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 중에 윌리엄 서머싯 몸이 있다. 많은 대작들을 집필했고 뛰어난 작품성으로 노벨 문학상도 받았지만, 그의 독특한 해학(諧謔)은 단편 소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읽는 동안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다가도 결말에 들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다시 뒤집는 그의 독특한 작법은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한다. 새로운 작품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읽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단 몇 줄의 결말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말 자체가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충격적인 결말은 아니다.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거나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결말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반전이다.
그런 그의 단편 중에 ‘카지노 게임 추천’가 있다. 주인공인 ‘나’는 얼마 되지 않은 급여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옛 연인과 재회하게 됐다. 그것도 점심 즉 카지노 게임 추천타임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때가 때인지라 둘은 식사를 했다. 소설의 긴장감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고른 메뉴들은 하나같이 ‘나’를 긴장시켰다. 그녀가 원하는 메뉴들은 ‘나’의 지갑을 털다 못해 생활 자체마저 흔드는 고급 메뉴였다. ‘나’는 속앓이만 할 뿐 어떠한 대처도 못 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만 끌려갔다. 그녀는 옛 연인의 주머니 사정도 모른 채 ‘나’의 생활비 절반 이상을 한 끼 식사로 날려 버렸고 ‘나’는 눈 뜨고 코 베인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것으로 둘의 재회는 끝났다. 소설에는 옛 연인과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추억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가 그것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나’의 주머니 사정만 반복됐다. 그녀가 양심이 없던 것인지, ‘나’가 호구인지, 독자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나’는 그녀의 나중 근황을 몇 줄로 마무리했다. 소설을 읽었던 때가 오래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엄청난 몸무게의 소유자가 됐다는 것으로 끝났다. 소설 속의 시대였든 현실에서든 몸무게라는 것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민감한 부분이다. ‘나’는 그것을 위안 삼고 있었다.
대단한 필력(筆力)은 아니어도 남들과 비교되는 재주 덕에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일자리를 얻은 적이 있었다. 자기소개서 지도였다. 대입 수시전형에는 학생부 종합평가(줄여서 학종)가 있고 그 속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자기소개서(줄여서 자소서)가 들어갔다. 실제로 자소서는 당락(當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입학 사정관에게 지원하는 학생에 대한 관심도와 궁금증만 높여줄 뿐이다. 나중 면접에서 자료로 쓰일 수 있지만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험생과 학부모에겐 그렇지 않다. 하나라도 남들보다 나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보니 학부모와 입시생은 그들 나름대로 대입을 위해 생활기록부(줄여서 생기부)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고, 업자들은 업자들대로 “자소서 하나만으로 학교가 바뀐다.”, “5등급이 인(in) 서울 했다.”는 등부모들을 현혹했다. 입시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카페에서 두어 시간 상담만 받아도 몇십만 원이 오가고 모집 시즌에 자소서만 써주고 일 년을 먹고사는 대필자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직 순수해야 할 나이에 세상 살아가는 방식부터 익히는 수요자나, 그것을 이용해 메뚜기 한철을 보내는 공급자나 거기서 거기지만 수능이 끝나면 3개월 정도 거의 수입이 없어 보릿고개를 넘어가려면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이전해 지도했던 학생 하나가 고대에 들어갔다. 다음 해 학생 엄마가 회사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학생 엄마를 소개했다. 그녀의 아들은 엄마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생기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일반고였음에도 과학고나 외국어고에서만 할 수 있는 활동을 했고 성적도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그때 자소서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이었다. 내신 또한 상위권이었으니 입학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다.
자소서 지도란 보통 학생의 우수한 면이나 두각 된 활동을 골라 동기, 활동, 고비나 갈등 해결 그리고 거기서 얻은 교훈들을 서사형으로 작성하게 한 후 그것을 토대로 문맥에 어긋나거나 애매모호한 것들은 걸러내고, 조건에 맞게 글자 수를 조정하거나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교정하는 것이 자소서 수업이었다.
학생 엄마는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입시생 엄마들처럼 대필을 의뢰한 것으로 착각해 잘 써달라는 둥, 빨리 써달라는 둥, 나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쓰면 어떡하냐는 둥 온갖 난감한 요구나 어이없는 항의도 없었다. 그저 옆에서 필요한 것만, 궁금한 것만 물어보았다. 처음 몇 번만 그랬다. 학생은 학종으로 서울대와 연대 그리고 고대를 지원하려고 했다. 대입 자소서는 3번 문항까지 공통 항목이고 나머지 4번은 자율 항목이라 대학 자체에서 임의로 문항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특이한 문항이 들어가진 않았다. 주로 지원 동기라든가 지원자가 그 학교의 인재가 될 수 있는 요건이 무엇인지 아니면 입학 후 학업 계획이 무엇인지 같은 지원자 자신을 어필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연대도 그랬고 고대도 그랬다. 서울대만 달랐다. 서울대는 3년간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3권을 골라 그 이유를 기술하라는 내용이었다. 읽은 책이 많아 무엇을 고를지 아니면 읽은 책이 부족해서 그런지 학생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엄마는 넌지시 말했다.
“이건 선생님이 대신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카지노 게임 추천의 완강한 반대로 난감한 상황은 벗어났다. 일단 기억나는 것부터 쓰고 나머지는 먼저 써둔 뒤 나중 면접에 대비해 읽어보자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때 처음 쓴 책은 카프카의 ‘시골의사’라는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그러다 연대와 고대의 4번 문항에서 일이 터졌다. 아이 아빠가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학생 엄마가 학교 담임 선생님과 과목 선생님의 피드백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내용을 수정해 보냈지만 학생 엄마의 불신은 이미 커진 상태였다. 며칠 답이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톡을 보냈고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다른 쪽에 자소서 피드백을 받으니 콘셉트는 맞으나 형식에서 어긋난다고 했다. 이전에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간 문항까지 꼬투리 잡았다. 콘셉트는 맞으나 형식에 어긋났다는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수학 공식도 아니고 이력서도 아닌 것에 무슨 형식이 있다는 것인지, 그렇게 공장에서 찍어내듯 써 내려간 자소서가 있다면 뭐 하러 그 수고를 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 엄마는 다른 쪽에 그동안 고생고생해 가며 완성했던 자소서를 맡겼고 그렇게 수정한 자소서로 원서 접수를 마감했다.
회사에 고용된, 전직 입학사정관을 지냈던 고문(顧問)님이 “자소서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썼어도 문제점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처음 수업을 진행했을 때 이 부분을 학생 엄마에게 당부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당장 코앞에 닥친 접수 마감일도 그랬고 자식 진학 문제에 온통 신경이 곤두섰으니 처음 했던 당부를 기억 못 하는 것도 맞았다. 이전해 고대에 들어간 학생은 작성한 자소서로 상담을 받아봤자 계속 문제점만 지적받고 그렇게 수정하다 보면 처음과 다르게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아 일부러 원서 접수 마감이 가까워질 무렵에 상담받을 거라고 했다. 그래야 학교에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훑어보고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어도 그 학생은 합격했다. 그것이 어쩌면 자소서의 실체라는 것을 반증한 셈이었다. 학생 엄마에게 받은 톡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답을 하지 않았다. 신경이 예민한 상태에서 대응해 봐야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것 같아서였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진정되겠거니 했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지나 수업료를 결산할 때였다. 카지노 게임 추천 엄마가 수업료 일부는 결제하겠지만 전부는 못 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용도 그랬지만 자신의 톡에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다는 게 더 괘씸하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내용을 확인하니 전반적으로 큰 문제는 없으나 글 마무리가 좀 이상하다고 했다. 처음 그 고문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과 똑같은 우려가 회사에서도 발생했다. 회사에선 그래도 끝까지 카지노 게임 추천 엄마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득할 생각이 없었냐고 물어봤다. 상황이 민감한 때라 그러지 못한 것이 내 착각이었다. 그렇지만 회사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십여 일 넘는 노동의 대가가 허무하게 지나갔다.
수능도 끝났고 최종 합격도 발표됐다. 학생은 서울대 화공과에 합격했다. 어느 날 회사 홈페이지에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적은 합격 수기가 올라왔다. 회사에선 해마다 주요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대신 학생의 합격 수기를 홈페이지에 올리곤 했다. 학생의 엄마는 거의 공짜로 자소서 수업을 받은 것과 같았다. ‘누가 또 수정했겠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20학번으로 서울대생이 됐다. 그리고 그해 코로나19가 터졌다. 모든 생활이 거의 마비됐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어 등록금만 내고 학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방구석에서 원격강의만 들어야 했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방송통신대학교가 됐다. 서울대도 그랬다.
당시엔 회사에 소속된 몸이라 회사 입장도 있고 해서 카지노 게임 추천 엄마에게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엄마와 주고받은 카톡만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왜 간직하고 있는지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톡을 보면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학교에 가지 못한 상황이 생각나 그냥 쓴웃음만 나왔다.
서머싯 몸은 사실인지 그냥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를 일을 작품으로 남겼고 나는 그냥 톡으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