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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May 09. 2025

22. 최악의 비극을 초래한 카지노 게임에게 빠져드는 이유

윌리엄 셰익스피어 <카지노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라 평가받는 셰익스피어. <햄릿은 그의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이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사느냐죽느냐’라는 대사,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 요릭의 해골과 카지노 게임의 독백 등이 익숙하고도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카지노 게임이 다른 작품들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데에는 주인공 카지노 게임의 영향이 크다. 카지노 게임은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카지노 게임형 인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상징적인 인물로, 오랜 시간 독자와 관객, 창작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의 우유부단함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햄릿이 클로디어스를 바로 죽여 버렸다면 그 외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왕실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찌어찌 포장되어 자신이 왕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망설임으로부터 기인한 모든 광기와 주변인들에 대한 모욕, 분노 유발 등이 얽히고설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렇게 모든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들어 버린 카지노 게임을, 관중은 어째서 미워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연민하고 사랑하게 되는 걸까.


'카지노 게임형 인간'은 흔히 우유부단한 사람을 가리키지만, 카지노 게임이란 인물 자체를 뜯어보면 '우유부단'이라는 사자성어가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의 뉘앙스와는 거리가 멀다. 덴마크 왕자인 카지노 게임은 명석하고 철학적이며 신체 능력도 뛰어난 완벽한 인간의 표상이다. 그렇기에 그는 신중하게 행동한다. 착각이나 환각일지도 모르는 유령의 말 몇 마디를 그대로 믿고 왕을 시해하겠다는 행동을 카지노 게임의 지성이 용납할리 없다. 그래서 그는 미친 척 연기를 하고 극단을 동원해 진실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한다. 심지어 죄를 자백하는 듯한 클로디어스의 기도를 엿듣고 나서도 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카지노 게임은 '회개하는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건 그가 천국으로 가게 도와주는 꼴'이라며 행동을 미루지만, 그 이면에는 모든 상황과 복수 자체에 대한 회의가 깔려있는 듯도 하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지성에 붙잡혀 고뇌하고 의심하며 행동하지 못한다.


그런 카지노 게임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행동하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와 대화 중 커튼 뒤에 숨은 폴로니어스를 클로디어스로 착각하고 칼로 찔러 죽인 것. 하나 이 장면에서 조차도 카지노 게임은 어머니와의 격정적인 대화 중 이성을 잃어가고 있던 데다가, 상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불확실함 속에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 그의 성격을 더 돋보이게 한다. 만약 커튼 뒤의 사람이 클로디어스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평소처럼 이성적인 상태였다면 카지노 게임은 일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카지노 게임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 결국 마지막 결투까지도 클로디어스와 레어티스의 음모에 이끌려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자신이 죽게 될 것을 확인한 직후 독이 묻은 칼날을 클로디어스에게 꽂아 넣는다.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명확하게 확인한 뒤에야 복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죽음에 대한 복수까지 포함하게 된 셈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카지노 게임이 쏟아내는 대사들 속에는 그의 내면에서 솟아나고 충돌하는 고차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이 가득하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점차 그 고매한 정신세계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그의 우유부단함 마저도 기꺼이 포용하기에 이른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이 아버지 선왕의 유령과 마주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이에 더해 <카지노 게임에는 관객이 주인공과 동일시되도록 하는 '모호성'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작품이 시작하자마자 실체가 없는 유령을 통해 반역의 전말을 알게 된다는 장면부터 관객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지 의심하게 된다. 애초에 카지노 게임이 자신의 아버지 유령을 보게 된 일 자체가 그의 우유부단함과 망설임, 확신이 부족한 상황으로부터 나타난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시해했다는 것이 카지노 게임의 망상이라는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 클로디어스의 독백이나 그가 카지노 게임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만일 모든 것이 카지노 게임의 망상이었다 할지라도 작품 전체가 주는 메시지는 큰 변화가 없다. 그렇다 보니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더 흐려진다.


또한 극 중 카지노 게임은 주변 사람들을 떠 보거나, 자신의 의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일부러 미친 척을 하는데, 그것이 정말 미친 척인지 미친 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전개된다. 이 역시 내용 해석에 관계없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같은 결론을 맺음으로써 무엇이 진실인지 끝내 판단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모호성은 극중극인 ‘곤자고의 암살’ 혹은 ‘쥐덫’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극의 내용에 현실을 섞어 넣어 연기하는 카지노 게임을 보고 있자면 어떤 것이 연기이고 실제인지 혼란스럽다. 게다가 작품 속 인물들이 극중극을 바라보는 시선과, 실제 관중이 <카지노 게임이라는 극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첩되면서, 전개되는 상황과 대사들이 관객들에게 다중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상황을 이해하고 진실을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진다. 이런 모호성을 통해 관객은 카지노 게임의 광증과 고뇌, 우유부단함을 직접 체험하고, 자연스럽게 카지노 게임이라는 캐릭터에 강하게 이입해 그를 연민하게 된다.


더욱이 작품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름만 언급되던, 카지노 게임의 안티테제인 행동가 포틴브라스가 카지노 게임의 죽음 직후 등장하면서 카지노 게임에 대한 연민은 극에 달한다. 카지노 게임의 처절한 고뇌를 비웃기라도 하듯 손쉽게 그의 자리를 차지하는 포틴브라스의 등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각이 앞서 행동하지 못함으로써 중요한 것을 상실했던 상처를 자극한다. 그러니 대다수의 관객은 무대 위에 죽어 누워 있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에서 실패하고 좌절해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의 비극에 더 깊이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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