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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Jan 02. 2025

4. 혼례

이해, 사랑, 죽음, 삶, 없음




시간이 흘렀다. 서로 없는 세상에서, 지연과 이정은 또 한 번 상실의 고통을 체감했다. 첫 번째 상실은 느닷없이 찾아와 서로를 서로 다른 세상으로 찢어내 버렸다. 하지만 두 번째 상실은 훨씬 더 터무니없었다. 죽음조차 이겨낸 관계를, 서로의 손으로 직접 찢어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연도, 카지노 게임 추천도, 상실의 아픔이 큰 만큼 화해의 비용이 두려웠다. 동떨어진 세계, 동떨어진 삶으로 인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따라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전으로 회복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너무나도 달랐던 그들의 근원과 결 때문에, 같은 세월, 같은 사건들을 겪는 중에도 전혀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살아왔을 거라는 가능성이었다.

지연은 고민했다. 어쩌면 서로 가까워진 그만큼, 시건방진 착각으로 서로를 대상화하는 괴수를 각자의 마음속에 키워왔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함으로써 남편을 두 번 죽이고 만 것일까. 죄책감은 그녀로 하여금 더욱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한편 이정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점, 끝내 죽고 난 뒤에도 그녀에게 도움 되지 못했다는 점, 더욱 최악인 점은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시기에 멋대로 ‘죽어 버렸다’는 점이었다. 무수한 귀책 사유들을 나열하며 그는 절망의 늪에 빠졌다. 차라리 자신이 완벽히 죽어 사라져 버렸다면, 그녀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렸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연과의 분열 이후 이정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번민 끝에 그는 수면 시간을 조절해 더욱 깊은 잠, 영면을 들기로 결심했다. 삶도,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그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휴식인 것 같았다. 고인답게 영면이라도 하는 편이 모든 번뇌로부터 해방될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그들을 약속했던 ‘혼례’를 한 달 앞둔 시점에 데려다 놓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책상 위 반듯하게 놓여 있는 웨딩 앨범이 지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사고로 떠난 뒤, 지연은 이 앨범을 치우지도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책상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은 그 위치가 마치 그녀를 향한 카지노 게임 추천의 애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녀는 앨범을 열고 낱장을 넘기며, 남편과 함께 보낸 세월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을까. 이토록 서로 다른 삶이 어떻게 한 길로 모여들 수 있었던 걸까. 이대로 우리는 영영 제 갈 길로 흩어지게 되고 마는 걸까.

끊임없이 복잡한 질문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기억 속 남편과 현재의 남편,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결국 컴퓨터의 한계로 무언가 중요한 부분이 누락되기라도 한 것일까.

‘중요한 부분’.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 ‘중요한 부분’ 때문에 셀 수 없는 차이점들을 결점으로 보는 대신, 서로의 손길로 애써 채워 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대체 그게 뭘까.

사진 속 카지노 게임 추천이 환하게 웃으며, 지연이 손에 들려준 오이 김밥을 와삭와삭 열심히도 씹어먹고 있었다.

지연은 단말기를 두드려 카지노 게임 추천을 불렀다. 하지만 그 시각, 카지노 게임 추천은 잠들어 있었고 여러 번 불러 보아도 그는 결국 응답하지 않았다. 잠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계속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지연의 분노는 걱정으로 변했다. 지연은 화면을 조작해 고인 인격 상담관을 호출했다.

그녀는 화면에 등장한 멀쑥한 남자에게 다급히 호소했다.

“혹시, 죽은 사람이 또 죽거나 다칠 수도 있나요?”

“그럴 리가요. 지금 차카지노 게임 추천 님은 숙면하고 계십니다.”

“원래 잠들어도 제가 호출하면 일어나게 되어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불러도 전혀 응답이 없는걸요.”

“신지연 님, 회사는 ‘메모리,얼’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금 차카지노 게임 추천 님은 모든 개입을 거부하는 무기한 수면에 들어가 계십니다.”

“모든 개입을 거부했다고요? 언제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나요?”

“아마 차카지노 게임 추천 님께는 전혀 일어날 의향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방법이 전혀 없나요?”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이 모습이라도 보여주세요.”

상담관이 화면을 통해 보여준 카지노 게임 추천의 모습은 방해하기 미안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제가 그쪽으로 건너갈 방법은 도무지 없나요?”

“….”

상담관은 난처하다는 듯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결심이 섰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시험 중이지만, 전뇌 시술을 받은 분들은 조만간 수면 상태에서 메모리,얼에 접속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그게 언제 나오는 건데요?”

“기술적으로는 완성이 되어있습니다만,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지연은 곧장 가장 가까운 종합 병원에 달려가 전뇌 시술을 받았다. 시술은 성공적이었고, 일주일 뒤 퇴원한 그녀는, 드디어 카지노 게임 추천이 누워있는 방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곧장 그가 잠들어 있을 침실을 향해 내달렸다. 찰나의 순간 지연은 책상 위에 한가운데 반듯하게 펼쳐둔 그들의 앨범을 눈에 담았다.

지연은 머리맡에 꿇어앉아, 카지노 게임 추천의 이마를 쓸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간지럽히며 카지노 게임 추천을 불렀다.

“나, 왔어, 여보. 얼른 일어나.”

그녀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배 위에 가지런히 포갠 두 손을 잡아 들고, 자신의 두 뺨에 얹었다.

“따뜻해.”

카지노 게임 추천은 가늘게 뜬 두 눈으로, 아내를 지긋이 응시했다.

“식전에 애태우지 말고 얼른 일어나, 여보.”

“죽는 것도 두 번 했는데, 결혼도 두 번 하라는 거야?”

지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들고 위협해 보였지만, 이정의 눈에 읽힌 것은 사랑이었다.

“진짜 죽을래? 할 거야, 말 거야.”

“세 번 죽이려고?”

“오이 김밥은 안 먹어도 돼.”

카지노 게임 추천은 실없다는 듯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먹고 싶어도 못 먹어.”

두 사람을 둘러싼 의문은 아무것도 해명되지 않았다. 헤아림도, 사랑의 형태도, 존재의 방식도.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실은 이제껏 이런 의문들이 중요했던 적 따위는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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