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을 예전부터 읽었던 카지노 가입 쿠폰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웃기고 재밌는 글 좀 써 봐.”, ”너 평소에 말발 좋으니까 작정하고 욕하는 것도 보고 싶어.”
아예 써본 적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내가 썼던 소설은 시트콤과 비슷한 형식으로 흘러갔다. 취업 준비를 하던 청춘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썼다. 당시에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가지고 마구잡이로 휘갈겨 써서 그런 지 스토리가 재밌고 문체가 흥미롭긴 했지만 한 번 웃고 말 글에 그쳤다. 대부분 분노가 범벅된 욕설이 낭자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대가리에 엽총을 꽂아놓은 게 분명했다.
쓸데없이 자아만 비대하고 무식한 새끼가 카지노 가입 쿠폰을 시전 했다. 인중을 개 때리고 싶어졌다.
인생이 너무 염병이라 소주로 수액 맞으며 살아가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런 씨발.
이걸 어떻게 여기서 쓸까. 지금은 뭐라도 쓴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유머는 대부분 말로 연결된다. 평소에 말이 많고 빠른 편에 다중이 같은 면이 있어서 첫인상이 ‘지나치게 밝고 성깔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보통 회의적인 면이 드러나거나 분노가 치밀 때 말이 술술 나온다. 욕까지 달면 금상첨화다. 이런 내가 고등학교 때 <바른말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2등을 한 건 아직도 미스터리다.
나는 태생적으로 남 웃기는 걸 좋아했다. 관심받는 것도 즐겼다. 특히 장난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별의별 사건이 많다. 초등학교 때는 포스터물감을 먹어본 적도 있었고(생각보다 달았다) 수업을 듣다가 옆 친구에게 귀신 사진을 보내서 놀라게 하기도 했고 성인이 된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 앞에서 요즘 슬램덩크에 빠졌다며 덩크슛을 보여주기도 카지노 가입 쿠폰.
이러니 사람을 미워하기가 더 어렵다. 우스갯소리로 한 친구는 내가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면 이제 세상이 망할 때가 된 거라고 한 적도 있다. 물론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이상하고 멋대로인 사람에게 웃어야 할 때나 뉴스에서 약자를 공격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때면 인간이 제일 혐오스러워진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어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낯을 가리지 않는다. 초면인 사람과 대화 몇 마디 섞다가 함께 술을 마시거나 재미를 연출하기 위해 억지웃음을 쥐어짜서 주접을 떨기도 한다.(그렇다고 모두에게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냥 허허실실 웃는 사람은 또 못 된다. 쌍둥이라는 특수한 형제 관계 때문인지 남들에 비해 외로움을 느끼는 게 현저히 적지만 대신 우울함은 높은 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려서 좌절하고 낙심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어도 나를 보러 와준 친구들과 댄스파티를 열고 밤늦게까지 졸업앨범을 보며 깔깔거렸다. 요란 떠는 일상이라 안심한 적이 훨씬 많다. 인생이 잿빛이라서 재미도 웃음도 없이 산다면 당장 혀 깨물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난과 웃음을 좋아하는 나는 아빠의 예민함을 물려받아서 그런 지 사사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카지노 가입 쿠폰. 게다가 분노를 기본값으로 탑재하고 살아서 다혈질이다. 분노 조절을 못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도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억지로 꾹 누르고 인내하다가 참을 인 세 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리는 편이다. 이때 내가 사용한 방식은 욕설이다. 학창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스무 살이 넘으면 자연스레 욕하는 것도 줄어들 줄 알았더니 사회가 너무 개 같아서 오히려 늘어버렸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니까 여기서는 그냥 웃기로 해야겠다.
이런 나를 보고 언니는 ‘부트졸로키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작지만 너무 매워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고추로 유명한데 그게 작지만 불 같은 나의 은유였던 것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보다 부트졸로키아라고 말하는 게 직관적이라 마음이 든다. 어쨌든 긍정적이고 매사에 지랄맞고 장난도 웃음도 많은 나는 우울함과 슬픔과 기쁨과 증오와 끝나지 않는 게임을 카지노 가입 쿠폰. 내가 관짝에 들어가야 이 짓이 마무리될 테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조심성 없고 심하게 낙관적이고 지랄 맞고 좀 더 나아가면 폭력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근데 아니라고 반박은 못하겠다. 확실히 하자면 난 폭력만큼은 극도로 꺼린다. 그 외에 다른 점은 긍정하는 편이다. 긴장되는 대학원 면접 때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해 그냥 빨리 끝내고 술이나 마시고 싶다며 실실 웃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에 발을 찧으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온갖 짜증을 부리고, 내가 친 개그에 무반응이면 자존심 상해하니 말 다했다. 머리가 꽃밭이라서 그런지 혹은 식견이 반토막 나서 그런 지는 몰라도 최대한 낙천적인 면을 지키려고 카지노 가입 쿠폰.
욕설에 대한 건 할 말이 많다. 욕설이 좋은 건 아니지만 딱히 나쁘지도 않다.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할 때 욕설만큼 탁월한 방법도 없다. 귀에 꽂히는 말을 할 때면 높낮이와 표정과 입술의 모양도 한 몫한다. 자주 하면 듣기 거북하지만 적절하게 배치하면 유머와 스트레스 해소로 통한다. 예를 들어 이별할 때 백지영이나 이소라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아싸리 신난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를 듣고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를 하자는 마인드랄까. 같은 맥락으로 내가 애정하는 갤러리 속 폴더 중 하나는 <인생이 빡칠 때 쓰는 짤이다. 나는 웃음을 전달하는 것만큼 모으는 것도 좋아하기에 이 행위를 즐긴다. 여기서도 욕설의 짜릿함을 느낀다.
대개 나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다정함과 우울함을 발췌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를 진중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인식카지노 가입 쿠폰. 실제로 만나면 예상과는 달라서 놀라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반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한 사람은 내가 활발하고 장난기가 넘치는 사람이라 인식카지노 가입 쿠폰. 그들이 내 글을 읽으면 나의 양면성에 놀라겠지. 어찌 되었건 두 가지 모습 전부 나인 건 맞다. 아수라백작처럼 사는 건 익숙하다. 사실 나만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기에 딱히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
주야장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고 보니 알맹이가 전혀 없어 보인다. 내가 이런 글을 쓴 목적은 단 하나다. 나는 마냥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지난날의 기록 중에서 슬픈 에피소드가 많긴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배꼽이 상어 이빨만큼 빠져도 다시 생길 수준의 재밌고 활달한 이야기도 넘쳐난다. 모욕적인 일을 겪었음에도 피해자로만 남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지내는 것과 다름없다. 세상에 줘 패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지만, 그걸 절제하며 나름 고상하고 명랑하게 지내려고 노력카지노 가입 쿠폰. 난 경찰서에 가고 싶지 않고 남은 인생을 타인 엿 먹이는 데에 할애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보다 소중한 사람이, 일이, 경험이 훨씬 많다. 이번 생의 목적은 이 모든 걸 지키고 일찍 죽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 연민을 밧줄 삼아 스스로의 목을 조르지 않으려 카지노 가입 쿠폰. 아픈 건 지긋지긋하다. 아팠던 시절에게 일부러 다가가고 눈에 보이는 활자로 남기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단단해졌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그 기록들도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역사이고 내가 죽더라도 내가 쓴 글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기에 일부러 남기는 것이다.
대신 울적한 시기를 쓴다고 해서 상처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도 말하고 싶다.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들은 의연하다. 유쾌하고 소소한 재미를 잡아서 추억으로 희석카지노 가입 쿠폰. ‘웃음으로 승화카지노 가입 쿠폰’는 말처럼 재치 있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오늘도 피곤하고 힘들어서 퇴근길에 혼자 쌍욕을 했다. 후련함을 느끼고 집에 와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내가 가진 낙천을 땅바닥에 버리지 않고 싶다. 대충이라도 웃고 싶다. 내 스스로 그렇게 못카지노 가입 쿠폰면,
“어쩌려고, 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