다면 이제 짬뽕도 잠봉이라 불러야 하느냐’와 같이 언어가 가지는 특유의 미를 살려 반발했던 이도 있었다. 음식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가 있지만 음식 이름에도 그 가치가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논란은 결국 2011년 8월 31일, '짜장면'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국립국어원의 발표로 일단락됐지만 이후로 ‘자장면’이라는 표기와 발음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결국 ‘짜장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저자는 이 ‘짜장면’의 승리를 두고 ‘언어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만들어 줬다. 사전에서는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로 언어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었던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만인의 언어를 한 기관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처럼 언어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민주주의에서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가장 기본적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맘 놓고 부르는 데에 적잖은 시간이 걸렸고 그와 함께 숨어있는 애환의 역사도 있었다. 어쩌면 이 역사는 ‘짜장면’과 ‘자장면’의 논란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얻기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욱 힘든 것처럼.
‘짜장면’의 원(原) 표기는 ‘작(炸)장면’이다. 그 의미는 ‘볶은 장을 얹은 면’이라는 뜻으로 ‘작(炸)’은 ‘기름으로 튀기다’라는 의미가 있다. 장을 기름에 튀기니 그것을 볶는다는 의미가 될 것이므로 그래서 볶은 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 이 ‘작(炸)’이라는 중국식 발음이 ‘짜’이기 때문에 ‘짜장면’이라는 명칭은 중국어 소리와 국어 소리를 한데 합친 조어(造語)라고 할 수 있겠다. ‘짜’냐 ‘자’냐는 논란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다.
오랜 시간 화교(華僑)들이 이 땅에 터를 이루면서 그네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과거 정부의 규제로 인해 평범한 직장에도 들어갈 수 없어 이들은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TV에서 자주 모습을 내비친 중화요리의 대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학력이 아니라 기술이었다. 좋아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배운 것이 기술이었고, 그것이 요리였으며 그 속에 ‘짜장면’이 있었다.
‘짜장면’이 처음부터 서민의 음식이라고 볼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식사 준비가 귀찮을 때 혹은 바빠서 빨리 해결해야 될 때 먹던 것이 ‘짜장면’은 아니었다. ‘짜장면’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예전에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생일이나 이사 혹은 졸업식 같은 의미 있는 날에만 먹던 것이 ‘짜장면’이었다. ‘피자’가 처음 국내에 소개되고 어느 시절까지 흔하게 먹지 못했던 음식이었던 것과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어쩌면 먹고사는 수준이 오르고 많은 ‘짜장면’ 기술자들이 곳곳에 가게를 열면서 ‘짜장면’은 대중적이고 가장 만만한 음식이 됐다. 그렇지만 그 이면엔 음식값이 다른 요리에 비해 저렴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물가 정책에 따라 ‘짜장면’ 값은 엄격한 규제를 받았다. 그렇게 규제를 받다 보니 기존 ‘짜장면’ 가격을 올릴 수 없어 장에 들어가는 재료나 방식을 살짝 바꿔 ‘삼선짜장’, ‘유니짜장’같이 같지만 다른 음식으로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이만 원 삼만 원하는 ‘짜장면’을 본 적은 없다. 피자나 파스타가 그 정도 가격이면 비싸다고 생각해도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짜장면’은 아직 그 정도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가격을 두고 이렇게 비싸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얻기보다 힘든 것이 지키기이며 지키기보다 힘든 것이 버티기다.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익힌 기술이라지만 그것이 ‘짜장면’이 아닌 다른 기술이었다면 지금도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12년이라는 무명 세월을 거쳐 이제야 주목받는 신인 아닌 신인 개그맨이 있다. 유튜브에선 그를 두고 ‘버텨줘서 고맙다’라는 댓글이 있었다. ‘짜장면’도 지켰다기보다 ‘버텨줘서 고마운 음식’이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