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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효권 Jul 30. 2024

F.O.M.O
(Fear Of Missing Out)

K를 처음 만난 곳은 성가대였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으면 신앙심이 줄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성가대였다. 신도 수가 2, 3만 명 되는 대형교회라면 기본 실력도 갖춰야 하고 간단한 심사도 있겠지만 내가 다녔던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신도 수 자체는 지역에서 나름 많은 편에 들어갔지만 이른바 봉사 또는 사역(事役)할 수 있는 인원은 부족했다. 본인만 원하면 어느 집단이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성가대 경우 지원하는 파트에 편입되고 3주 정도 수습 과정만 마치면 본 예배 정식 대원으로 올라갔다.


아침 8시 연습 시간보다 십 분 일찍 출석카지노 쿠폰. 그 시간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K였다. 항상 말끔한 슈트 차림으로 들어왔다. 손에 쥔 서류 가방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연습실에 비치된 오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 K의 첫 일이었다. 조용한 연습실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면 K는 그날 불러야 할 악보를 챙겼다. 그리고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각각 파트 별 좌석에 악보를 비치카지노 쿠폰. 잠시 뒤 대원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악보를 챙겨 자리에 앉았다. 본 예배가 끝나면 대원들은 탈의실에서 각자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옷장에 대충 걸어 두고 나왔다. K만 어수선한 탈의실에 남아 다시 가운을 정리카지노 쿠폰. 예배 후에 있는 연습까지 마치면 정오가 되고 그러면 교회에서의 하루가 끝난다. 대원들이 긴 의자의 한쪽 끝에 악보를 쌓아 두고 가면 K는 그 악보를 다시 챙겨 책장에 꽂아 두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K의 일과도 끝난다. 출근 아닌 출근, 업무 아닌 업무 그리고 퇴근 아닌 퇴근까지 K에게 진정한 휴일은 정말로 있기는 한 건지 궁금카지노 쿠폰.

K는 베이스 파트였다. 전(全) 파트가 함께 합창곡을부를 때는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파트별로 연습이 들어가면 베이스는 항상 뒤처졌다. 베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파트는 실제 성악 전공자들이 한 두 명 정도 있었다. 크게 음을 이탈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곤 카지노 쿠폰. 베이스만 그렇지 못카지노 쿠폰. 다른 파트에 비해 진행이 더딘 것처럼 보였다. 짬밥 좀 되는 단원들이 많았어도 가장 뒤처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더뎠던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K의 문제였다.


수습 기간을 마치고 본당에 정식으로 올라간 지 몇 달이 지났다. K와 나란히 앉아 찬송가를 부를 때였다. 왼쪽에서 자꾸 힘없는 노인네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음을 또박또박 내지 못카지노 쿠폰. 혼자서 심심할 때 흥얼대는 듯한 소리였다. K였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순간부터 내 소리까지 자꾸 말려갔다. 전공자였다면 그것에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런 실력자는 아니었다. 그 뒤로가능하면 K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성가대는 연말에 가장 성실했던 대원을 선정해 한 돈 짜리 금반지를 선물카지노 쿠폰. 일 년 기본 48주 예배 전 연습, 예배 참석, 예배 후의 연습, 한 달에 한 번 있는 오후 예배 12번, 타 성가대와 연합으로 참석하는 예배 12번, 거기에 더해 기념 예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출석해야 받을 수 있었다. K는 그런 반지를 세 번이나 받게 됐다. 처음 K가 반지를 받았을 때 모두 박수로 축하카지노 쿠폰. 그러나 세 번째가 됐을 때 사람들의 축하는 더 이상 없었다.K도 눈치가 보였는지 세 번째 선물은 마다카지노 쿠폰. 선물을 건네려던 총무의 얼굴만 무안해졌다.그 뒤로 K가 선물을 받는 일은 없었다. 사정이 있어 참석을 못한 것인지 부러 안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K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일요일이 가끔 생겼다.


그 시기에, K가 자리에 없던 때, 그의 고질적인 문제가수면 위로 올라왔다. 음계도 읽을 줄 모르고 그나마 귀동냥으로따라 부를 수만 있어도 다행이지만 기본 8개 음에서 낼 줄 아는음이 3개밖에 없으니 그가 머무르는 것이 맞느냐였다. 성실함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없었다. 성가대 대장은 꼭 성가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봉사가 있다며 K를 회유했지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건지 그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카지노 쿠폰고 카지노 쿠폰. 성가대엔 본 예배 참석 외에도 할 수 있는 잔일이 있으니 그걸 전담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주방에서 설거지나 하는 그런 역할을 그에게 시킬 수 없었다. 성가대가 전국노래자랑은 아니었다. 그 이면엔 순수(?)한 봉사 정신이 우선순위였다. K를 강제로 퇴출시킬 수도없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새로 부임하신 지휘자 선생님 덕에 주위 대원들의 이쁨을 받았다. 전공자를 제외한 비(非) 전공자가 제 역할 이상을 해 준다는 게 그 이유였다. 처음 입단할 때와 다르게 다른 파트 대원들과도 친해졌다. 소위 라인 좀 구축카지노 쿠폰는 사람들과 친분이 두터워졌다. 조금 지각해도, 연습에 빠지는 때가 있어도 웬만하면 넘어갔다. 아직 신입이었지만호사를 누렸다. K는 나와 반대편에 있었다. 멀어도 한참 먼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부활절이 임박했을 무렵 성가대는 베토벤의 ‘감람산의 그리스도’라는 합창곡으로 음악 예배를 발표하게 됐다. 교향곡 9번 ‘합창’의 초석이기도 한 이 합창곡은 독창과 혼성 4부 합창 그리고 관현악으로 편성되어 합창곡임에도 오페라처럼 줄거리가 전개되는 곡이었다. 간단히 말해 쉽게 들을 수도 불러 볼 기회도 없는 곳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곡이었다. 타 성가대와 연합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11시 예배를 담당하는 성가대 베이스 파트엔 사회단체에서 활동 중인 대원이 있었다. 프로는 아니어도 아마추어로서 그는 성악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그에게 성가대는 성가대 그 이상의 단체였다. 그런 그와 K가 앞뒤로 나란히 앉아 연습하게 됐다. K를 알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합창 연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어쩐 일로 K도 음악에 심취하게 됐다. K도 곡에 감동받았는지, 살짝 이성을 잃었다. 낼 수 있는 한 힘찬 소리를 냈다. 그것이 앞에 앉았던 그의 신경에 거슬렸다. 열정적으로 합창단 활동도 하고 나름 준(準) 프로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는 그였지만 그도 K를 감당하지 못카지노 쿠폰. 자신의 소리마저 말리자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감정대로 부르면 어떡해?, 딴 사람 생각은 안 해?”


K를 잘 알고 있던 우리가 쉬쉬하던 것을 그가 터트렸다. 누군가 했으면 하는 말을 그가 카지노 쿠폰. K는 아무 말도 못 카지노 쿠폰. 우리도 지켜만 봤다. 어쩌면 K가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쉬는 시간에 자판기 옆에서 씁쓸해하는 K가 있고 같은 파트의 대원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뭐라 위로해 주고 싶겠지만 할 말이 없어 그랬던 것 같았다. 다음 연습에 K는 그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누구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기가 그랬는지 그의 고질적인 문제가 쌓이고 쌓여 그랬는지 K는 이방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연말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를 드린다. 한 해의 마지막이자 시작인 자정 예배는 성가대에도 의미 있는 예배였다. 일 년 동안 참석이 저조했던 대원들도 그날만큼은 참석카지노 쿠폰. 저녁 11시부터 시작된 연습에서 타 성가대의 지휘자가 책임을 맡았다.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에서 학과장까지 역임하고 있던 그는 교회 후원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전공자였다. 교수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의 연습은 혹독카지노 쿠폰. 조금이라도 소리가 다르면 바로 중지시켰다. ‘단칼에 베어 버린다’는 표현을 사람들이 자주 썼다. 될 때까지 음정, 박자 하나하나 끝까지 연습시키기는 것으로 유명카지노 쿠폰.그날 그의 연습은 말 그대로 살벌카지노 쿠폰. 단순한 음조차 주의해서 불러야 카지노 쿠폰. 그러나 다른 때보다 많았던 인원에 지휘자도 힘들어카지노 쿠폰. 인원이 배로 늘었고 오랜만에 와 대충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래도 참고 또 참아가며 연습시켰다. 평상시였다면 안 되는 부분은 그냥 부르지 말고 넘어가라고 카지노 쿠폰. 그것이 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했던 말이라고 카지노 쿠폰. 그러나 그날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그것이 아무리 신성(?)한 봉사였어도,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벌게진 얼굴로 그는 소리쳤다.


“자신 없으면 올라가지 마세요! 뭐라 안 하겠습니다!”


그 말은 모두에게 한 말이었다. 속된 말로 어중이떠중이 다 모이는 날이니 소리가 엉망인 것도 사실이었다. K와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K에게 그 말은 마치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꼈다. 후에 누군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그날 K는 본당에 올라가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카지노 쿠폰. 다시는 그가 있는 연합합창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카지노 쿠폰. 그 뒤로 K의 참석은 이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K의 잔업은 여전히 계속됐다.


성가대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집단은 집단이었다.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운영진, 즉 임원이 필요했다. 제일 위로 대외적인 일을 책임지는 대장부터 성가대 살림을 맡은 총무, 회계 그리고 가운 부장과 악보 부장이 있고 각 파트 별로 파트장이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K는 늘 하던 데로 악보를 챙기고 있었다. 그때 악보를 챙기는 그의 팔을 총무가 잡았다. 이제 그런 수고는 더 이상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한편에선 그를 다른 대원들과 동등한 입장으로 대우해 주려는 배려였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의 성실한 잔업이 직책을 맡고도 할 일을 못하는 임원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남이 해야 할 일을 뺏은 꼴이 됐다. 그나마 그것 때문에 버티던 K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봉사든 돈을 받고 하는 일이든 밥은 챙겨줘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성가대도 그랬다. 식전부터 있는 힘없는 힘 다 써서 목청껏 질러대고 나면 점심이 되기도 전에 허기가 졌다. 그래서 단원들은 예배 후에 있을 연습 전에 식사를 먼저 했다. 교회 식당의 배식구에서 식사를 받고 식사를 마치면 배식구 맨 오른편에 접시와 국그릇을 놓아두었다. 그러면 주방에서 설거지를 담당하는 집사님이 이를 수거했다. 처음에 식사하는 사람이 적을 때엔 여유가 있지만, 나중 인원이 늘어날수록 제일 바쁜 곳이 그곳이었다. 언제부턴가 제일 먼저 식사를 끝마쳤던 사람이 K였다. K는 배식을 받아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먹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같이 식사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배식구로 가서 대기했다. 대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하나씩 빈 그릇을 가져오면 그는 그것을 받아 차곡차곡 정리했다. 어느 경우엔 잔반을 비우지 않은 식기까지 정리하고 있었다. K가 찾아낸 다른 일이었다. 성가대란 집단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절실하면 집요해지는 것이 사람인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적중했다.


K가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운 때였다. 사람들은 늘 하던 데로 배식구 한편에 식기를 놓아두었다. 국그릇 따로 접시 따로가 아니었다. 그냥 빈자리가 보이면 놓아두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쌓이고 쌓여 결국 한 번에 무너졌다. 젠가 무너지듯 무너졌다. 바닥에서 와장창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접시며 그릇이며 죄다 널브러졌고 잔반통에 빠지기도 카지노 쿠폰. 어떤 것은 잔반을 비우지 않아 바닥으로 튀었다. 먹다 남은 김치 양념이 핏물처럼 바닥에 퍼졌다. 배식구에 있던 집사님이 나와 서둘러 자리를 치웠다. 점점 바빠지는 시간에 배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도 빈 식기를 갖다 놓으려는 사람들의 줄도 길어졌다. 그때 누군가 그랬다.


“K형의 빈자리가 크구나....”


한 해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성실한 대원을 선정하는 순서가 있었다. 오랜만에 K가 호명됐다. 금 한 돈짜리 반지는 아니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쁘게 포장된 선물 하나가 K에게 건네졌다. 그날 사람들은 K에게 박수를 보냈다. 감사 인사였다. 오랜만에 K가 웃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도 같이 웃었다.


먹고사는 일에 치이면서 일요일은 주님의 날에서 보상이 필요한 날로 바뀌었다. 몇 년을 성가대에 나가지 않았다. 거의 칠, 팔 년이 지나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성가대에 들어갔다. 이제 그때 라인 좀 잡았다는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있다 해도 그들도 예전 같지 않았다. 자리를 내어주고 한가로이 소일거리나 하는 뒷방 늙은이들 같았다.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K도 이제는 그런 잔일을 하지 않았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다른 사람들처럼 본인 할 일만 카지노 쿠폰. 이제 교회에서 식사하는 대원들도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에 빨리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 식사 시간을 없애고 대신 연습을 빨리 끝내는 것으로 결정 난 것 같았다.


한 해를 더 활동하고 물러났다. 집단에 머무르려고 마음에도 없는 인사나 건네고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는 것이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잊히는 게 손해 날 일은 아니었다. K는 여전히 성가대에 머물러 있었다. 전처럼 절실한 모습이 아니었다. 전보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추신

이 글은 오래전 폐간된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재구성한 글입니다. 혹 인터넷에서 유사한 글을 보셨다면 그것은 동일인의 글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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