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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엄마 Apr 06. 2025

모두 카지노 게임! 한국인 예찬(禮讚)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 백남준의 절친인 독일의 전위 예술가 요셉 보이스(Jeseph Beuys, 1921~1986)가 한 말이다. 그는 1960~70년대 유럽과 미국을 풍미한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주요 멤버였다.


요셉 보이스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전위 예술을 실천했다. 그는 삶을 혁신하는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주장했다. “삶은 빵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삶이 하나의 예술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플럭서스 예술가 로베르 필리우(Robert Fillou, 1926~1987)는 ‘나는 예술가’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누드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의 몸과 존재 자체를 ‘예술품’으로 선언하는 행위였다. 숫한 플럭서스 운동가들의 철학과 실천 행위는 오늘날 현대 문화에 녹아 있다.


이제 2025년 감자 엄마의 눈에는 “모든 한국인은 예술가이다.” 왜냐고? 한국인들은 ‘멋’을 장착했다. ‘멋’이란 분위기나 감각으로 느껴지는 ‘매력(魅力)’이다. 프랑스어로는 ‘샤름(charme)’이다. 샤름(매혹, 매력)의 어원은 ‘주술(呪術)’이다. 끌어당겨서 홀리고 변화시키는 힘 말이다. 예술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감자 엄마의 눈엔 그저 모든 한국인이 ‘멋’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대도시 번잡한 광장의 군중 속, 아니 소도시의 한적한 마을을 그저 ‘플라네’(flâner, 느긋하게 거닐다) 해보라. 지나치는 남녀노소 모두 ‘멋’ 있다. 그들은 몸으로 현대 미디어를 보여준다. 각자 개성 있게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가방, 소품, 100명이면 100명이 다 들고 있는 핸드폰이라는 첨단 미디어, 그들의 몸 전체가 움직이는 트렌드이다. 움직이는 예술이다. 그들은 내게 활력을 준다. 흘러가는 지금의 세계를 보여준다. 역동적인 미래를 예견케 한다.


홀로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먹고 마시는 청년들. 퍽퍽한 삶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개와 자유가 있다. 책방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추구하고 있다. 헬스클럽에 다녀오는 엄마와 건장한 아들. 저런 든든한 아들과 운동을 함께 하며 살다니 세상이 다 그녀의 것이리라. 종일 일하는 근로자들. 긴장감과 생기가 풍겨 나온다. 영성(靈性)을 추구하며 교회로 성당으로 사찰로 이동하는 종교적인 민족, 나라를 혼란으로 이끈 전 대통령을 기어코탄핵시킨 힘센 국민, 모두 ‘멋’을 장착한 ‘예술가’들이다.


한국인은 대단히 세련된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금 높은 미적 차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는 삶의 예술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이고,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예술이 되었다. 우리는 내일 또 무엇을 창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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