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연 / 낭만닥터 김사부
문득문득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 생각한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매일의 카지노 게임기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돈이 되지도 않는데 아침 시간을 꼬박 바쳐서 글을 쓰고 있는가. "왜?"에 대한 답을 찾느라 문득문득 마음이 붕 뜬다.
그 와중에 이 연 작가의 책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를 읽었다. 유튜브에서 드로잉 하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이연 작가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크로키 드로잉을 하고, 글을 쓰고, 유투브를 하는 다방면 창작자인 이연 작가는 이 책에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연 작가는 머리말에"나는 이 모든 질문에 "괜찮다"라고 답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라고 적었다.
왜 창작을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창작은 유용함으로 가치를 매기지 않기에 자유롭다. 따라서 처음에는 쓸모없음에서 시작해도 괜찮다. 거창한 사명이나 카지노 게임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말이다.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연, p15
나는 왜 이걸 하고 싶지? 몰라도 상관없다. 실제로 그런 카지노 게임가 따로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본 작가들은 자신이 작가가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확신이 없어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우연히 시작한다. 우연을 굳이 운명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 몸 안에 꿈틀거리는 말과 생각이 있다면 일단 아무 선이나 그어보자.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연, p17
내게는 창작을 하는 정해진 카지노 게임나 의무 같은 건 없다. 이걸 아는 게 중요하다.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연, p37
물론 인정받고 돈을 벌고.. 이런 목표들이 깔려 있기는 하겠지만, 정해진 카지노 게임는 없다고 한다. 누군가가 정해준 카지노 게임도 없으니 그냥 마음껏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래도 괜찮을 걸까. 어떤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글을 써도, 어떤 카지노 게임 없이 글을 써도 괜찮은걸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시간 낭비 아닐까, 나의 재능 없음만 발견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카지노 게임와 의무가 있어야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 하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낭만 닥터 김사부 1을 다시 보던 중, 10화 중 한 장면에 마음이 붙잡혔다.
김사부를 통해 성장해가는 의사 강동주(유연석 분)과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와 허드렛일을 하던 우연화(서은수 분)의 대화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우연화는 레지던트 1년 차에 고된 업무에 시달리다 병원을 그만둔 상황이었다.)
우연화 : 혹시 일을 그만두고 싶단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강동주 : 갑자기 그건 왜요?
우연화 : 그만두고 싶을 때 어떻게 참고 넘기셨는지 궁금해서요.
강동주 : 글쎄요. 여태까지 고생한 게 아까워서 못 그만둔 것도 있고 이걸 그만둔다고 딱히 다른 걸 잘할 용기도 없었고.
우연화 :그게 다인가요? 뭐, 의사로서의 신념이나 사명, 그런 거는요?
강동주 :그런 걸 알려면 적어도 한 10년 이상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입으로 떠드는 거랑 진짜 아는 거랑은 다른 거니까.
한방 맞은 것 같았다. 나의 카지노 게임기의 카지노 게임, 목적을 알려면 한 10년은 해봐야 하는 거였다. 입으로 떠드는 것과 진짜 아는 것은 다른 거니까.
카지노 게임기 2년 차인 나에게는 강동주의 말처럼, 지금까지 고생한 게 아까워서, 이걸 그만둔다고 딱히 다른 걸 잘할지도 알 수 없어서 그냥 하는 거였다. 이연 작가가 책에 쓴 "걷다 보면 카지노 게임를 발견하게 된다(p20)"라는 글과도 연결된다. 하다 보면 카지노 게임와 목적을 알게 되는 거였다.
문득 내가 몸담고 일하는 분야에서 30년이 되어가니, 그 분야에서의 신념이나 사명은 말할 수 있는 거겠구나 싶어졌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나만의 신념과 사명말이다. 이 사명을 붙잡고 일카지노 게임가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그 무엇.
새로운 일을 해보기 위해 사부작사부작 자료를 찾아보고 답사도 다녀보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요즘, 한편으로는 나는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나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음에는 재미있겠다 싶어서 구상만 했던 일이 현실로 옮겨지려 하니 다시 생각이 많아지는 중이다.
번다한 생각의 와중에 이 일에 담긴 사명과 의미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에게는 너무 과한, 터무니없는 사명 아닌가 하며 되짚어보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더 선명해진다. 이 일이 나의 지난 30년의 활동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담길 그릇이 되겠구나 하는 감은 있다.
한 번 살고 가는 인생, 52살에 나만의 사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충분히 괜찮은 삶 아닐까. 나만의 사명에 카지노 게임기도 한몫을 하게 될 것이니 거기에 지금의 카지노 게임기에 쏟아붇는 시간이 의미가 연결될 것이다.
3월 4일 함박눈이 쏟아지는 창문 앞에서 나만의 사명을 되새기는 글을 쓰게 되다니, 이런 황홀경이 어디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