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5604. 사쿠라&베리
루피시아의 벚꽃시즌 계절한정차 사쿠라 시리즈의 세 번째는 사쿠라&베리이다. 이것도 역시 10년은 넘은 것 같은 블랜딩인데 매년 꾸준히 인기가 좋다. 아무래도 한국에선 사쿠라&베리의 발매시기와 딸기시즌이 겹치기도 하고 단순히 사쿠라바(사쿠라 베르편 참고)만 들어가는 블랜딩보단 훨씬 친숙하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나만은 어쩌다 보니 여태 초면인 사쿠라&베리를 드디어 마셔보게 되었다. 맨날 마시던 거 위주로만 마시다가 공개적으로 시음기를 연재하면서 드디어 만나게 되는 차들이 많이 생겼다. 이미 폐번이 되어버린 것도 많아서 좀 일찍 시작할걸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여러 가지로 상황이 지금처럼 넉넉하지가 않았던 탓이 커서 지난날은 잊고 지금의 상황을 열심히 즐겨보기로 한다. 이번에도 넉넉하게 100g을 구매했다. 한정 일러스트 캔입으로 50g에 1230엔, 일반 봉입으로 50g에 850엔이다. 상미기한은 제조 후 2년.
다른 한정 일러스트와 비슷한 느낌의 일러스트인데 깨알같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꽃도 같이 그려놓았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그려져 있다. 생각해 보면 벚꽃과 온라인 카지노 게임꽃,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사이즈가 실제 비율과는 좀 관계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런 게 예술이겠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꽃도 하얗고 동글동글한 게 꽃잎만 떨어져 있으면 벚꽃과 비슷할 것도 같고 빨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까지 뭔가 그라데이션 같아서 톤이 맘에 든다.
사쿠라노 하오 부렌도시타 코우챠니 이치고노 아마이 카오리오 소에마시타. 훈와리 야사시이 하루 겐테이노 후우미데스.
벚나무 잎을 블렌딩 한 홍차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달콤한 향을 더했습니다. 부드럽고 은은한 봄 한정 풍미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쿠라&베리의 베리가 꼭 스트로베리일 이유는 없지 않나? 일러스트부터 설명까지 딸기라고 명쾌하게 알려줘서 정말 다행이다. 밑도 끝도 없이 레드베리라고만 적어놓으면 답답해서 못 견디는 사람. 설명엔 나와있진 않지만 공홈에서는 밀크티 추천 라벨이 붙어있다. 루피시아의 딸기가향은 기본적으로 밀크티 추천이 붙는 기분이다. 물론 로제 로얄 같은 청량계열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밀크티 계열이었던 것 같다. 사쿠라바가 밀크티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면 아주 익숙한 휘발성 있는 딸기가향이 빠르게 비강을 접수한다. 그제서야 다시 라벨을 보니 flavored tea라고 되어있다. 확실히 가향이 들어갔구만. 그 외의 향들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딸기가향이다. 건엽을 덜어보니 꽃잎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데 장미꽃잎이 들어있다. 딸기와 장미의 조합은 루피시아에서는 꽤나 흔한 조합으로 캐롤이나 유메 같은 대표적인 라인업부터 비슷한 변형이 꽤 있었던 기억이다. 딸기 원물은 없이 가향만 되어있고 사쿠라바가 블랜딩 되어있다. 씨티씨 없이 브로큰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5g의 차를 300ml의 100℃ 물에서 2.5분 우려낸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사쿠라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무거워지기 쉬운 특징이 있어서 스트레이트도 살짝 가볍게 해 주는 게 좋은데 사쿠라&베리의 경우 조금 더 짠맛이 도드라지는 편이라 평소보다는 약간 차를 덜어주는 편이다. 꽤나 가라앉는듯한 무거운 딸기향이 좀처럼 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짧게 코를 스치는 딸기향과 함께 한 모금을 마셔보면 부드러운 홍차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넘기면 부드럽게 넘어가고 잠시 입에 머금고 있으면 딸기가향이 입안을 채우면서 수렴성이 입안을 조이기 시작한다. 부드러우면서도 수렴성이 있는 편이라는 게 또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차 맛이 어딘가 가운데가 조금은 비는 느낌이 드는데 풍미가 너무 강하지 않게끔 조절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사쿠라 시리즈 중 가장 사쿠라바의 향이 적게 느껴지는 게 바로 사쿠라&베리이다. 스트레이트에서는 딸기가향을 부스팅 하는 느낌으로 뒤에서 조용히 서포트하는 정도. 맛을 더 확실히 느끼기 위해 투자량을 좀 늘려보면 갑자기 짠맛이 확 올라오기 시작하고 홍차가 다즐링이 잠깐 스쳐가는 닐기리 아쌈 스타일의 부드러운 차맛이 난다. 부드럽지만 꽉 차는 홍차라는 점에서 염도가 올라오면서 살짝 비는듯한 풍미를 매워버리는 느낌이다. 진하게 우린 버전은 입에 머금고 있지 않아도 꽉 차는 홍차맛 뒤에 후미로 딸기의 향이 수렴성 있게 입안을 조여준다. 문제는 스트레이트에서 연한 버전과 진한버전의 농도 조절이 쉽지가 않다는 것.
밀크티를 위해 진하게 12g의 차를 100℃의 물 300ml에서 3분간 우렸다. 로얄 밀크티도 좋긴 한데 우유를 부어주는 것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로얄은 한두 번 하고 보통은 그냥 편하게 런던식으로 부어마셨다. 진하게 우려낸 뒤 한잔 따라내니 사쿠라바와 섞여서 향수 느낌으로 장난스러운 딸기 가향이 폴폴 끓어오른다. 우유를 부어주자 밀크티 느낌은 아니었던 향들이 우유를 만나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고 기품이라는 게 생겼다. 얼핏 토치오토메의 밀크티 느낌도 스쳐 지나가는데 이쪽은 아무래도 백퍼 가향이다 보니 딸기와 씨티씨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좀 더 산미 있는 일반 딸기가향차의 느낌이다. 오히려 스트레이트의 토치오토메 느낌에 가까운 것도 같고. 언뜻언뜻 플로럴 한 느낌이 스쳐 지나가서 사쿠라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유를 붓기 전엔 꽤나 짭짤했을 차인데 우유가 들어가고 나니 짠맛이나 향은 느껴지지 않고 적당히 즐기기 좋은 느낌의 밀크티가 되었다. 밀크티용으로는 차가 조금 비어있지 않았나 싶은 부분도 기가 막히게 커버가 되어있다. 차의 풍미나 향이 우유에 밀리거나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 향이 좀 대놓고 인공가향이라 밀크티에서 좀 튀나 싶기는 한데 튀긴 튀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라 그것도 참 신기하다. 뭐 여러가지가 감상들이 있긴 하지만 일단 스트레이트에서 까다롭던 염도조절이 이쪽에선 한결 편안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안심하고 차를 팍팍 넣어 마실 수 있다. 어떻게 비율을 조절해도 간이 대충은 다 들어맞아서 너무 편하다.
한국에서 벚꽃의 개화 시기는 3월 말에 시작하여 4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딸기 시즌이 딱 끝난 뒤라고 보는 게 맞겠다. 그래서 벚꽃과 딸기를 같이 생각해 볼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이구나 싶다. 사쿠라바가 여러 벚꽃 화과자나 간식을 만들 때 그러하듯 은은한 향과 함께 전체적인 감칠맛을 담당하는데, 주재료가 첨가물인 딸기가향임에도 그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맛이었다. 비어있는 듯 마침내 꽉 들어차는 맛. 밀크티는 아무도 모르게 짠맛을 살짝 첨가하면 맛있어진다는 궁극의 진리를 입증하는 달콤한 비밀이 숨어있는 사쿠라&베리였다. 뭔가 아니다 싶으시면 우유를 부어보세요. 벚꽃향 딸기우유인 사쿠라&베리,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