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만!!!”
일명 쪼는 맛의 당첨자가 된 김준현의 외마디 외침이다.
숟가락 위의 밥과 4층 장어탑이 도전과 의지력으로 무장된 입안으로 냉큼 사라졌다.
‘The 맛있는 녀석들’은 재미있는 입담과 상황극을 더한 맛표현 때문에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저녁 무렵 남편이 틀어놓은 재방송 먹방 프로그램에 끌려 거실 소파에 앉고 말았다.
여름 보양식 셋째 특집으로 선보인 메뉴가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어와 카지노 게임였다.
작년부터 저녁 간헐단식을 꾸준히 실천 중인 나로서는 보이지 않는 군침과 들리지 않는 외침을 삼키며 다짐을 했다.
“내일 점심메뉴는 반드시 카지노 게임이어야 한다!”
다음날, 다짐했던점심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복학을 앞둔 딸에게 맛집 보양식을 사 주겠노라 생색까지 내며 함께 집을 나선 것이다.
아침밥을 건너뛰고 아점으로 몰아서 맛있게 먹겠다는 결심을 하며말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렸다.
마음처럼 다급한 나의 발걸음에 의아한 딸이 묻는다.
“엄마, 거기 음식점은 몇 시에 열어요?”
“오전 11시, 그런데 조금만 늦어도 대기줄이 장난 아니야”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서성이는 중년여성 몇 분을 보며 딸에게 말했다.
“저기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보이지?
대부분 우리가 가려는 그 한정식집을 가기 위해 일행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아”
벌써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이 있던 터라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을 거란 확신을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평일에도 지하철역에서부터 오픈런 경쟁자들이 종종 목격되는 토속 한정식 맛집이었다.
작년 가을에는 미국에서 오신 시 작은아버님 내외분을 모시고 방문했던 적도 있었다.
그날은 거의 12시쯤에 도착해서 대기줄이 어마무시했었다.
약 1시간 정도를기다린 후에야 식당 안으로 입장했던 기억이 난다.
성격 급한 작은아버님이 그토록 오래 기다린 건 드문 일이라고 작은어머님이 말씀하실 정도였다.
출입국업무를 도와준 조카며느리가 고마워서였는지 긴인내심을 발휘하신 작은아버님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나름 고국에서의 첫 한정식을 제대로 소개해 드렸다는 자부심도 생긴 곳이었다.
안국역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맛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이 있다.
지난해 탁 트인 녹지 광장에서 조각페스티벌과 빛축제를 관람했던 기억이 스쳤다.
2월의 광장은 조용히 봄을 기다리는 여백만 가득해 보였다.
송현광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맛집은 다행히 대기줄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예전과 달리 제 역할을 시작한 키오스크에서 상차림정식2인과 메인요리로 카지노 게임를 주문할 수 있었다.
식당 좌석에 앉자마자 나무쟁반에 올려진 밑반찬 그릇들이 테이블 위에 먼저 세팅되었다.
반찬그릇은 물론이고 앞접시까지 항균 유기그릇을 사용하는 점에서 품격이느껴졌다.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을 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취향 저격이었다.
흑임자 연근무침, 고추 무말랭이, 가지튀김, 시금치나물, 배추김치, 무나물, 호박고지나물, 열무김치, 꽈리고추 멸치볶음, 우엉튀김, 감자조림으로 총 12가지다.
마중 나온 반찬의 가짓수 보다균형 잡힌맛의 퀄리티가 훨씬 감동이었다.
심지어 모든 밑반찬들은 얼마든지 셀프 추가이용이 되는가성비 좋은 맛집이라는 것이다.
곧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골청국장과 뜨거운 서리태솥밥이 나왔다.
메인메뉴인 카지노 게임가 먹기 좋게 살이 발라져 나오면서우리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어제 TV앞에서 했던 다짐이 현실로 재현되는 맛난 순간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식당 안은 만석이 되었다.
출입문 쪽을 향해 앉은 딸아이는 순식간에 복도에 늘어선 웨이팅 줄에 신기해했다.
더욱이 아까 지하철역에서 보았던 그 중년여성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볼 때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엄마의 예감과 독심술에 놀란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녹차 물밥 한 숟갈에 카지노 게임 한 점이 내 카지노 게임을 다 가졌다.
조용한 어른의 카지노 게임을 찾은 여운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