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학과제도 중에 ‘학부제’가 있었다. 동일 계열 학과들을 모아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기본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이후 전공 학과를 선택하는 제도였다. 예를 들어 언어 계열로 지원한 입학생들을 '어문학부'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아 기본과정으로 공통 과목을 이수시키고 후에 적성이나 관심에 따라 국어 국문학과, 영어 영문학과, 일어 일문학과 같이 다시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였다. 인기 학과의 쏠림 현상도 막고 나중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보통 개강 첫날엔 과목 개요와 출석 점검으로 첫 수업이 끝난다. 길어야 삼십 분도 안 되는 첫 수업은 담당 교, 강사의 재량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그렇게 시작했던 공통 과목에 ‘문학개론’이 있었다. 강의실로 마흔 중, 후반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들어왔다. 영문과 교수가 직업이지만 밖에서 보면 그냥 옆집 아저씨였다. 고리타분해 보였고 교수보다 농사꾼이 더 잘 어울렸다. 학부를 마치고 전공 학과로 배정됐을 때 선생님은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다.
대충 설명하고 끝낼 줄 알았던 관례를 무료 카지노 게임은 무너뜨렸다. 출석 점검을 마치고 교재를 알려 주시더니 곧바로 사 갖고 오랬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첫 삼십 분을 빼고 나머지 한 시간 반 동안 수업을 이어가셨다. 그때까진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의 수업엔 그 보다 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수업이 진행된 지 몇 주 정도 지났다. 다른 과목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도 과제를 내셨다. ‘장자(莊子)’라는 책을 읽고 거기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정리하고 마지막 페이지엔 독후감으로써 자신의 느낀 점을 쓰라고 했다. A4 크기의 줄이 그어져 있는 리포트 용지에 열다섯 페이지가 기본 분량이었다. 마지막 독후감 페이지는 별도였다. 워드가 아닌 자필이 기본 요건이었다. ‘공자’, ‘맹자’는 들어 봤어도 ‘장자’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영문과 교수라면서중국 사상가의 글을 왜 읽고 써야 하는지 이해도 안 됐지만, 그 분량을 다 채운다는 것은 거의 필사(筆寫)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과제였으니 학점 관리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면 한 학기 과제겠거니 생각했다.
수업은 중간고사를 지나 어느덧 수업 일수의 삼 분의 이 정도가 지났다. 그때 개론 수업은 문학 사조에 대한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모더니즘’을 설명하면서 다시 과제를 내셨다. ‘장자’와 동일한 과제였다. 이번엔 영국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작가로 모더니즘의 효시(嚆矢)가 되는 작가다. 작품 자체도 어렵지만, 작품의 해석은 더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몇 사람 없을 정도다. 그의 작품 중엔 ‘피네간의 경야’가 있다. 1939년에 초판이 출간되고 75년 만인 2014년이 되어서야 작품을 복원했다고 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복원된 피네간의 경야’ 일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의 제대로 된번역본이 나온 것은 4년 뒤 2018년이었다. 번역자인 고려대 김종건 교수만 보더라도 40년을 제임스 조이스 연구에만 몰두했던 사람이었다. 40년을 오로지 한 작가만 연구한 사람도 번역에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만큼 어려운 작품인데, 그런 작가의 작품 중 하나가 과제로 내려왔다. 작품에서 무엇을 뽑아낼지도 모르겠지만 독후감은 더 미칠 노릇이었다. 그에 비하면 ‘장자(莊子)’는 ‘효자(孝子)’였다.
본격적인 전공으로 넘어오면서 선생님은 선배들 사이에서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됐다. 선생님은 영문학 박사이기도 했지만,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날엔 클래식을 틀어 놓고 감상문을 써보라고 한다든가 뜬금없이 연습장을 찢어 쓰고 싶은 글을 쓰게 했다. 어떤 선생님은 그분이 도마 위에서 두부를 썰다 식칼에 드러난 무지개 빛을 보고 감탄했다며 그분의 관점은 굉장히 특이하다는 말을 사석에서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선배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공통된 얘기는 졸업 때까지 선생님의 수업을 계속 수강한다면 총 세 권의 작품을 읽고 정리하는 ‘준(准) 필사(筆寫)’의 과제가 있다고 했다. 일 학년 때 경험했던 터라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본과의 방식은 더 혹독했다. 분량과 자필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추가된 옵션은 ‘여백(餘白)’이 없어야 했다. 여백은 성실함의 기준이었다. 그것을 간과한 학생은 과제를 아니 제출하는 것만 못했다. 한 번은 학생 하나가 원문과 번역문을 같이 쓰는 요령을 피운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을 바라보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한마디 했다.
“자네, 헛수고했군....”
군 복무를 마친 남자들이 흔히 하는 얘기로 제대까지 유격 훈련을 운 좋으면 한 번, 운 나쁘면 두 번 받는다고 했다. 유격 훈련을 세 번 받은 사람은 정말로 재수가 없는 경우라고 했다. 그런 과제를 나는 세 번도 아닌 여섯 번이나 했다.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존 밀턴의 ‘실낙원’,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과제로 수행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최고 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즈음에 학과에선 4학년을 상대로 학과 명칭의 변경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일이 있었다. 변화의 시기에 ‘영어영문학’이라는 명칭은 지원자들에게 매력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영어의 중요성은 모든 학과의 공통적인 이슈지만 문학은 그렇지 못했다. 갈수록 고리타분한 분야가 되어가고 있었다. 학과에선 ‘영어영문학과’가 아닌 ‘영어학과’로 변경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 주된 견해였다.시류를 따라가려면, 변화에 맞게 대응하려면, 그것이 맞는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된 동기들은 달랐다. 억지로 과제를 수행하고 고리타분한 문학 수업에 진저리를 쳤어도 실력에 상관없이, 어설프게 또는 건성으로 공부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자신들은 영문학도라는 것이었다. 영문학도가 ‘문학’이라는 명칭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3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했고 선배들처럼 전통을 수행했으며, 그 필사(筆寫)의 과제덕에 그나마 그거라도 읽었다는 것이 모두의 자부심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료 카지노 게임께 동화됐다. 구름 위로 솟아 난 산봉우리를 보면서 그것을 섬처럼 보던 동기도 생겼고, 무료 카지노 게임이 졸업하신 학교의 대학원에서 면접을 보다 해당 학교 교수들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깔보는 듯한 발언을 들었을 때 분(憤)을 삭이느라 애를 먹은 동기도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학교도 시류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학과 명칭도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언어문화전공’으로 변경됐다. 문학보다 영어 자체를 가르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해리포터’를 판타지 소설로만 알고 있었는데 교과 과정으로 다루는 학교도 생겼을 만큼, 문학에 대한 태도도 예전과 달라졌다. 선생님도 이제는 ‘명예교수’라는 타이틀만 갖고 계신다.수요자의 입맛도 고려해야 하니 선생님의 수업도 시류에 밀려난 것은 아니었을까....
몇 해 전 동창 하나가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무료 카지노 게임을 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우리에게 과제로 내줬던 ‘월든’을 읽고 계셨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니 무료 카지노 게임은
“자네, 날 어떻게 알아보았나?”
대답은 적확(的確)했다.
“지하철에서 ‘월든’ 읽으시는 분이 무료 카지노 게임 말고 누가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