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카지노 쿠폰를 잃었을까- 강준만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한국 카지노 쿠폰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 꼬집은 책이다. 2000년에 발간된 저서이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뭣이 바뀌었을까? 문명은 진화해도 인간은 어리석음을 반복한다고, 현재 한국사회 역시 이면에는 같은 그림자가 짙다.
카지노 쿠폰가 건강에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자도 밝혔지만, 옳은 생각을 지키기 위한 카지노 쿠폰는 자신에게 굉장히 이롭다. 물론 조직에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다. 밥벌이와 상관이 있을 테니깐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인간에게 심하게 농축돼 쌓이는 인지부조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욱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사실.
강 교수는 2000년대 당시 한국인들이 카지노 쿠폰를 잃은 까닭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추가로 기자의 생각을 덧붙여본다.
첫 번째 원죄의식. 아주 쓸모없는 인식이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죄의식과 일맥상통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할라치면 "넌 군사독재시절 뭐했나?", "침묵하다가 세상 좋아지니 설치냐?", 다시 말해 그 말할 자격이 있냐고 누군가 물을 것만 같은 무의식의 발로. 원죄가 존재한다고 무엇을 해도 죄가 스며들어있다고 '정죄'를 기본으로 깔고 진리를 쫓는 이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뒤로는 헌금이라는 밥그릇을 채우려는 교회목사들과 같은 논리다. 실제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 그걸 누가 무의식에 심어 놓았는가는 한번 생각해 볼 일.
두 번째 공범의식. 이 사회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힘으로 쥐고 있다. 그들에게 자원이 흐르는 줄 알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두머리가 '돼지'라고 조직 구성원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까 봐 주변에서 제기하는 옳은 소리에도 의례 눈치를 준다.
냉소주의 "너나 해라".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내 몸 부재하기도 힘들다는 태도. 공적인 카지노 쿠폰 따위는 사치스러우니 너나 잘 해보라는 것. 내 밥그릇 지키기도 힘든 세상에서 옳은 일에는 에너지 보태기 싫다는 심보. 사회가 연결됐다는 기본 전제조차 이해 못 하는 '고립'된 인간상의 발현이다. 고립은 심한 스트레스를 주며, 심하면 우울증 나아가 치매의 직원이라는 사실을.
넷째는 '보신주의'다. 주로 카지노 쿠폰에게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 비판을 무난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실명 비판은 절대 금기다. 추상적으로 싸잡아 두루뭉술하게 말이다. 실명비판은 천박하고 상스럽다고 해야 동시에 자신의 지적수준이 세련돼지나보다. 비판은 명확하고, 정조준해야 효과가 있다. 화살을 왜 쏘는가? 10점 만점에 10점이 목표 아닌가? 기업을 비판하면 브랜드를 공개해야 하듯, 사람을 비판하려거든 당연히 이름을 공개해야 하는 것. 그게 아니면 뜨끈하게 보신이나 하는 게 낫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저자는 이같이 카지노 쿠폰 못 하는 한국인들의 행태가 자연스럽게 문화로 정착돼 버렸다고 말한다.
시민단체도 카지노 쿠폰한다. 집단으로 말이다. 이런 카지노 쿠폰는 전략적이다. 집단의 이익이 걸려있기에 언론의 눈치를 본다. 이들은 "내가 중심이 되겠다"고 한다.
한국 카지노 쿠폰의 탐욕스러운 '내 이름 팔기'라는 매명주의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지성계에서 대표되고 있는 좌파들에 대한 지적. 이들은 비판으로 얻은 명성을 자신들의 입신 출세를 위해 사용한다. 명쾌하게 네이밍된다. '거세된 진보'
상징과 장식으로 전락한 진보. 불필요한 갈등과 투쟁으로 비효율성과 비생산성만 양산한다. '천민자본주의라는 푸줏간에 걸린 썩은 고기들'
카지노 쿠폰, 소위 엘리트라는 것은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일 뿐이다. 자기 집단을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 가진 지식을 왜곡시키다 보니 결국 높아지려는 욕망으로 바뀌어버렸고, 상대적으로 다른 이를 아래로 떨어뜨린 것. 인간이 만들 것 중에 원래부터 존귀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역설한다. 집단주의와 파시즘. 또 달리 설명하자면 인간이 가진 욕망 중 큰 것 하나가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인데 동시에 타인을 매도하려는 죄악까지 탑재한다.
무엇보다 언론이 사회적 감시와 견제의 그물에서 벗어나 있다는 문제제기를 강력하게 펼친다. 우리 언론엔 수많은 성역과 금기가 있다. 이를 깨기에는, 상당히 피곤하다. 동시에 자기검열이 들어간다. 이어지는 무사안일주의.
신문사 상호 간 비판 묵시적으로 금기시돼 있다. '그 나물에 그 밥'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네 번째 힘은 '언론'이다. 앞 세 가지를 감시해야 할 위치에 있는 역할자들이 상당히 아프다.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이 심각한가 보다. 서로 연결돼 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강 교수는 '침묵의 카르텔'이라 이름 짓고 100% 합의 가능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문화에도 일정한 역할이 있다. 잡지 역시 신문이라는 기류에 편승하고 말았는데, 우리 문화는 내부고발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 조직 내 구성원은 모두 ‘마피아’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강 교수는 자신을 빗대어. 옳은 말을 하는 누군가를 죽이진 못하니.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고 자신을 비판하는 몇몇 필자들을 에둘러 지켜본다. 이들은 샤덴프로이데를 작동해야 자신이 양심적인 사람으로 복원 가능하다. 요상한 심리다.
고인 물은 썩는다. 탄압 후 민주화 세대는 탄압이 사라지면서 싸워야 할 대상을 잃었고 이제는 평화로운 공간에서 투쟁해야 하는 문제가 남게 됐다. 누구나 인지하듯 이들은 수구 기득이 됐다. 이대로가 좋다는 것. 당연히 카지노 쿠폰할 이유가 없다.
강조하는바, 보다 개인적인 작게 하는 카지노 쿠폰가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게 주장하는 핵심이다. 국민들에게는 기만적인 희망보다 정직한 절망이 더 낫다. 언어는 상스러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