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으로 진급하고 받은 보직은 아파트 보일러 병(兵)이었다. 영외(營外) 근무였다. 영내(營內) 근무가 아니어서 느긋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고참 눈치 볼 일 없어 스트레스도 덜했다. 다들 부러워했다. 그렇지만 적은 수의 사병으로만 운영되는 보직이라 후임병은 한동안 받을 수도 없었다. 안면도 별로 없던 고참들에게 익숙해져야 하는 점은 다시 처음부터 군 생활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만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나보다 두어 달 빠른 선임이었다. 아파트에서 사병들이 개인적으로 키우던 개였다. 흰 바탕에 큼직큼직한 누런 점박이 무늬가 드문드문 있었다. 아주 어린 강아지는 아니었다. 다 자란 성견이라 하기엔 체구가 작았다. 사람으로 치면 십 대 청소년 정도 나이였을 것이다. 지금은 ‘믹스견’이라는 말로 순화해서 쓰지만 그때는 그냥 ‘똥개’였다. 나이 지긋한 원사(元士)가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관리실에 맡겨 놓은 녀석이었다. 그냥 던져놓고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어쩌면 녀석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이름은 ‘주니어(Jr.) 꽉’ 또는 ‘꽉 2세’가 더 정확했다. 이전에 키우던 원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고참들이 군홧발을 슬며시 앞으로 갖다 대면 앞발로 군화를 움켜쥐고 아랫도리를 실룩거렸다고 했다. 유독 군화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붙잡고 실룩거려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후임(?)으로 온 녀석은 실룩거리지도 군화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쥐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아파트 곳곳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호기심 많은 자유견(犬)이었다. 이름만 그대로 물려받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사람을 보고 짖어대거나 이빨을 드러내는 공격성은 전혀 없었다. 평상시엔 관리실 앞에서 조용히 사색(?)하다 어디서 무슨 영감(靈感) 같은 것을 받았는지 갑자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화단에서 이리저리 뒹굴다 온통 흙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밥을 넉넉하게 먹고도 심심하면 풀 뜯어먹고 쓰레기봉투를 뜯어 놓았다. 한 번은 죽은 비둘기 사체를 뜯어먹다 이를 본 고참이 질겁을 해서 녀석을 말린다는 것이 그만 발로 걷어찬 일도 있었다. ‘깽’하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때뿐이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아무 일도 없이 주둥이로 뭔가를 계속 질겅질겅 씹고 있는 모습만 봤다. 굶어 죽지는 않겠다 싶었다.
하루는 장교 사모가 기르던 개를 잠깐 부탁했다. 어디를 다녀와야 하는 데 집에 둘 수 없어 잠시 맡아 달라고 했다. 한창 작업에 열중했던 터라 사모의 개를 깜빡 잊고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목줄을 차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다니다 왔다. 거기에 익숙해서 다른 개도 그러려니 했다. 일을 마치고 왔을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보였는데 사모의 개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정문으로 들어왔다. 뭔가 당당해 보였다. 녀석 뒤로 사모의 개가 따라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칭찬받았던 때였다. 우리는 사비를 모아 근처 가게에서 작은 깡통에 든 고기 사료를 하나 사줬다. ‘포상금’ 대신 ‘포상식(食)’을 주었다. 녀석은 처음으로 신세계를 맛봤다. 그 뒤로 간혹 녀석에게 특식을 줬지만 여름이 오고 더위가 정점일 때 녀석은 더 이상 특식을 먹지 못했다.
그날은 우리도 일을 못할 만큼 더웠다. 그렇게 빨빨거리고 다니던 이 ‘자유견(犬)’도 그날따라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복날이 다가오니 녀석 나사가 풀렸나’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늦은 오후가 되고 열기가 좀 가라앉자 녀석은 기운을 좀 차린 듯 밖을 나섰다. 우리도 그제야 남은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될 즈음에 아파트 밖에서 어르신 한 분이 혀를 찼다. 뭔 일인가 궁금해 밖으로 나갔던 고참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길 한가운데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모로 누운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르신 말씀으로는 트럭 하나가 녀석의 머리를 치고 갔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좁은 길 한가운데에서 녀석은 계속 떨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 봤다. 머리를 부딪치면서 녀석의 안구가 반쯤 튀어나와 있었고, 주변엔 피가 흥건했다. 주먹만 한 작은 얼굴에서 그렇게 큰 안구가 튀어나온 모습은 처음 봤다. 그게 녀석의 얼굴이라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녀석은 몇 분 경기(驚氣)를 일으키다 조용해졌다. 작은 종이상자를 구해 녀석을 담았다. 다른 고참들과 함께 화단 깊숙한 구석에 녀석을 묻어줬다. 고참 하나가 소주 한 병을 가져와 염(殮)하듯 녀석의 몸 위에 뿌려줬고 담아왔던 상자를 접어 관 뚜껑처럼 덮어 그 위를 흙으로 메꿨다. 평평한 묘 하나 만들어 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묻은 지 보름가량 지났다. 부대 환경미화 심사가 있어 아파트 화단이며 놀이기구까지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다. 놀이터 그네와 미끄럼틀은 모두 새로 페인트칠을 했고 화단엔 새로 꽃을 심었다. 죽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자리에도 한 송이 심어줬다. 환경미화 심사가 끝나고 얼마 안 가 태풍이 왔다. 아파트 곳곳이 아수라장이 됐다. 어떤 곳은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화단에 새로 심은 꽃들도 뿌리까지 뽑혔다. 온전한 곳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묻혀 있던 곳이었다. 거기만 꽃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큰 나무들 밑에 심어 놓은 꽃이라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모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저주라며 농담을 주고받았지만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저에게 준 마지막 선물을 놓치기 싫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뒤로 제대할 때까지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 일은 없었다.
제대하고 다시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첫 일 학기 중간고사를 끝내고 학교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에 문학개론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과제를 하나 냈다. 시인이었던 그는 수업 시간에 간혹 학생들에게 글을 써오게 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글감은 ‘꽃’이었다. ‘꽃’이란 말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생각났다. 한동안 잊고 지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생각났고 그것을 글로 옮겼다. 수업 시간에 나의 글이 읽히는 동안 모두 숨을 죽이는 듯했다. 간혹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처참했던 마지막 순간을 언급할 땐 얼굴을 찡그린 애들도 있었다. 마지막 한 줄까지 다 읽었을 때 곳곳에서 ‘와’하는 작은 함성이 나왔다. 교수님도 근래에 들어 보기 드문 글이라며 이런 것이 진짜 수필이 아니겠냐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간 터라 기왕이면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통해 그것을 조금이나마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꽉’에 대한 기억엔 조작이 있었다. 심각한 조작일 수 있었다. ‘꽉’이 죽고 그 시신을 묻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꽉’이 죽은 뒤 태풍이 몰아쳐 아파트 곳곳이 온통 엉망이 된 것도 그것을 두고 ‘꽉의 저주’라고 농담 삼아 얘기한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꽃을 심어 주진 않았다. 그럴 짬밥도 못됐다. 부대 예산으로 보급된 물품이라 우리는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공병대에서 파견 나온 상사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확인도 못할 일, 기왕이면 드라마틱한 마무리로 교수님의 눈에 들 것이라 생각해 마지막을 조작했다. 거짓말로 기억을 만들어 냈다. 예상대로 기대했던 반응을 만들었다.
한 학기가 끝나고 집으로 날아든 성적표를 보고 조작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상을 정리하다 그때 제출했던 과제의 초안이 발견됐다. 다시 천천히 읽다 얼굴이 화끈거려 단번에 찢어 버렸다. 그때 그 수업 시간의 반응은 순간적인 반응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생들이 글을 두고 화젯거리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화제는 기말고사였다. 어디까지가 시험 범위인지 시험은 또 어떻게 낼 것인지였다.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과제는 과제일 뿐 해당 시간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교수님이 갖고 있던 특유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만약에 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나타났다면 뭐라 했을까? 뒤통수 한 대 날리면서 그랬을 것 같다.
“주긴 뭘 줬어...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