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사이 에피소드 6. 군기카지노 게임이 싫은 엄마와, 카지노 게임이 되고 싶은 딸
새 학기가 주는 설렘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새 교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새로 산 필기구, 새 책, 그리고 새로운 반장을 뽑는 임원선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대부분이 앞다투어 반장이 되고 싶어 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반장의 역할이 그저 담임선생님의 심부름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대부분이 굳이 나서서 고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딸은 초등학교 시절 한 번도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어본 적이 없다. (참고로 요즘은 초등학교 내에 반장이 없거나 돌아가면서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저학년 시절 선거에 나가긴 했으나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이 자기 자신밖에 없었던 그 치욕스러운 경험 때문에 이후로는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몰라도 우선은 손부터 들기도 하고,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기도 하고, 솔직한 자신의 감상평을 큰소리로 발표하는 적극적인 여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질서와 규범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공공질서나 규칙은 과할 정도로 잘 지킨다.) 앞장서서 활동하고 싶어 했던 딸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봉인했던 카지노 게임의 영광을 다시 실현시키고자 계획을 세운다.
먼저, 담임선생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휴대폰 보관함 열쇠관리자가 되길 자처하고, (*등교 시 휴대폰을 걷어서 상자에 보관하고 하교 시 관리자가 열어주면 가져간다.) 명찰비 7천 원을 현금으로 가져오지 못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선생님에게는 밝고 상냥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딸은 과연 이번엔 카지노 게임이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또래에 비해 덩치도 컸고, 목소리도 컸다. 한 번은 5살 즈음 동네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끌고 옆동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데리고 갔는데, 동네 아줌마들은 아이가 실종됐다며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저녁즈음 모두를 데리고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지만 엄마들 사이에서는 내가 기피대상이 되었다.) 당시에는 개구리 소년처럼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많았기에 어른들이 우려했을만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놀았다. (이상하게 아이들이 따랐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한 나는 매년 반장이나 회장을 맡았다. (당시에는 한 반에 50명이었기에 반장과 부반장, 회장과 부회장까지 총 6명의 학급임원을 뽑았다.) 반장선거에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목소리였다. 50명이 바글대는 교실에서 큰 목소리로 또랑또랑하게 공약을 설명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뽑아주었다. 거기에 언니를 연상케 하는 큰 키도 한몫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 내내 학급 임원을 맡았던 나는 그 자리가 얼마나 귀찮은지 체감했고,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의 부장을 맡아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중학교 시절 나는 한문부장이었고,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술부장과 체육부장을 도맡았다.) 입시를 앞에 두고 관련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이었다. (나는 미술입시로 대학을 갔다.)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나는 늘 항상 군기카지노 게임이었다. 1학년 때는 과대로선배들 호출에 동기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했고, 2학년 때는 학과 부회장으로 1학년 신입생들을 관리했다. 3학년 때는 소모임 동아리 회장으로 동아리에 속한 선후배를 결속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고, 4학년 때는 졸업전시 위원장으로 그 소임을 다했다. 매번 직함을 맡는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구성원들에게 욕은 바가지로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한 이런저런 카지노 게임을 맡은 탓에 얼굴 아는 사람은 많아져서 괜히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일도 잦았다. 그 시절, 군기카지노 게임을 유지하려고 알바를 뛴 적도 많았다.
2025년 현재, 나는 우리 집의 군기카지노 게임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지칭한 적이 없고, 자처한 적도 없지만 내가 바라보기만 해도 모두 시선을 바닥에 떨군다. (그저 쳐다보았을 뿐인데..) 모두들 알고 있는 눈치다. 내가 왜 쳐다보고 있는지와 자신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말이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그냥 곁에 두고 있거나, 숙제할 시간에 만화책을 보고 있을 때...)
하지만 이제 그만 '카지노 게임'의 자리를 내려놓고 싶다. 솔직히 말해 그 자리는 매우 피곤한 자리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라는 이름도 부담스럽다. 아이의 잘못은 곧 '엄마의 잘못'이기에 아이들을 늘 감시해야 하고, 다그쳐야 한다. 그래서 엄마들이 그렇게 괴팍하게 변하고 목소리가 커지는 건 아닐까? 타인의 시선 때문에?
아직도 들떠 있는 우리 딸은 반장선거에 나가서 발표할 공약을 정리하고 있다. 부디 반장이 되어 그 왕관의 무게를 경험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딸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