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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17. 2025

UN 무료 카지노 게임권리협약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약 6억 5천여 명장애를 가지고 산다고 한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증가와 노령화,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등으로 인해 장애 인구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의 삶이란 가장 많은 불이익을 받고 사는 집단이라 할 만큼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적어도 내가 남편을 통해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과장된 표현은 아닌 듯하다.

그나마도 그들 스스로 보호받기 위해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비무료 카지노 게임들의 뜻이 모여 각 나라마다무료 카지노 게임을 위한 법률이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미국에서 1990년 제정된 '무료 카지노 게임법(American Disabilities Act: ADA), 1995년 영국에서 제정된 무료 카지노 게임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DDA), 독일의 무료 카지노 게임 평등법(BGG 2002), 호주의 '장애차별금지법(DDA 1992), 가까운 일본에서는 1993년 '심신장해자대책기본법'을 '장해자기본법'으로 개정한 법률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무료 카지노 게임 복지법'으로 시작하여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2008년 4월 11일 '무료 카지노 게임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힘없는 소수집단인 그들을 범세계적인 거대집단으로 뭉쳐 보다 더 강력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 2001년 제56차 유엔총회에서 멕시코 대통령의 제안으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2년 7월과 그 이듬해 6월 두 차례의 회의를 거치면서 무료 카지노 게임 협약 초안을 만들기 위한 실무 그룹을 꾸리기로 한다.

실무그룹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27개국 정부 대표와 비정부기구 대표 12명 등 40명으로 구성되었고, 각국의 초안은 '아동, 여성 등 기존 인권협약을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도 포괄적으로 적용하자'라는 의견과 '이동권 등 무료 카지노 게임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자'는 안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러한 결과 2006년 12월 13일 유엔총회 가입국 192개국의 만장일치로 '무료 카지노 게임 권리협약'이 채택되었다.

협약서 제1조에는 '무료 카지노 게임은 다양한 저해요인과의 상호작용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완전하고 실질적인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 손상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라고 규정하며 협약을 제정하게 된 배경, 취지, 목적, 기본원칙 등을 선언한 전문 25개, 여성무료 카지노 게임과 장애아동의 권리보호,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이동권과 문화접근권 보장, 교육권과 건강권 및 일할 권리 등 무료 카지노 게임의 생활영역에서의 권익보장에 관한 내용을 담은 본문 50개의 조항과 18개 조항의 선택의정서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이 협약서는 무료 카지노 게임 개인만의 복지적 차원 또는 정책적 차원에서 프로그램 대상으로서의 도구가 아닌 비무료 카지노 게임과 동등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모든 권리의 소유자이며 주체자로 선언한다.

이전에는 각국에서 벌어지는 산발적인 선언에 그쳤다면 소수의 불이익 집단인 무료 카지노 게임을 국제사회 차원에서 그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각종 불공평과 차별을 벗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전 세계 연합적 차원에서 채택된 것이다.

이러한 사안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실무단과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제7차 UN무료 카지노 게임권리협약 특별위원회'에는 외교통상부, 보건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의 관계부처와 공무원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참석하였는데 그중 한 명이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인 이익섭 교수가 이들과 함께 했다.


이익섭 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쯤 망막염을 앓은 후, 눈에 구름이 낀 듯 점점 희미해져 가다 5학년 무렵부터 시력을 완전히 잃어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이 되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던 그를 위해 그의 어머니는 맹인이 된 아들보다 먼저 점자를 배워 미국과 일본에서 성공한 무료 카지노 게임의 사례집을 읽어주며그를 빛의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서울맹학교 7기 졸업생인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75년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 당시 우리나라 대학입학 자격 중 각 대학에서 제시한 조건은 교정시력이 0.3 이상인 학생들에게만 대학입학 지원자격을 허락했다. 실제적으로 전맹인은 대학에 갈 수 없는 그런 구조였다. 그나마 연세대 신학과만 그러한 제한이 없어 학력고사에 응시하여 당당하게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대학 후반기 음성나병환자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의 소명을 찾게 된다. 신학과에서 사회사업학과 개설을 추진하며 교수들이 그에게 사회사업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에 진로를 바꾸었다.

국내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시카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한다.

그리고 그는 1993년 1월, 연세대학교 1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선정되었고, 학과장을 거쳐 2005년에는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며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무료 카지노 게임 및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을 위한 복지정책과 사회적 인식에 대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전자납본제도'(출판사들이 국내 출판물의 납본 기관으로 지정된 국립중앙도서관에 관련 전자 파일을 제공하여 텍스트를 제도적으로 공급하는 방법)를 국가적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저작권 문제 및 텍스트 파일의 부적절한 사용이나 악용방지를 위한 기술적인 방안과 출판업자에게 드는 비용 등의 합의를 국가가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또한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을 위한 일반 서적은 많이 준비되어 있지만 전문분야와 첨단분야에 관한 서적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학위를 받기 위해 봐야 하는 전문서적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미국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러한 현실에 대해 혼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됐다... 어렵겠구나, 다음에 해보자'며 지나가버리지만 미국에선 동료와 사회, NGO, 정부 등 갖가지 기관에서 무료 카지노 게임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아주 작은 문제라도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곧바로 하는 등 자신이 7년간의 미국 유학 기간 동안 약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이익섭 교수를 돕는 일에 관여했다고 말한다.

특히 '좋은 일을 제대로 잘 하자'라는 취지에 따라 봉사자가 자료를 읽을 때면 그가 또박또박 잘 낭독하고 있는지 옆에서 검증하는 '프루프 리딩' 과정을 반드시 거치며 공급자 중심의 정보제공이 아닌 수급자 중심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도 했다.

예를 들어 미 의회도서관에 23종의 점자 잡지가 점역이 되어 있는데 그중 '플레이보이'지까지 사진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점역이 되어있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안 보이는 사람들인데 이런 것까지 점역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비무료 카지노 게임 중심의 생각이 얼마나 공급자 중심의 생각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은 불쌍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닌 '당연한 권리'라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무료 카지노 게임을 보는 시선과 시설에는 '이만큼 혜택을 주었으니 고마워하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경우가 많다.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보다 비무료 카지노 게임이 베풀어주는 큰 혜택이라는 생각에 굽신굽신 하며 있으면 받고, 없으면 못 받는 일상을 살아온 게 오래전부터 다.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이기는 하나 이익섭 교수와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달라진 세상을 경험하는 것일 테다.

그는 단순히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만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무료 카지노 게임을 아울러 한국 DPI(무료 카지노 게임연맹) 회장을 맡으며2001년도부터 DPI 동북아지역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2007년에는 무료 카지노 게임연맹 세계평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같은 해 세계무료 카지노 게임한국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무료 카지노 게임단체 총 연합회 상임대표를 역임한 그는 국제무료 카지노 게임권리협약의 초안부터 유엔에서의 채택, 비준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장애여성의 권리를 다룬 6조(무료 카지노 게임은 여성으로서의 차별, 무료 카지노 게임으로서의 차별 등 2중 차별을 겪게 된다. 2013~2017년 동안 발생한 무료 카지노 게임 성범죄는 4230건이며 4명 중 1명이 20세 이하다.)와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참여를 다룬 19조, 무료 카지노 게임 이동권을 다룬 20조를 독립조항으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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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모든 무료 카지노 게임의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동을 해 오며 '무료 카지노 게임계의 큰 별'이라 불렸던 그가2010년 1월 2일 간암으로 만 5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된다.


생각해 보면 많은 것들이 달라져 간다. 불편한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그나마도 활동지원사 제도, 복지콜과 나비콜의 이동수단에 대한 변화, 점자표기, 무료 카지노 게임 일자리 확대 등....

이익섭 교수와도 같은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학자이면서도 연구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한국소아마비협회, 한국무료 카지노 게임재활협회 이사로 활동하는 등학자와 운동가의 일을 양립했으며 무료 카지노 게임이 겪는 불이익과 불편을 단순히 복지가 아닌 인권차원에서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정치적 수단으로서 복지정책을 베풀어준다는 의미가 아닌 무료 카지노 게임이기 이전에 인격을 가진 비무료 카지노 게임과 동등한 인간임을 시사한다.

그는국제무료 카지노 게임권리협약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지병으로 불편한 몸이었지만방콕, 북경, 뉴욕을 오가며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학자로서 강단에 서고, 또 현장에 나가 무료 카지노 게임 인권 개선에 대한 현장 일을 함께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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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악화되었을 때는 제자들에게 '연구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무료 카지노 게임 현장에 함께 있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국제적으로 한국 무료 카지노 게임계의 위상을 널리 알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그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살아생전2008년에는 '파라다이스상' 사회복지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고, 고인이 된 2010년 4월 20일 무료 카지노 게임의 날에는 30주년을 맞아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국민훈장 황조근정훈장을 추서 했다.


지난 1편의 글 중 28화 '보이지도 들리지도 말할 수도 없어요'라는 글을 쓰기 위해 라파엘의 집 초대 원장이었던 정지훈 원장님을 뵈러 갔을 때 만약 글을 쓰게 된다면 '이익섭 교수'에 대한 글을 써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물으셨다.

자신이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 유일한 인물이자 모교의 선배로서 그의 부탁이라면 열일을 제쳐 놓고라도 새벽이라도 달려가곤 했단다.

한 번도 그의 말을 거슬러본 적이 없을 만큼 존경하는 선배이자 참다운 인권운동가며 다른 유명한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은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이익섭 선배는 비무료 카지노 게임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위한 일을 많이 했던 인물이기에 그의 이야기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며 따로 시간을 내어 줄 테니 다시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라며 명함을 내미셨다.

남편보다 16년이나 선배인 데다 일찍 돌아가셔서 남편도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무료 카지노 게임계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또 시각무료 카지노 게임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얼마나 많이 개선이 되었을까?

자신은 한치도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빛을 비추어주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병신, 귀머거리, 불구자'라는 호칭을 듣고 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사람들이 아닌가.....

무료 카지노 게임은 결코 세상에 짐이 되는 '병신, 불구자'가 아니라 이들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동등한 인간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서로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마주할 때면회피하지 않고,편견이라는 옷을 벗고 스스럼 없이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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