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기독교인에겐 크리스마스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예수님이 탄생보다 그의 부활이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부활절에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늘 분주하게 보낸다. 나도 그러했다. 그런데 카지노 가입 쿠폰를 옮기면서 그렇게 분주하게 보내는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저 조용히 그들이 준비해 놓은 밥상에 숟가락하나 미안하게 올리게 되는 부류가 되었다.
나 역시 작은 카지노 가입 쿠폰를 다닐 때는 부활절의 의미를 새기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늘 분주했다. 큰 카지노 가입 쿠폰로 옮기면서 내게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권유조차 해주는 사람이 없어졌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불편한 상태로 예배를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흔히들 예배를 보러 간다는 말을 자주 쓴다. 말 그대로 에배시간에 참석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예배의 순서를 바라보고 온다는 것이다. 큰 카지노 가입 쿠폰에 와보니 그 웅장한 카지노 가입 쿠폰실내의 인테리어와 음향시스템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들을 바라보고 오는 경우가 실제로 많아졌다. 물론 그 안에도 감동이 있고 은혜가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전에 다니던 작은 카지노 가입 쿠폰에서 찬양팀의 리더로 꽤 오랜 시간 보냈다고 큰 카지노 가입 쿠폰모임에서 나를 소개하자 어떤 분이 자신의 봉사모임에서 찬양으로 섬겨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 모임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알고 싶다고 하여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석했었다. 그런데 처음 참석한 그 봉사모임은 마치 경력사원으로 처음 출근한 직장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 하나 말 걸어주지 않았고 나를 데려간 분 역시도 자신의 역할에 바빠서 나를 챙겨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 모임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한 시간을 앉아있는데, 그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심지어 말씀을 전하러 온 교역자 역시도 새로 온 나의 존재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1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었는데...
큰 카지노 가입 쿠폰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새로 온 사람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말 한마디 물어봐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담당교역자로써 모임에 성경말씀만 전하고 쌩하고 나가버렸다. 작은 카지노 가입 쿠폰에선 참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나는 마음이 완전히 닫혔고 그 목사가 나가는 것을 보고 그냥 나도 바쁘다고 핑계를 대며 함께 나왔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려는데 누군가 쫓아 나왔다. 준비한 다과를 가지고 가라고 내게 큰 과자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솔직히 그냥 그 과자를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싶었으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내게 그 봉사모임에 가자고 한 그 사람에게 카톡으로 앞으로 참석하기 어렵겠다고 대충 둘러대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너무 속상했다. 내가 가지고 간 기대가 민망하기까지 했다. 봉사를 위한 모임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새로 온 사람을 뒷전에 미뤄놓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을 수 있을까?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커피 한잔을 대접하지도 않는 모임이 카지노 가입 쿠폰모임일 수 있을까? 그런 홀대과 무관심으로 사람들 대하는 사람들이 무슨 봉사를 할 수 있을까? 보통 내가 아는 카지노 가입 쿠폰의 모임에선 새로운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며 환영의 대상이었다. 작은 카지노 가입 쿠폰에선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참 불쾌한 사건이었다. 그 봉사모임 덕분에 나는 그 큰 카지노 가입 쿠폰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이 소멸되어 버렸다. 그 이후 예배시간도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유튭을 통해 교인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나 홀로 교인이 되어 버렸다.
이런 불편한 관계가 싫어서 카지노 가입 쿠폰를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예수님은 좋은데 교인이 싫은 거고 그 모임이 싫은 거다. 사람을 보고 카지노 가입 쿠폰생활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사랑을 실천하면 된다고... 그러나 그러기엔 카지노 가입 쿠폰 안에는 사람을 카지노 가입 쿠폰밖으로 밀어내려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카지노 가입 쿠폰를 분열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이라고 사탄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위로받고 또 상처받는다. 카지노 가입 쿠폰는 상처 주는 곳이 되어선 안된다. 그럼 우린 갈 곳이 없다. 피할 곳이 없다. 카지노 가입 쿠폰는 끝없는 하나님의 사람을 영원히 나타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세워졌다. 어떻게 그런 무한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교인도 사람인데 어떻게 한결같이 모두들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영원한 숙제를 해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영원한 사랑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불합리한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작은 카지노 가입 쿠폰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느라 새로 오신 분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 내가 새 신자로서 이런 일들을 겪어보니 한 카지노 가입 쿠폰에 교인으로 정착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로 인해 내가 겪은 동일한 감정으로 인해 카지노 가입 쿠폰를 떠났을지도 모를 분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했다.
카지노 가입 쿠폰 안에서 예배를 통해서나 아니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인들에게나 새 신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무던히 애들을 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사역을 위해 사람들 놓치는 경우가 참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무엇인 우선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5천 명을 먹인 오병이어 사건을 많이들 알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 5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남겼던 기적 같은 사역이었다. 우리는 이런 사역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크게 보이는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보이는 그런.... 결과에 중점을 둔 사역말이다. 하지만 그런 큰 결과를 만들어 낸 사역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낮아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것보다 더 큰 행사를 만들어야 하고 더 큰 사역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높아진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큰 사역의 결과에는 어느 소년의 헌신의 마음이 그 시작이었다. 자신의 끼니였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에게 드렸다는 것이 이 큰 사역의 시작이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는 이 한 사람의 마음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그 한 사람의 인생을 반드시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큰 일을 행하는 시초가 되는 것이다. 이 낮아진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카지노 가입 쿠폰는 더 이상의 기적도 일어나지 않고 분열의 수순을 밟게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런 한 사람의 인생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을 위해 십자가 형벌을 감수하셨고 그 한 사람을 위해 약속대로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 나신 날로 기념되지만 결국은 그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모든 이들의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기도 하다.
원래 장기를 두면 뒤에서 보는 사람들이 그 수를 더 잘 보는 경우가 있다. 왜냐면 실패를 해도 부담이 없기때문이다. 카지노 가입 쿠폰안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은 실제로 여러가지로 실패와 좌절을 많이 느낀다. 자신의실수로 한 사람이 카지노 가입 쿠폰를 등질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런 큰 부담감을 품고도 신실하게 헌신하는 순수한 교인들이 참 많다. 박수 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그런분들때문에 카지노 가입 쿠폰는 아직도 소망이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이 부적응자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