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삼각형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의 사다리를 오르려다 보니
탐욕스러운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당신은 부자야, 더럽게 돈이 많아.
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풍요 속에서 헤엄칠 때
세계는 빈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당신도 찾아보면 선한 구석이 있겠지.
추잡한 러시아 자본가 돼지한테도 선의란 게 있을 거야.
정신 나간 러시아 똥팔이가 전부는 아닐 거라고.
내가 누구죠?
누구냐니?
말해 봐요.
화장실 담당이잖아
아뇨, 배에서는 화장실 담당이지만
여기선 선장이죠, 누구라고요?
선장이요.
하나의 질서 아래 형성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억압과 착취라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 관계 속 평등은 없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
또 다른 불평등이 시작된다.
새로운 권력 관계 속에도 평등은 없다.
애비게일?
내가 당신을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지만...
아, 당신이 내 밑에서 일해도 되겠다.
비서 하면 되겠네요.
영화의 두 가지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현존하는 계급은 억압과 착취로 만들어졌으며, 평등하지 않다. 새로운 계급 역시 억압과 착취로 만들어지고,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은 현존하는 계급에 심판을 내린다. 배 위에서의 구토와 배설이다. 비위가 약하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노골적인 장면들이 계속된다. 이를 기점으로 계급 전복이 이루어진다.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이다. 새로운 계급이 권력을 잡았다. 계급이 뒤바뀌었으니 이제는 평등할까? 아니다. 또 다른 불평등이 시작된다. 계급의 역전은 기존 질서의 역전에 불과했다. 계급이 존재하는 한 평등은 이룰 수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권력을 손에 넣은 인간은 타인을 억압, 착취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다.
당신이 애비게일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하겠는가?
섬에서 얻은 권력을 유지하며 살아가겠는가?
아니면 현실로 돌아가 야야의 비서로 살 것인가?
<슬픔의 삼각형 ★★