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9화, 10화
8화.내가 숨만 쉬어도 역사가 바뀌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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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에어하트의 실종에 관한 가설을 보노라면 “어쩌면 무심하게 저지를 수 있는 작은 차이(실수/행위)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에 본 미스터리 무료 카지노 게임 책에서는 ‘지도 위에서 벌어진 몇 도가량의 사소한 오류’가 그녀의 비행기를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했을 거라고 나왔었지요. 그러니까 원래 코스를 단 2~3도 정도 이탈한 상태에서 한참을 날았더니 원래 목표했던 하울랜드 섬 대신 일제가 신탁 통치(라 쓰고 ‘점령’이라 읽는)를 하던 사이판 섬 위를 날고 있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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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족은 본래 무료 카지노 게임, 아들, 손자 혹은 무료 카지노 게임와 형제들, 아들과 형제들, 손자와 형제들까지였다고 합니다. 이것의 의미가 확장되어 무료 카지노 게임 쪽 친척들, 어머니 쪽 친척들, 아내 쪽 친척들로 확장되었으며, 이를 세분하여 9족이 나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3족을 숙청하든 9족을 숙청하든 북한식으로 일가친척들을 모조리 연좌시켜 숙청하는 걸 말한다는 거지요. 이 경우에도 집행을 명령하는 군주의 뜻에 따라 범위가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했다네요.
특이하게도 10족까지 멸한 경우도 있습니다. 명나라판 수양대군인 주체 황자가 정난의 변을 성공시켜 영락제가 된 뒤 대유학자인 방효유에게 즉위 조서를 쓰게 했다고 합니다. 방효유는 사육신처럼 항거했고, 개빡친 영락제는 방효유의 친구와 제자 등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10족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명나라에는 망하는 그날까지 방효유 같은 충신을 찾기가 어렵고, 그 대신 얍삽한 매국노들이 <매트릭스 2에서 스미스 요원들 튀어나오듯이 양산되었다나요.
9화.전쟁의 신을 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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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수도의 주요 귀족들과 충돌을 빚었다더군요. 그 과정에서 재증걸루와 고이만년 또한 휘말려서 오자서처럼 적국으로 망명길에 오른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혹은 <도미 부인 설화가 개로왕 때를 배경으로 한다는 주장대로라면, 개로왕이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의 부인이나 누이를 범했고, 이에 개빡친 두 사람이 역시나 오자서처럼 복수를 다짐하며 무료 카지노 게임에 망명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조선의 연산군이나 금나라의 해릉양왕, 로마 왕국의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 왕자를 상대로 신하들의 봉기가 일어났듯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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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4세기경에 가죽으로 만든 안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들이 전파해서인지 우리도 삼국 시대 초기부터 안장을 사용했을 거라고 하네요. 이는 기마인물형 토기 등으로 짐작할 수 있죠. 나무로 만든 안장도 중국 한나라 때 만들어졌고, 지금 이 무료 카지노 게임의 배경 시대에는 일본에도 전파되었을 거라고 하네요.
말의 양쪽 옆구리에 늘어뜨리는, 안장과 연결된 발받침인 등자(鐙子)는 우리나라에도 4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고구려가 무료 카지노 게임과 장수왕 시절인 4~5세기에 국토를 급속히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등자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등자가 없으면 유비가 비육지탄(髀肉之嘆)을 했던 것에서 보듯이 두 다리로 말의 몸통을 꽉 잡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무기도 써야 하고요.
그러니까 김좌지 세자가 승마를 잘할 수 있는 건 이 안장과 등자 덕분이기도 하겠죠.
10화.[여주 시점] 15살짜리 공주님은 필요하신 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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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娘을 중국의 바이두 백과사전에서 검색하면 아주머니, 큰어머니, 고모/이모, 할머니 등으로 나옵니다. 이 단어가 고대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신분이 높은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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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1회용 생리대는 미국 건국의 무료 카지노 게임 겸 정치가·발명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부상병의 출혈을 방지하려고 개발한 패드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이건 ‘썰’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본격적인 건 1880년대에 간호사들이 저렴한 목재 펄프로 만든 붕대 뭉치를 생리대로 사용하면서 생겨났다죠. 한국에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부터 쓰였다고 하네요(일본은 1961년부터, 한국은 1966년부터 국산이 등장). 그러니까 이때까지는 카루 공주처럼 생리대로 쓰는 천을 빨아가며 재활용을 했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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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삼국시대에 초가 사용되었으리라 짐작케 해주는 유물이나 기록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신라가 삼한일통을 한 뒤에나 촛대와 심지 자르는 가위 유물이 나타난다네요.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 이전부터 초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민간에는 잘 안 알려졌다고 하고요. 귀중품이라는 뜻이죠.
일본인들이 나라 시대에 수입한 초는 중국에서 수입한 밀랍초였다고 하네요. 밀랍도 꿀과 같은 이유로 비싼 거니까 아마 절에서 쓰려고 수입했었나 봅니다. 소기름이나 돼지기름으로 만든 초는 손만 닿아도 녹는 데다, 재료를 생각하면 절에서는 쓸 수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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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의 산부인과에서 활약하던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가 바로 그 문제의 의사 양반입니다. 1840년대에 빈의 산부인과에서 산부인과 의사의 손 씻기로 갓 출산한 산모의 사망률을 낮추려고 했는데, 오히려 동료들한테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다죠. 대다수 의사 양반들마저 “세균? 그게 왜 위험함?” 하던 시대의, 그러니까 산부인과부터라도 소독이 일반화될 1880년대에나 선각자로 인정을 받기 시작할 비극적 사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