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문학작품을 기웃거리기 시작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 등급이 꽤 높았었고 꾸준히 유지해왔던지라 나는 내가 책 깨나 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문학인들 사이에 속해있다 보면 나는 햇병아리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
김승옥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이번 독서모임이 아니면 알지 못한 채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유난히 한국작가들에 대해, 특히 2000년도 이전에 활동한 작가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내 머릿속에 완벽히 그려지지 않으면, 그 시대의 상이나 배경이 완벽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카지노 쿠폰 읽어도 와닿지가 않는지라 한국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에는 더더욱 손이 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카지노 쿠폰」이라는 카지노 쿠폰만 해도 그렇다. 1964년에 발표된 이 카지노 쿠폰은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경제적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시기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는다 하더라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호하게 느껴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모호하긴 커녕 굉장히 명확하다는 생각이…?)
전쟁 이후 혼란스러웠던 사회가 조금씩 안정되긴 했지만, 동시에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개인들이 느꼈던 정서적인 불안정감과 소외감. 도시와 지방의 격차와 물질만능주의, 성공지향적 가치관들이 작품에서 느껴졌지만, 현대인의 내면적인 고독과 불안, 위선을 느끼는 동시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게 정확히 이것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은 찝찝하게 남아있었다. (뭐 물론 이런 의문 자체가 문학을 읽는 즐거움의 하나이긴 하지만.)
내용요약 :::
주인공 '나'는 성공한 도시의 직장이지만, 고향인 카지노 쿠폰에 돌아오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카지노 쿠폰이라는 안개 낀 공간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비현실적인 곳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 현실에 순응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성공한 사회인이지만 내면에 가득 찬 공허함과 자기 기만이 있는 '나'의 캐릭터를 통해 인간 내면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만들어낸 도시인 '카지노 쿠폰' 그리고 카지노 쿠폰의 안개를 통해 주인공들의 모호한 내면 상태, 현실도피적인 심리를 상징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주인공이 보여준 자신의 불안과 고독 그 섬세한 표현들을 뒤로한 채 결국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위선을 택하는 장면에서 나도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 카지노 쿠폰이었다. (하지만 반대의 결말이었다면 뻔하다는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김승옥 작가 :::
독서모임에서 김승옥 작가는 어쩌면 하나의 마케팅처럼 과한 인정을 받았던 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민음사 「카지노 쿠폰」 속에 같이 수록된 다른 소설들을 읽어 보아도 김승옥 작가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당시 한국문학에서 보기 어려웠던 굉장히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라 센세이션 했다고.) 일상적인 장면의 묘사나,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정말 훔쳐 오고 싶을 정도로 뛰어난 작가인듯하다.
「카지노 쿠폰」 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 불안 같은 감정을 김승옥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내면 심리 묘사로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고, 한국 현대문학의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는 이 작품을 읽어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속 문장들
카지노 쿠폰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카지노 쿠폰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카지노 쿠폰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카지노 쿠폰의 안개, 카지노 쿠폰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카지노 쿠폰의 안개, 그것이 카지노 쿠폰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10-11페이지 (안개 묘사가 정말 좋았다..)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 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12
언젠가 여름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 조개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청각의 이미지가 시각의 이미지로 바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의 감각 속에서 일어나곤 했었던 것이다. 26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통금 사이렌이 불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요란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길었다. 모든 사물들이 모든 사고가 그 사이렌에 흡수되어 갔다. 마침내 이 세상에선 아무것도 없어져 버렸다. 사이렌만이 세상에 남아있었다. 그 소리도 마침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계속할 것 같았다. 그때 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으면서 꺾였고 길게 신음하며 사라져 갔다. 내 사고만이 다시 살아났다. 29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ㅡ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3
이 바닷가에서 보낸 1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아침의 백사장을 거니는 산보에서 느끼는 시간의 지루함과 낮잠에서 깨어나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느끼는 허전함과 깊은 밤에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서 쿵쿵 소리를 내며 급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밤바다의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의 그 안타까움, 그런 것들이 굴 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같은 단어 하나로 대신시켰던 것이다.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