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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효권 Mar 01. 2023

봄비

주차를 시키고 차 문을 닫는 순간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 자란 놈의 울음이 아니었다. 새끼의 울음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주차장 뒤쪽 야산 밑에 무릎 높이 정도 되는 바위위에서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어떻게 그 위로 올라가긴 했는데, 내려올 방법을 몰라 그저 울기만 하는 것 같았다.

천천히 다가가 아랫배를 들어 바위 밑에 내려놓았다. 한 손으로 자신을 안아 올리는 그 손에 겁을 먹지도 않았고, 자리에 내려놓은 뒤에도 떠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자세히 살펴봤다. 꼬리를 뺀 몸길이가 30센티 자 보다 조금 작았다. 금빛 바탕에 얇은 흰 띠를 두른,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놈이다. 그런데 왼쪽 허벅지에 엄지손가락 절반 정도 크기의 상처가 나 있고 털이 빠져 있는 상태였다. 어느 정도 살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상처가 아물고 있는 상태였다. 살짝 손가락을 갖다 니 몸을 움츠리며 살짝 울음을 냈다. 아직 통증이 있어 보였다.


새끼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온순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을 보면 주인에게 버려졌거나, 길을 잃어버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다시 비슷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흰 바탕에 코와 귀 그리고 꼬리 주위에만 노란 얼룩무늬가 있는 새끼 고양이였다. 친구이거나, 형제일 것이다. 그 녀석은 달랐다. 생김새도 이 녀석보다 날카로웠고 그 눈빛도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동무 때문에 가까이 다가왔지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정확히 가까이 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먹으려 했던 단팥빵을 조금 떼어 카지노 쿠폰의 입 앞에 갖다 대니 카지노 쿠폰은 두 앞발로 내 손가락을 쥔 채로 조금씩 뜯어먹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카지노 쿠폰에게도 빵을 갖다 댔지만 다가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먹이고 싶어 바닥에 빵을 던져 줬지만 냄새만 맡을 뿐 먹지는 않았다. 배가 홀쭉해 보이는 것이 둘 다 며칠은 굶은 것 같았다. 집에서 우유를 좀 갖고 나왔지만 그사이 어디론가 가버렸고 바닥엔 좀 전에 던져준 빵 부스러기만 남아 있었다. 개미들만 모여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주차장 한쪽 구석에 우유를 놓아두었다.


며칠이 지났다. 햇반 그릇에 따라 두었던 우유가 절반 정도 줄어 있었고, 곁에 사료도 조금 놓여 있었다. 같은 빌라에 사는 누군가도 카지노 쿠폰들이 안쓰러웠나 보다. 다세대 주택에서 동물을 키우기가 눈치 보이는 일이니, 카지노 쿠폰들로 위안을 받고 싶었나 보다. 이틀이나 사나흘에 한 번씩 집 근처에서 카지노 쿠폰들을 보았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어정거리는 것이 이제는 내가 익숙한 것 같았다. 물론 같이 있던 흰 동무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도 주차장이 카지노 쿠폰들의 쉼터이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날씨도 따듯해졌지만, 만날 기회가 없던 것인지 아니면 이 구역을 떠난 것인지 보름 가까운 시간 동안 카지노 쿠폰들을 볼 수 없었다. 그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이제 볼일이 없어 떠난 것인가 생각했지만, 주차장에 놓여있던 사료의 양이 처음보다 줄었고 떠났다면 남은 사료는 개미들의 몫이 됐을 텐데 아직 그렇지 않았다.

늦은 오후에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차를 몰고 가다 앞쪽에서 한 아저씨가 땅바닥 쪽으로 뭔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차를 몰며 차창 밖을 보니 카지노 쿠폰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놈은 손짓에 응하고 있고 다른 한 놈은 그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반갑기도 했고, 눈에 비치는 그 모습이 데자뷔 같기도 했다.


며칠이 더 지나 다시 녀석들을 만났다. 여전했다. 처음 마주한 지 3주 정도 지났지만 그때의 행동도 지금의 행동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사료의 양이었다. 다른 곳을 기웃거렸으나 여기만큼 얻어먹지 못했나 보다. 분명 길고양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둘까, 아니면 신고를 할까 고민했다. 한 놈은 그렇다 쳐도 다른 한 놈은 경계심 때문에 쉽게 구조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고민만 하다 내 볼일을 보러 갔다. 지금이 아니어도 시간은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자정이 지난 시간에 주전부리가 생각나 집을 나왔다.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집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건널목 중간에 고양이 하나가 모로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고였다. 지나던 차에 치인 것이 분명했다. 눈살이 찌푸려졌고, 그 앞을 지나기가 불편해 백여 미터 떨어진 다른 건널목을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왠지 낯익은 모습 같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불안한 마음에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금빛 바탕에 얇은 흰 줄무늬를 띈, 크기도 작은놈이 등이 터진 채 살점은 널려 있고 피도 제법 흘러 있었다. 그리고 허벅지엔 상처가 하나 있었다. 녀석의 허벅지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 상처였다. 녀석이었다. 경계심 없던 이놈이 늦은 밤 한산해진 도로가 주차장만큼 안전한 곳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카지노 쿠폰의 사체를 직접 수습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더 이상 지나는 차량에 다시 처참하게 해를 입지나 말았으면 하는 바람만 갖고 자리를 떠났다. 처음 외출의 목적이 주전부리가 필요했던 것인데 편의점에서 무엇을 집었는지 모르겠다. 계속 카지노 쿠폰의 모습만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떨어져 있는 건널목을 이용했지만, 집 앞 건널목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카지노 쿠폰이 쓰러져 있던 그 자리는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자리였다.


카지노 쿠폰이 보이질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길가에 깜빡이를 켜 놓은 채 정차해 있는 소형차 쪽으로 한 남자가 양손에 고무장갑을 낀 채 뭔가가 담긴 커다란 파란 봉투를 손에 쥔 채 걸어가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이 누워있던 그 자리에 카지노 쿠폰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검은 아스팔트 위로 살점 일부와 혈흔만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차량엔 ‘동물 구조 센터’라는 표시가 있었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였어도 찾아낼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고민한 그사이 자연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진 않았다. 참으로 냉정하다 생각했다.

다음 날은 새벽 내내 비가 내렸다. 바람도 심하게 불어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렸고 나뭇잎도 많이 흩날렸다. 봄날에 어울리지 않게 추웠다. 아침 출근길에 카지노 쿠폰이 놓여 있었던 그 자리는 밤새 내린 비로 카지노 쿠폰의 남은 흔적은 깨끗이 씻겨졌다. 바람에 날린 잎새들이 카지노 쿠폰이 누워있던 자리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 위로 아기 무덤이 하나 생겼다. 자연은 그렇게 카지노 쿠폰을 거둬 갔다. 장례까지 치러주고 데려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동네로 이사하기까지 남아 있던 그 흰 동무는 보이지 않았다. 동무의 죽음을 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시 혼자 살 길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인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카지노 쿠폰처럼 비참한 일만 겪지 않았으면 했다. 조심성이 많으니 그러리라 생각했다. 카지노 쿠폰들이 먹던 사료는 이제 개미들 몫이 되었고 하루씩, 하루씩,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줄어드는 양만큼 카지노 쿠폰에 대한 기억이 줄어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새로 이사 온 지 삼 년이 지났다.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녀석처럼 살가운 놈은 없다. 경계심이 더 많은 놈들만 있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연이, 아니 인간이 만든 환경이 가르쳐준 방법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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