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Apr 28. 2025

EBS 카지노 쿠폰 전해준 시정

문학의 갈래 중 단연코 내가 가장 무지했던 장르는 시였다. 존경하고 경외하기는 했으나 이해하지도 못했고 즐기지도 못했다. 막연히 진입 장벽이 까마득히 높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수강한 EBS 문학 수능개념 강의가 이런 인식을 바꿨다.


고등학생 시절 무심히 보아 넘겼던 문학 교과서와 문제집이 실은 형형색깔의 보석이 가득 담긴 보물상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EBS를 찾아가 수강신청을 했다. 알찬 강의와 교재를 통해 접한 작품들은 생전 처음 시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시가 건넨 위로의 언어는 높고 튼튼한 마음의 울타리가 되었다. 감명 깊게 읽은 두 작품을 골라 글벗님들의 집 앞까지 울타리를 연장해보고자 한다.



달걀 속의 생(生)2

김승희


냉장고 문을 열면 달걀 한 줄이

온순히 꽂혀 있지,

차고 희고 순결한 것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난 그것들을 쉽게 먹을 순 없을 것 같애


교외선을 타고 갈곳없이 방황하던 무렵,

어느 시골 국민학교 앞에서

초라한 행상아줌마가 팔고 있던

수십 마리의 그 노란 병아리들,

마분지곽 속에서 바글바글 끓다가

마분지곽 위로 보글보글 기어오르던

그런 노란 것들이

(생명의 중심은 그렇게 따스한 것)

살아서 즐겁다고 꼬물거리던 모습이

살아서 불행하다고 늘상 암송카지노 쿠폰 있던

나의 눈에 문득 눈물처럼 다가와 고이고


그렇다면 나는 여태 부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을까,

아아, 얼마나 슬픈가,

차가운 냉장칸 맨 윗줄에서

달걀껍질 속의 흰자위와 노른자위는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실에서

입원비 걱정을 카지노 쿠폰 있는 우리 가난한 형제들처럼

흰자위와 노른자위도

무슨 그런 절망의 의논들을 카지노 쿠폰 있을 것인가


사계절 전천후 냉장고

하얀 문을 조용히 열면

추운 달걀들의 속삭임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엄마 안아줘요 따스한 품속에

어미닭에 안기지 못카지노 쿠폰 만 달걀들처럼

희망소비자 가격보다 더 싸게 팔려온

너희들처럼

나도 역시 여권이 분실된 사람

희망의 온도가 차츰 내려갈 때

오히려 절망은 조용카지노 쿠폰 초연해지는 것 같지


언제부턴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상에는, 그리고 인생에는 결코 지나가지 않는 일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은 견딜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라는 잠언 역시 믿지 않는다. 인간이 견디지 못하는 시련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렇게 잔인한 삶의 이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런 사무치는 고통을 당한 사람은 어찌해야 생을 부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의 답이 되어준 것은 ‘받아들임’이었다. 절망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부둥켜안고 거대한 산을 올라야 한다는 가르침 말이다. 어차피 살기 아니면 죽기라면, 시지프스가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붙잡아 밀어 올리듯, 절망을 인정하는 일만이 죽음 직전에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의지라고 생각해 왔다.


시의 마지막 두 행은 내 의견에 찬성하는 말처럼 들린다. ‘희망의 온도가 내려갈 때 오히려 절망은 조용카지노 쿠폰 초연해지는 것 같지.’ 시끄럽고 요란한 절망이 아닌 조용하고 초연한 절망이라면,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릴 힘이 날지도 모른다.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
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 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마지막 행이매일 가슴속에 메아리친다.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닦아주는’ 광경을 그려보고 상상해 본다. 내가 만들어 낸 ‘어둠’의 형상은 푸근카지노 쿠폰 둥그스름한 아기곰이다. 검고 보드랍고 푹신한 털을 가진 아기곰이 엉금엉금 기어와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내 얼굴을 닦아준다.


빛이 아닌 어둠이, 성큼성큼 걸어와서가 아니라 엉금엉금 기어오다니. 그 납작 엎드린 위로의 방식에 나는 아랫목에 덥힌 이불로 몸을 감싼 듯한 온기를 느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