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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효권 Mar 12. 2024

벚꽃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아니 끼워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크게 모자라지 않으면 진학할 수 있어 마냥 대책 없이 긴 방학을 보냈다. 그랬던 것이 첫 시험부터 헤맸고 결국 회복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3년을 그저 졸업에만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못난 시간을 보냈다.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이 있다. 해외에선 신기하게 여기는 귀성행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은 설과 추석 두 번에 걸쳐 이 대규모 이동이 있지만 예전엔 세 번의 이동이 있었다. 당시 대입고사는 수능이 아닌 학력고사였다. 수능은 먼저 시험을 치르고 후에 그 결과에 따라 학교를 결정짓는 ‘선(先) 시험 후(後) 지원’ 제도지만 과거 학력고사는 먼저 학교를 정하고 후에 시험을 치렀던 ‘선(先) 지원 후(後) 시험’이었기에 지금처럼 거주지 인근의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닌 지원하는 학교 인근에 있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다. 그래서 시험 전날에 서울이면 서울, 지방이면 지방으로 다들 아침 일찍 이동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대이동이라면 대이동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고 3으로 올라가고 첫 두어 주정도 지나면서 담임은 나름대로 결심했다. ‘될 놈만 어떻게든 조지겠다’는 것이 담임의 입장이었다. 담임 눈 밖에 났으니 차별은 어찌 됐든 감수해야 할 몫이었고 상대적으로 눈치를 덜 살펴도 됐으니 나름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결정적인 시간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판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2학기에 접어들고 중간고사가 끝나면 고등학교 3년의 모든 내신은 마무리되고 마지막 남은 예비 절차로 원서 접수 대략 한 달 전부터 지원학교를 두고 카지노 게임 추천과 긴 상담이 오고 갔다. ‘팩트(수능점수)’를 기준으로 학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모의고사 점수)’를 가지고 학교가 결정됐다. 평상시 자기 관리, 정확하게 성적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이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예측과 감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됐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 추천도 학생도 지원학교를 두고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이전엔 고 3 카지노 게임 추천 책상 서랍이 반쯤 열려 있었다는 말까지있었다. 알아서 봉투 좀 넣어 두라는 말이었다.

담임도 그때는 고 3을 처음 맡아서 진학 실적이라는 큰 짐을 안고 있었다. 담임이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험을 피하는 것이었다. 안정권이라는 말을 가지고 애매한 데이터의 학생은 원하는 학교보다 한 단계 낮추는 것이 담임의 전략이었다. 그 바람에 학교를 두고 옥신각신하던 녀석은 담임에게 뺨까지 얻어맞는 일도 있었다. ‘싸가지없는 새끼’라는 것이 담임의 명분이었다. 그래도 담임의 관심 덕(?)분에 녀석은 뺨이라도 맞았다.


순번대로 진행하던 상담이 내 이름은 건너가고 다음 순번으로 넘어갔다. 어차피 기대도 못할 존재였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 추천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달랐다. 일말의 희망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대이동’은 해 봐야 부모님 앞에 면이 설 것 같았다. 남들처럼 카지노 게임 추천하고 학교를 두고 씨름한 것도 아니었다. 알아서 이리저리 입시정보를 뒤져 학교를 찾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지원하고 싶은 학교만 말하면 끝날 일을 카지노 게임 추천은 계속 나중으로 미뤘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상담은 계속 이어졌지만 나를 찾지는 않았다. 세 번을 그렇게 미루다 원서 접수가 임박했던 시기에 부러 교무실 앞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을 기다렸다. 그제야 카지노 게임 추천은 지쳤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 어디 쓰고 싶냐고 물었다. 지원학교를 언급하자 카지노 게임 추천은 알았다면서 거기로 정하자고 했다. ‘부모님은 오실 필요 없다.’는 것이 카지노 게임 추천의 마지막 말이었다. 상담 아닌 상담은 일 분도 걸리지 않고 끝났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최대 희망으로 뽑아 놓은 친구가 있었다. 고대를 지원한 이 친구에 대해 카지노 게임 추천의 애정은 남달랐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명필이었다. 대부분 입학 원서는 자필로 다 작성하고 마지막 내신 성적란만 카지노 게임 추천이 작성해 주면 됐는데 친구의 원서는 자필이 아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친구의 이름부터 시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작성했다. 빨리 원서를 작성하고 지방 학교로 원서를 접수하러 가야 했던 나는 다시 기다려야 했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지만 원서마저 될 놈과 안 될 놈의 순번이 다시 정해졌다.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두세 시간을 가야 하는 입장이라 아침부터 계속 순번이 밀려 불안해하던 나를 본 친구들이 자기들 순번을 양보해 줬다. 거의 정오가 다 돼서 원서 작성을 끝냈다. 접수를 마치고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왔을 땐 저녁 9시가 다 됐다.


그 해 첫 고 3을 맡은 담임의 실적은 성공적이었다. 서울권에 원서를 쓴 학생들 대부분이 합격했다. 나 같은 무리들은 큰일을 치른 것에 만족했다. 그 해를 이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듬해 가계 사정도 좋지 않았다. 공부를 시키자니 빚을 내야 했고 그렇다고 해서 다음 해 진학할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었다. 전교생 중 구십여 명 정도만 내 아래에 있었으니 위에서 볼 땐 그놈이 그놈일 뿐이라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해가 지나 다시 한 차례 입시가 끝났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카지노 게임 추천과 마주쳤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시험 봤냐고 물어봤지만 그냥 기술 배워 취직할 생각이라고 했다. 잠시 말을 머금던 카지노 게임 추천은 그것도 좋겠다는 말로 답했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갈 길을 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어떻게 해서 늦은 나이에 진학도 했고 공교육 쪽은 아니지만 사교육 쪽에서 업을 삼았다. 나름대로 실장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어느 날 한 부모로부터 아이 수업을 그만두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아이가 대책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덕목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생각났다. 그리고 똑같이 아이들의 입시를 지도하면서 과거의 나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아이들도 여럿 보았다. 그때의 나도 내가 만난 나를 닮은 아이들도 모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저 부모님 면에 죄송해서 시늉이라도 내고 싶어 했다.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비디오란 말이 있지만 그네들도 시절이 지나면 느끼겠지 생각했다.


벚꽃 필 날이 다가오고 있다. 벚꽃이 만개한 모습은 좋으나 빨리 지니 아쉬움도 크다. 아이들은 벚꽃이 아니므로 빨리 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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