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글, 그림 사노요코, 번역 황진희
이번 그림책을 다 읽으니 자연스레 라캉의 텍스트가 떠올랐습니다. 학부 시절에 배웠던 아주 기초적인 정신분석학 용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더군요. 혹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이가 있지 않을까 싶어 사노 요코와 자크 라캉의 이름을 함께 검색해 보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적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하나 있었으나 사노 요코가 라캉의 텍스트를 감명 깊게 읽었다던가 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네요. 아쉽습니다.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를 라캉의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상징계에 입장한’ 혹은 ‘(대)타자의 존재를 인식한’ 자아입니다. 그림책은 상징계에 차마 들어서기 전의 존재, 그러니까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습부터 시작하죠. 아직 언어의 세계에 발도 들이지 않은 아이에게 별도, 태양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하니 그 어떤 존재나 행위도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한 여자아이를 ‘인식’하고 아이의 엄마가 반창고를 발라주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후 자신도 그 반창고, 즉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되죠. 아이는 이 시점부터 비로소 상징계 속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상징계 안으로 들어온 이후 아이에게는 언어가 주어집니다. 아와 피아를 구별하고, 차이와 의미가 생성되죠. 그리고 이어 욕망이 발생합니다. 엄마에게 아프다고 울고, 배고프다고 보채며 가려움을 느끼고 웃음도 알게 되지요. 심지어는 자신의 반창고가 더 크다며 타인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감정도 배우게 됩니다. 지극히 라캉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러나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는 라캉의 상징계 속 자아와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건 바로 아이가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사노 요코는 언어 이전의 인간에게 마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심지어 언어 속으로 들어오기를 결정하는 것도 아이 본인이죠.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져서 스스로 자신의 나체를 가릴 옷을 입고 ‘엄마’를 외치는 모습은 꽤나 주체적으로 보입니다. 물론 태어난 아이의 결정이 오롯이 자신의 결정이었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죠.
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얼마나 라캉적인 텍스트인지 따지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어의 세계로 입장한 이후의 삶이란 과연 어떠한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태어난 이후의 아이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꽤나 따스한 삶을 사는 것 같네요. 그러나 전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 과연 피아 식별이 가능해진, 아니 아주 중요해진 다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혹은 여러분의 (상징계 속) 삶은 어떤 것인가요? 책을 두르고 있는 띠지의 홍보 문구, ‘탄생의 의미, 삶의 철학’이라는 말이 꽤나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