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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효권 Mar 17. 2023

주주카지노 쿠폰(酒主總會)

‘주주카지노 쿠폰(酒主總會)’라는 것이 있었다. 대학 때 있었던 주간 행사였다. 흔히 알고 있는 기업의 주주카지노 쿠폰(株主總會)와 같은 총회가 아니라 간혹 주말에 열리는 삼겹살 회식이었다. 밀린 과제를 한다거나 남은 공부가 있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집에 가기 귀찮아 기숙사나 자취방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끼리 모였던 저녁 식사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잠시 머리 좀 식히러 밖을 나오면 누군가 한마디 했다.

“오늘 주주카지노 쿠폰(酒主總會) 있다.”


총회에 의장은 따로 없었다. 총회를 발표(?)한 사람이 의장이고 회비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보통 인당 오천 원 정도였는데 삼겹살에 식사 그리고 맥주 한 잔 정도 가능했다. 각자 낸 돈만큼 먹을 수 있는 지분이 있었으니 이것도 주주카지노 쿠폰(株主總會)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남은 공부를 마치면 그것으로 그날의 총회는 끝난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외로운 지방대생들이 할 수 있는, 요즘 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중 하나였다.

그날의 주주카지노 쿠폰는 평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상소집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번개모임’이었다. 정규 회원이 아닌 비정규 회원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총회였다. 때를 놓쳤으니 배도 고프고 다음 날 수업 부담도 없으므로 누군가 제안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 나는 그 소집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나는 도서관 소강당에 있었다. 국문과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날, 비상소집이 있던 그날은 시인 김춘수 선생의 강연과 날짜가 겹쳐 있었다. 국문과 권명옥 교수가 선생을 세 번이나 찾아간 끝에 얻어낸 강연 약속이었다. 대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였지만 이후에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웠던 시가 ‘꽃’이었다. 천 원짜리 몇 장이면 배를 채울 수 있고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그 시간에 시인을 좀 더 가까이 그리고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저녁을 거르고 그날 과제도 뒤로 미룬 채 잡은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큰 키에 팔십이 넘은 노년의 시인이 강단의 계단을 오를 때 모습은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와 같았다. 왼편의 테이블에 선생이 앉고 오른편 테이블에 권명옥 교수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강당은 조용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소리 없는 인사였다. 강연은 좌담의 형식을 빌어 권명옥 교수가 질문을 던지면 그에 대한 선생의 답변으로 진행됐다.

시인 김춘수 선생의 ‘무의미시론(無意味詩論)’이 그날 강연의 주제였다.


선생은 처음 시를 접했던 시기부터 본격적인 시를 탐구했던 모든 일련의 과정을 쉼 없이 얘기하셨고 시의 존재에 대한 고뇌를 말씀하셨다. '왜 시는 시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가?’ 시는 더 넓게 문학은 항상 무언가 의미를 남겨야 하며, 왜 시대의 도구로써 활용되어야 하는지, 왜 음악처럼 자체로 남을 수 없는 것인지 고뇌했고 순수한 시 자체의 존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시가 가지는 의미를, 정확히 글자가 가지는 의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시 한 수를 읊으면서 “아무 뜻도 없으니 그냥 읽고 뒤로 젖혀 놓아도 됩니다.”라고 얘기하며 마치 물건 버리듯 한 손을 휘저음으로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강연의 본질은 '중용(中庸)'이었다.

선생은 글을 해체하는 극단까지 갔으나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글자가 갖고 있는 ‘의미’는 장점이자 한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본다면 선생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주한 역사 속에서 그 한계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 뒤로 선생은 그저 중간의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 시를 썼다고 했다. 시가 순수한 시로 존재하려면 결국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아야 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고 그것이 ‘중용’은 아니었을까? 치우침이 없어야 하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어디든 줄을 잘 서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 정치를 해야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치우침이 없으면 패자와 엮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선생이 순수한 존재의 시를 만든다 해도 세상이 그렇게 놓아두지 아니했으므로 선생도 결국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선생의 강연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주주카지노 쿠폰는 밤새 이어졌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강연 이후 선생은 몇 년 뒤 별세하셨고, 주주카지노 쿠폰도 대학 졸업 후에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 시절 주주카지노 쿠폰(酒主總會)에서 먹었던 냉동 삼겹살의 맛이 그리고 그 자리에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시인 김춘수 선생의 그 모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선생의 강연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시인은, 순수한 시는 만들지 못했지만, 본인이 만든 무의미시론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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